원칙이 만든 따뜻한 질서

아이 졸업식에서 본 최고의 시스템

by 강재훈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을 다녀왔는데, 행사 안내부터 마무리까지의 운영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산업공학을 공부하고 공급망을 운영하는 일을 하는 이의 입장에서, 그 날의 졸업식은 하나의 잘 설계된 시스템처럼 보였다.

졸업식은 학생 한 명에 학부모 두 명만 참석 가능하고, 강당에는 한 명만 입장, 다른 한 명은 교실에서 TV 중계를 시청하도록 안내됐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서는 유튜브 실시간 링크가 별도로 제공됐다. 원칙은 명확했고, 배려는 세심했다.

아이는 등교하며 초대장을 꼭 챙겨 오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나는 초대장을 잘 챙겨 갔지만, 많은 인원이 동시에 몰리는 상황에서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거라고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교문은 예상대로 별다른 확인 없이 통과했다. ‘형식적인 안내였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건물 입구에서 초대장 확인이 시작됐다. 인원이 초과되어 입장이 제한된 가족들이 사정을 설명했지만, 운영진은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원칙을 안내했다.

룰은 정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걸을 지킬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우리 사회에는 규칙이 형식으로만 존재하고 실행은 흐트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럴 때 손해를 보는 건 규칙을 지킨 사람들이다. 그 경험이 반복되면 아무도 룰을 지키지 않게 되고, 결국 질서는 사라진다. 건물 입구에서 원칙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졸업식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당으로 향하는 길. 나는 강당으로, 아내는 교실로 가기로 사전에 역할을 나눴다. 솔직히 나는 북새통 같은 강당의 모습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곳은 놀라울 만큼 정돈되어 있었고, 차분했다.

학생들은 반별로 한 줄씩, 번호에 맞춰 의자에 앉아 있었고, 바로 옆에는 학생 이름이 붙은 학부모용 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입구를 통과한 후 두 명 모두 강당에 오더라도, 한 명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를 못 잡고 뒤편에 서 있는 학부모가 있으면, 친절한 표정의 운영진이 다가가 교실로 안내해 드렸다. 교실에도 학생 이름이 붙은 자리 하나만 준비되어 있었다.

룰에 근거한 시스템이 공간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이어졌고, 퇴장 역시 질서 있게 마무리됐다. 사람들은 통제당하는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랐다. 시스템이 강압이 아니라 신뢰로 작동하고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병목도 없었고, 정체도 없었다.

아이의 졸업식을 보며 지난 6년의 시간을 상상해 봤다. 말로만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원칙이 실제로 지켜지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질서를 배웠을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룰이 제대로 작동하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은 신뢰할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한다. 그리고 이 따뜻한 질서를 준비해준 선생님들과 운영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보여준 교육의 방식은 학생들 뿐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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