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창구에서 시작한 금융 수업

by 강재훈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은행 창구에 들어갔다. 명절이나 생일 때 받은 용돈을 모아 ATM에 입금해 본 적은 많았지만, 번호표를 뽑고 직원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소득 수준에 비해 금융 이해도가 낮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심하게는 ‘금융 문맹’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이 말에 나는 꽤 공감하는 편이다.

학창 시절 우리는 어려운 등비수열의 합 문제를 능숙하게 풀었다. 하지만 그 공식이 복리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삶 속에서 활용하진 못했다. 수학은 시험지 위에서 끝났고, 금융은 삶과 연결되지 않았다.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자본이 일하는 방식에는 무지했던 것이다. 결국 노동에 대부분을 걸었고, 근면함 하나로 버텨왔다. 근면은 매우 중요한 인생의 미덕이지만, 공부와 삶의 지혜가 따로 놀도록 내버려 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이에게 새로운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은행 창구의 공기,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 직원과 마주 앉아 설명을 듣는 시간. 이 공간이 단지 돈을 맡기고 찾는 곳이 아니라, 자본이 움직이는 구조를 배우는 출발점이 되길 바랐다.

우리는 자동 이체로 해외 펀드 하나를 가입했다. 가끔 계좌를 열어 보며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는 어디인지, 그 기업은 어떤 일을 하는지, 그 결과 자산은 어떻게 변하는지. 경제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자본이 일하는 구조를 이해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

AI의 발전 속도를 보면 이런 은행의 모습이 얼마나 더 유지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창구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이 장면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은행 창구에서 보낸 시간은 예상을 뛰어 넘어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많이 지루했을 텐데도 잘 버텨준 아이가 고맙다. 길어지는 업무를 함께 기다리며, 기다림 또한 삶의 일부라는 걸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수업은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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