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를 시작으로 CES를 강타한 아틀러스와 테슬라의 옵티머스까지, 피지컬 AI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간의 계획표를 앞질러 가는 느낌이다. 미래의 모습을 설정하고,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를 단계적으로 짚어가던 방식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간다. 기술은 더 이상 우리의 준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비교적 정해진 시간표 위에 놓여 있었다. 스무 살 무렵 대학에 가고, 서른 즈음 취직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쉰을 넘어서며 퇴직을 준비하고, 자녀들이 결혼을 한다. 예순쯤 되면 인생의 큰 숙제는 마친 듯한 기분이 든다.
문제는 그 이후다. 바쁘게 달려온 만큼 남은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은 길어졌는데, 일은 점점 더 빨리 끝낼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여생은 길어지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일하는 강도를 의도적으로 낮추면서, 인간다운 삶의 방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다짐 대신, 굳이 오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내일 해도 되는 여유를 허락하는 것. 오늘을 조금 덜 채우는 대신, 삶 전체를 더 길게 가져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근면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오래 일하는 사람이 인정받았다. 그 근면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하지만 생성형 AI와 로봇이 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는 시대에, 근면은 더 이상 최선의 생존 전략이 아닐지도 모른다. 속도를 높이는 능력보다, 속도를 조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 질 것이다.
AI와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더 많이 일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오래, 더 인간답게 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여유를 선택하는 일은 뒤처짐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이다.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이 끝까지 붙들어야 할 가장 인간다운 태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