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의 법칙과 삶의 가격

by 강재훈

시장에서 대부분의 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떨어진다. 기술은 표준화되고, 경쟁자는 늘어나며, 희소성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제의 차별성은 오늘의 기본 사양이 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석유와 메모리 반도체가 그렇다.

석유는 전쟁과 지정학에 따라 가격이 움직인다. 실제로 공급이 줄어들지 않더라도, 줄어들 것이라는 신호만으로도 가격은 급등한다. 이 시장에서 가격을 좌우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공급 안정성이다.

메모리 반도체도 비슷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Micron Technology. 이 세 기업이 글로벌 공급의 대부분을 책임진다.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르더라도 공장을 단기간에 지을 수는 없다. 막대한 자본과 시간, 그리고 경기 변동에 대한 불확실성이 뒤따른다. 완공 시점의 수급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기술 산업이지만, 가격은 여전히 수급에 따라 크게 요동친다.

사람의 가치는 어떨까.

농경 사회와 산업 사회에서는 경험의 가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식과 숙련은 쌓였고, 그 축적은 자연스럽게 임금과 부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AI가 우리의 지식을 빠르게 대체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가치 역시 수급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때 전문 영역이라 여겼던 일들을 AI는 몇 초 만에 정리한다. 지식의 공급 속도가 인간의 학습 속도를 앞지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급의 영향을 덜 받는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도 쉽지 않다. 기술의 확산 속도는 우리가 방향을 틀고 이동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내가 배워온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떨어지는 상품인가, 아니면 단기간에 공급을 늘려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인가. 내 안에 축적된 관계와 신뢰, 경험으로 다져진 판단력, 나만의 시선과 해석의 틀은 나의 가치를 지켜주는 희소한 자원일지도 모른다.

표준화된 지식에만 의존한 역량은 기술 발전과 함께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역사와 선택의 방식, 성공과 실패가 겹겹이 쌓여 형성된 역량은 다르다. 그것은 쉽게 복제되지 않기에 기술을 도구 삼아 더 크게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시장은 계속 변한다. 공급은 늘고, 평균은 높아진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축적해야 수급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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