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 방에 사는 우리들
평점 : B+
최근 몇 년 글을 쓰는 동안,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담긴 산문집이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작가를 작가적으로도 인간적으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중간에 수록된 시도 좋았다.
중후반부는 집 정원에서 식물을 기른 일지가 책의 3할 정도를 차지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찐중년여성 같은 면이 보였다. 한편으로는 ‘이걸 왜 담았지.’ 싶기도 했다.
나는 졸업논문을 한강 장편소설들로 썼다. 그래서,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흥미가 있었고 그래서 좋게 읽었다.
근데,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안 읽었거나, 작가에게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얻어갈 게 별로 없을 것 같다. 소설들 스포도 적지 않게 하신다.
희망이 있느냐고
너는 나에게 물었지
어쩌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런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에게도 희망은 있어
(중략)
희망이 있느냐고
나는 너에게 묻는다
살아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희망을 상상하는 일
그런 것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희망은 있어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2성부] 중에서-
#해석과 비평
이 책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근데 산문집이라서, 스포가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해석 및 비평의 주제 : ‘북향’
1.
[북향 방]이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북향 방은, 해가 들지 않는 방이다. 내가 읽기에는, ‘요즘의 세상’을 빗대고 있다고 느꼈다.
북향 방에서 살면 자연광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스탠드 같은 인위적인 빛을 이용하다 보면, 언젠가부터는 햇빛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햇빛 속에서 산다는 게 뭔지 기억나지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게 된다.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 방] 중에서-
요즘의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위적인 세상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자연스러운 게 뭔지도 모르게 된 모습이 연상됐다.
해 뜨면 일어나고 지면 자고. 물리적인 한계나 자연과 원리에 우리 몸은 아직도 진화 단계가 맞춰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때 자고 제때 잘 먹고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충분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런 삶과 멀어진 채, 영양제 등 작위적으로 건강을 보존하고 있다.
최근 티비나 지하철에서, 피로회복제나 다이어트 보조제 등의 광고를 많이 본 것이, 내 이런 인식의 단서가 됐다.
또, 시에 적혔듯 우리는 “날씨를 기록하지 않는 삶”을 산다. 어릴 때 일기장에 날씨를 적었던 것 같다. 적는 칸이 있기도 했고, 날씨에 따라서 내 하루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화창하면 나가서 놀고, 비가 오면 집에서 할머니가 부쳐주시는 전을 먹거나 피씨방에 갔다. 날씨가 중요한 생활을 했었다.
허나 지금, ‘북향 방’에 사는 우리에게는 날씨가 중요치 않다. 만들어낸 빛을 이용하며 방 안에서 이것저것 다 해결하니까. 자연스러움을 필요로 하지 않아 신경을 꺼버리게 된 우리 삶을 말하는 듯했다.
2.
산문 부분 [북향 정원]이 있다. 새로 얻게 된 집과 거기 딸린 북향 정원을 소개하는 생활 글이다. 작가는 별 의미를 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거울이요?"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반사시켜서. 여기는 종일 빛이 없잖아요."
-[북향 정원] 중에서-
해가 들지 않는 정원에, 작가는 거울들을 사서 빛을 반사시키는 노력을 쏟는다. 한 시간에 서너 번 각도를 바꿔주는 정성을 준다.
이 장면이, 내가 [북향 방]을 읽고 떠올렸던 주제와 연결된다고 느꼈다.
북향의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빛(자연스러운 삶, 인간적인 삶)이 안 들고 있는 것뿐이지 그 빛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그 빛을 쐬려는, 그리하여 햇빛 속에서 사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나는 읽었다.
우리의 세상이 북향인 걸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볕드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 그리고 공동체적으로도 더 건강하게, 자연스럽게,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자는, 봄날의 햇살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 사랑으로, 작가는 글을 씀으로써 세상을 향해 빛을 반사시키고 있을까.
3.
내 모국어의 안녕은
첫인사이자 마지막 인사
강세와 어조와 맥락으로 구별할 수 있다
-[합창] 중에서-
이 시에서도 같은 의도를 읽었다.
다른 언어권과 다르게 우리말은, 맥락이 있어야 ‘안녕’을 이해할 수 있다. 맥락이 없다면 오해가 생기고, 대화가 어려워진다.
대면성이 약해지고 관계 맺는 것이 어려워진 세상에서, 맥락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오해와 혐오나 갈등이 더 불거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면과 공감과 감정의 공유하는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TMI(Too Much Information)이라는 유행어가 그걸 증명한다. 사실, TMI라는 말은 너무 냉정하고 정 없는 말이다. 일 얘기 말고는 다 TMI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가 친밀하고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라 생각하기에 ‘자기 얘기’를 하는 거고, 자기 얘기는 곧 TMI이지 않나. 사람들 사이의 유대가 약해져서 자기 얘기를 말하기 꺼려지는, 자기 경험이 TMI이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맥락을 공유하지 않는 시대이기에 이 단어가 유행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맥락 속에서 살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를 차례로 주고받고, 자기 얘기를 하고 남 얘기를 듣는 생활을 해야 한다.
내가 현대문명이 인간을 자연스러운,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보니, 이 시를 그렇게 읽은 것 같다.
4.
작가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또 “부디”라는 말로 그걸 소망한다. “나는 나만으로서 살고 있지 않고, 너도 너만으로서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실제로 만난 사람과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채, 만난 적 없는 사람과도 얕지만 연결되어 있는, 아이러니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연결’이 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우리 인간들이 좀더, ‘따뜻한 의미로서의 인간답게’ 살아가길 원하는,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얘기 나누며 연결되는 삶 속에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작가로 하여금 계속 작가이게끔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