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하루_박완서 마지막 소설집

가장 한국적인 아주머니

by 조성영
출처 네이버도서


기나긴 하루 _ 박완서 단편집

평점 : A-


박완서 선생님의 마지막 소설집.

선생님을 읽기에 좋은 글들을 모아놓았다.

[빨갱이 바이러스]

[닮은 방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카메라와 워커]


너무 좋았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대놓고 ‘중년여성 일인칭’이다. 중년여성의 여러 가지 정체성과 역할들(딸, 며느리, 시어머니 등)에 이입해서 읽을 수 있는 독자라면 그야말로 최고일 것 같지만, 좁은 시점 때문에 흥미가 안 붙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글은 결코, ‘아줌마의 허탈함 토로’로만 읽히지 않는다.

한국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아픔과 상처를 담고 있고, 당장 2025년 지금의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해당하는 깨달음들이 있다.


가족, 욕망, 상처...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의 문학이다.



<독서 메모>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사람이란 고통받을 때만 의지할 힘이나 위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안일에도 위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하느님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 피조물은 길든 짧든 창조주가 정해준 수명에서 일 초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시어머니 생각으로는 그거야말로 센스의 문제일 터. 그러나 센스야말로 간섭을 가장 싫어하는 원초적인 감수성이라는 걸 그는 알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이제부터 울고 싶을 때 울면서 살 거예요.


[닮은 방들]

이렇게 나나 철이 엄마나 딴 방 여자들이나 남보다 잘살기 위해, 그러나 결과적으론 겨우 남과 닮기 위해 하루하루를 잃어버렸다. 내 남편이 십팔 평짜리 아파트를 위해 칠 년의 세월과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상실했듯이.


[해설 - 신형철]

좋은 소설은,

감동과 교화로 요약될 정서의 어떤 파고를 유발하거나(정서적 가치)

문장 세공술과 서사 건축술의 장관을 보여주거나(미학적 가치)

인간과 세계의 숨은 진실을 예리하게 제시한다(인식적 가치).


셋 중 어느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시간 죽이기’라고 부른다.

시간을 죽인다니, 그것은 유사 이래로 가능했던 적이 없는 일이다. 시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지 인간이 시간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멍청하고 진부한 소설을 읽으면서 다섯 시간을 보냈다면 그것은 시간이 다섯 시간만큼의 나를 죽이는 동안 어리석게도 이를 방치한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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