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그녀는 부산 해운대와 다를거 없는 바닷물에 빠지게 되었나.
바르셀로나에 이어
발렌시아에 왔다.
처음 이틀은 시내에 자리를 잡았다.
부유하고 풍성했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
하지만, 그토록 진심은 아니라
옛 정취를 숨 들여마실수 있을 정도, 하지만 이게 어떤 의미 인지, 누구에게 어떤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건지,
그런 것 까지 알 필요 없는
지루하고 나른한 도시였다.
흥미를 금방 잃고,
테라스가 멋지게 자리잡은 펜트하우스에 사는 할머니 집에
방하나와 화장실 하나를 빌려 지냈다.
수시로 물통을 비워야만 하는 에어컨을 하루종일 틀어놓고
한국어로 나오는 한국 유튜브 영상만 잔뜩 보았다.
그리고 이틀 째가 되는 날,
다시 트렁크를 꽉꽉 채워
버스를 타고
40분,
해변가의 또 다른 숙소에 들어섰다.
아직 청소중이라면서, 4시 지나고 오라고 청소하던 분이 그랬다.
캐리어를 맡겨두고
파라솔을 빌려
길만 건너면 나오는 바닷가에 자리잡았다.
바닷물이 깨끗하지도,
우리가 줄곧 환호하는 에메랄드 색도 아니다.
그저
바다일뿐.
푸르른 바다에 사람들 머리가 동동 떠있다.
해변가에 따라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있고 그 아래 사람들이 낮잠을 자거나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신다.
때때로 파라솔 없이 뜨거운 햇볕 아래 지지고 있는 이들은
태닝 중인 듯 했다.
나도 곧
입고왔단 상의와 치마를 벗고
비키니인듯 안비키니인듯 한 수영복을 입고 엎드린다.
태닝한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보다도 뽀얀 피부의 동양인이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만히 헤드셋을 쓰고 노래들으며 카톡하고 놀다가
전신에 뿌린 선스프레이에 온통 모래가 붙어서-
헤어셋이며 아이패드며 키보드를 다시 숙소에 갖다두고
물한병과 스크류로 열리는 미니 까바를 하나 사와서 다시 누웠다.
아무리 따갑도록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도
가만히 그늘속에 앉아있으면 불어오는 바람은 또 선선하다.
선선한 바람속에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핫바디의 그녀 혹은 그.
혹은 노쇠한 쳐진 피부에도 거리낌 없는 비키니.
갓난 아이를 데리고 온 부인은 원피스 수영복을.
이제야 걷기 시작한 아이들도 캡모자에 수영복을 입고 아장아장 걷고
온통 울퉁불퉁 셀룰라이트가 심한 그녀들도 대수롭지 않게 비키니를 입고
이리 저리 활보한다.
그제서야 나도 일어선다.
66사이즈의 나는
근 20년가까이
어쩌면 그 이상,
한국 해변가를 찾지 않았다.
울퉁불퉁 셀룰라이트가 보일까봐,
뭉툭한 라인의 배가 드러날까봐.
그렇다고 해변가에서 놀면서
햇빛 가리겠다고 온통 긴팔 긴바지의 래쉬가드를 입는건
왠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태닝한 그들 사이에서
나름 탔다고 해도 뽀얗기만 한 나는
비키니도 모니키니도 아닌
크롭길이의 흰 비키니와
하이웨이스트의 팬츠를 입고
암튜브를 끼고 바다를 향한다.
갓난 아이조차도 튜브 하나 안 끼고 놀지만
그렇다고 암튜브를 낀 나를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는다.
발렌시아,
이름모를 해변가에서
나는 자유를 맛본다.
그들이라고 핫바디에 신경쓰지 않는 것도 아닌게,
어떤 여자는 오자마자 복부운동을 그리 열심히 했다.
해변가에 왔으면 당연히 술마실것 같은데(나만그런가)
핫바디의 그녀 그들은 물 2리터짜리를 하나씩 안고 물만 마시다가 떠난다.
파도의 흐름에 둥둥 떠다니다가
다시 돌아와 물을 말리며
가만히
술을 팔러 다니는 사람,
돗자리와 파라솔을 빌려주러 온 사람,
타투를 해주러 다니는 사람을 보며
여기가 한국 해변가와 뭐가 다르지 라고 생각한다.
평가 하지 않는것.
타인의 상태에 평가하지 않는 이들의 시선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어떤 차별도
어떤 판단도 없는 해변가에선
과거 어떤 프로그램에 빨간 비키니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던 박나래가 외치던 ’기세‘같은건 필요없다.
그저 바닷가기에 수영복을 입었을 뿐이다.
그에 걸맞는 몸이 근육질이라면, 매력적이지만
그렇다고 준비되지 않은 몸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
난 자유롭다.
내 배고파하다가
드디어 뭘 먹을수 있는 용기가 생겨
뒤늦게 맥주한캔과 복숭아를 한입 베어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