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비행기 안에서

제가 비즈니스 탈거처럼은 안 보이나요?

by 이지아






저번 뉴욕 여행 때 며칠을 시차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비행기 내에선 최대한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짐 싸는 걸 소홀히 하기도 했고,

날이 너무 덥기도 했고,

여행계획을 준비 안 하기도 해서-

일부러 2시 넘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긴장해서인지

더워서인지

맞춰둔 알람보다 한 시간 일찍 깨긴 했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이라 다시 잠들긴 했다.


땀으로 축축한 잠옷을 벗고, 샤워를 가볍게 하고-

어젯밤 해둔 설거지 그릇을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 버리고.


원래 나서려던 시간에 맞춰서

큰 캐리어를 끌며 밀며 공항버스 정류장에 섰다.


화장을 가볍게 했는데 이미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피곤한 목소리의 엄마가 전화를 했다.

공항버스가 있다고 하니 참 좋겠다고 하셨다.


나의 서울행 중 가장 큰 이유였다.

인천공항과의 접근성이 좋아지는 것.

광주에서 해외를 간다는 건, 반나절이상의 시간을 인천공항 가는데 써야 했다.


2-3시간의 비행일 때는 오히려 인천공항까지의 여정이 더 피곤한 느낌이었다.


무튼, 한 시간 정도면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 공항버스가 집에서 10분 거리의 정류장에 있다는 것에

매우 기뻐하며 엄마와 통화를 이어갔다.


아아 누구 선물도 사야 하고 누구 선물도 사야 하고-

엄마는 너 여행만 생각해. 거기서 너를 위한 선물을 뭐 사지? 를 고민하지 굳이 여기 사람들 생각하며 선물 고민하지 마. 현금이나 좀 남으면 공항에서 좀 사든지.


나에게 원래 해외여행이란 그런 것이었지만-

이번 여행은 많은 이들의 기도와 배려로 가는 부분이 있어서-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특히 신학교 때부터 가지고 다녔다는 십자가를 빌려주신 건- 그냥 꿀꺽할 수업쟈나…


왠지 피곤했지만 잠은 안 오고- 노래를 들으며 쾌적하게 공항에 도착했다.


바쁘게 버스에 짐을 싣고 올라타지 않도록

기사님이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짐도 실어주고

내릴 때도 이미 기다리고 있던 분이 짐을 내려주셔서-

일본 오사카에서 탔던 버스기사님이 생각났다.


마음의 여유와 시간의 여유는 선하다.



왜인지 아시아나 비즈니스는 공항 오른쪽 끝날개에 위치하고,

인터넷 면세점 수령처는 왼쪽 끝날개에 위치했다.

터미널 1 정중앙에 내린 나는 오른쪽 끝-까지 갔다가

왼쪽 끝-까지 갔다가

배고픔을 울부짖으며 아시아나 비즈니스 라운지에 갔다.


요즘 pp 카드 발급이 되는 카드가 많아서인지

마티나 라운지나 스카이라운지는 줄을 서있었다.


라운지가 그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핏 보니 입국심사를 마치고 난 구역에서 갈 수 있는 북카페가 생긴 것 같았다.

스타벅스와 협업한 거 같았는데

줄을 서서 라운지를 가는 것보다 북카페가 더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배가 고픈데 푸드코트 줄도 그만큼 길길래 나도 줄 서서 라운지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와-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시끌벅적한 데다가 자리를 맡기가 쉽지 않아서

그나마 나는 1인이라 바 자리에 후딱 앉아 밥을 먹었다.



무튼,

자영업자의 카드결제금액(그것도 5년 이상)으로는

비즈니스를 몇 번이고 탈 수 있는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었기에-

이번 여행도 마일리지를 털어 비즈니스를 타게 되었다.



확실히 제한된 인원-탑승객- 이 들어오는 공간이라

북적이는 정도가 덜하다.

음식이나 음료는 마티나 라운지보다 덜 다채로운 것 같긴 하다.


모두가 컵라면을 먹을 때 나는 시리얼을 먹는다.


그리고 아침이어도

화이트와인을 마시지.


훗.



왜 사람들이 라운지의 대표음식을 컵라면으로 치는지 너무 이해하고 싶다.

너무 그 마음을 알고 싶다.

너무 보편적이고 싶다.


만,

항상 갈 때마다 라면은 손이 안 가서-

매번 샐러드, 커피 한잔, 음주 한잔, 요렇게 먹는데-

오늘은 배가 많이 고파서

볶음밥에 미트볼카레에 시리얼까지 야무지게 먹고

커피에 화와 한잔 하며

놀았다.



저번 뉴욕 가면서 머물렀던 라운지는

휴가철이 아니어서인지 매우 조용하고, 일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는데

오늘은 유독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보였다.


어느 정도 배가 찼을 때

옆에 새로 자리 잡은 남성분의 향수냄새가 너무 강해서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비행기 이착륙이 보이는 창가 바 자리로 갔는데-

앉으려고 본 자리 옆에는 와인잔에 뽀얀 우유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수학문제집으로 보이는 책이 있었다.


가만히 앉아 일정을 짜고 있는데-

뽀얀 우유의 주인이 왔다.

한눈에 봐도 모범생 같은 여자아이가 앉아서

문제집을 풀며 폰으로 인강을 보기 시작했다.

구찌 크로스백을 메고.


여름휴가철에

항공사 비즈니스 라운지에 홀로 앉아 인강을 듣는 청소년의 삶은 어떤 걸까 궁금했다.


_지만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오셨었다.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를 보고 싶어서 혼자 자리를 잡았던 거였다. ㅎ ㅎ



그래도 부럽네.

저 나이에 항공사 라운지를 이용하며 스위스여행 가는 여름방학이라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셀프체크인을 했지만 짐을 부쳐야 해서-

아시아나 항공사 체크인 부스를 쭉 보는데

일반석 부스만 보이길래

비즈니스 좌석 수화물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코너를 돌아서 맨-끝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돌아가서 입장하니,


카운터에 앉아있던 직원이

“비즈니스 타세요?”라고 물었다.


그 말이 꼭,

잘못 온 거 아니에요?로 들려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라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말, 혹은 정말 확인차 해야 하는 말, 일수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비즈니스 타러 온 거처럼 안 입었나 같은 겉모습이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거다.


아 쿠팡에서 시킨 배낭이 허접해 보였나,

끌고 온 캐리어(제대로 기능하는 회색 캐리어) 역시 이번에 반짝이고 두터운 베이지색을 새로 샀어야 했나,

아줌마처럼 폰에 어깨끈 연결해서 온 게 후져 보였나, 같은

쪼그라진 마음의 초라한 생각들 ㅋㅋㅋㅋ




엊그제 경기도에 사는 사촌동생이 조카를 데리고 함평을 방문했는데

상황상 나는 그 자리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를 통해- 언니를 통해 - 조카 용돈봉투를 챙겨줬는데,

이에 그제야 사촌동생 얼굴이 활짝 펴더라고 언니가 말했더란다.


설마 그러겠어-

그저 언니가 줘야 할 텐데, 생각했지만 준비를 못해서 마음이 쓰였던 게

해소가 되니까 그래 보였겠지-

라고 엄마랑 공항버스 기다리며 얘기했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신경 쓰는 구석이 있다.

상대는 신경 안 쓰다 못해 알지도 못하는데

나만 신경 쓰는 그런 것들.


예를 들면 나는

얼굴 주근깨가 어릴 때부터 있었는데-

중학생 때 어떤 남사친이 넌 얼굴에 왜 이렇게 깨가 많아?라고 한 이후로

중학생 때부터 레이저를 했다. 하하하하하

지금도 얼굴 가장 고민은 잡티.


지만

피부미용을 하고 있는 선배는 말했지.

너는 잡티가 아니라 이제 리프팅을 신경 써야 해.라고.

팔자라던지

마리오네트 주름이라던지.

호호호호호


객관적인 사실이고 이제 나도 그렇게 알려고 하긴 하지만-(아직 알, 진 못함)

이게 얼마나 개인적인 건지,

시술 후 리프팅이나 팔자주름 개선이 드라마틱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저처럼 또 하고 또 해야지 같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고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잡티 관련 레이저는 꾸준히도 받는다.







시간 맞춰 게이트로 가려고 보니

또 게이트가 공항 오른쪽 날개 가장 끝이다.


와 오늘 인천공항 왕복을 몇 번을 하니.

벌써 7 천보를 찍었다.


시간을 착각해서 서둘러 왔더니

10분의 여유가 있다.

잠시 앉아있다가 비행기에 탑승!


나의 커다란 배낭은 아래 둘 수 없다고 해서

바리바리 싸 온 나의 놀거리들 - 헤드셋, 여행책, 에세이책, 필사노트, 아이패드, 키보드, 일정종이,

세수할 클렌징, 기내에서 할 팩,

(원래 아침에 먹거나 버스에서 먹으려고 했던, 한 달간 살아남을 수 없을 거 같아서 잘라온) 오이스틱,

비행기에서 목마른데 매번 물 달라고 부르기 싫어서 갖고 다니는 텀블러를

왕창 꺼내놓고 보니 역시나 또 바리바리 하다.


한결 가벼워진 배낭은 올리고,

이걸 다 하긴 할 건가 싶은 짐들은 아래다 쌓아놓고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14시간 비행을 안 자고 버티려면…!

요정도 샤부작 샤부작 거릴 것들이 필요하지 않…

지.


아마 아이패드와 헤드셋만으로도 충분히 잘 놀았겠지만-

그냥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렇다.

욕심이 많음.

그래서 다 싸 오면 갖고 온 게 아까워서라도 10분이라도 한다. 호호



일단 키보드 챙겨 온 게 아까워서

지금 글도 쓰고 있고요,

잠시 에세이책 서문 세편 읽었고요,

여행책 펴서 포르투갈 기초지식 한번 봤고요.



언제나 그랬듯 비효율적이지만

10분이 쌓이다 보면 또 어느 순간 완성도 되어있을 거니까.




스페인어 책 안 갖고 온 게 너무 아쉽다.










기내에서

술파티를 벌인다.



_자꾸 부르기 불편해서

한 번에 레드와인 두 잔과 맥주 한 캔을 챙겨달라고 했다.


놀랍게도 다 먹기도 전에 취했는지 잠이 들어서

정신을 차리니 영화는 한참 지나있고, 술들은 치워져 있었다.(그니까 다 안 먹었다는 거다)






호기심에 해산물 특식으로 신청했더니

알레르기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사항이었는지

버터대신 식물성 휘핑버터(?- 엄청맛없)

글루텐프리 빵에,

치즈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후식으로 초코케이크라던지, 뭔가 하여튼 맛있는 메뉴들이

다른 것들로 대체되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나오는 것이었음.


난 그냥 육식이 아니라 해산물을 먹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요.


그래서 치즈도 따로 요청하고,

버터도 요청하고~ 치아바타로 달라고 요청도 했다.


이코노미 탈 땐 가장 먼저 주는 메리트라도 있었는데,

비즈니스에선 주는 순서는 어차피 동일했다. 쯔읍.


귀국 시에는 그냥 주는 대로 먹기로 함.




비행기에 꽤 볼만한 영화들이 있었다.

범죄도시 4도 있고, 위키드도 있고, 윙카도 있고, 영쉘든도 있고 등등.


위키드가 이런 내용인지 몰랐는데

소수의 약자가 어떤 형태로 차별을 당하는지,

악의는 없지만 오만함이 주는 배려가 어떤 불편함인지

가 잘 드러나서 재미있게 봤다.


뿐만 아니라, 모든 걸 가졌지만 가장 갖고 싶었던 걸 못 가질 글리다의 고통도,

성숙된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위키드도,

둘 우정이 서로 진심이라 더 슬펐다.


둘은 결국 서로의 길을 분명 응원해 줬는데

어쩌다가

못된 마녀라고 욕먹는 친구에게 불을 손수 질러야 했을까.









사회 속에 한 인간은

단순 하나의 관계만을 맺는 게 아니라

참 어렵다.


이 관계도 저 관계도 다

신경 써야 해.





위키드 원작을 안 봐서 결말을 모르긴 모르지만,

아마 글리다의 남자친구는

엘파바를 좋아하겠지.

선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엘파바도 좋아하는 마음일 테니

이어지겠지.


이런 내용의 글이 네이트판에라도 올라오면

엘파바는 온통 욕먹을 거다.

글리다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자가 돼버리겠지만-

각각의 상황을 살펴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다.


글리다가 정말 피예로 왕자를 사랑했냐고 하면

그가 염소교수님에 대해 갖는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아

‘사랑’인지 ’ 소유욕‘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의리, 로 이름 지어

구분되는 선악은 때로 폭력적이다.



특히 사랑과 인연은


때로-

욕먹어도 그게 맞을 때가 있을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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