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면 못 물려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by 이지아



세비야가 너무 좋아서였는지,

리스본에 가선 영- 적응을 못했다.


무엇보다

힘들게 찾아간 숙소가

3층(실질적 4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니.


집주인이 옮겨주겠다고 하더니

늦는다고 같은 플랫 룸메한테 문 열어달라고 하니.


깜깜한 계단을 28인치 트렁크를 끙끙대며 끌고 올라가니

중동계열의 남자와 백인 여자가 맞이해 주었다.


방은 깨끗했지만

시트는 꿉꿉했고

욕실 청소는 잘 되어있었으나

건물 자체가 너무 노후되서인지 물에서 비린내가 났다.



4시간 만에 모든 숙소와 교통편을 결제하다 보니

후반부 여행지일수록 성의가 없어지는데-

그래서인지 리스본 숙소는 관광지에서 지하철로 4-5 정거장 거리였다.

걸어가면 35분-40분 정도.


4층의 계단과 40분의 이동거리는 리스본에 정 줄 틈을 주지 않았다.





애써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 노력했고,

다행히 제로니무스 수도원 구경은 매우 흥미로웠으며-

리스본 대성당에서 미사는 정말 천상 낙원이었다.


성가대와 오르간 연주가 성당 안을 가득 매운 햇살만큼 온화하고 부드러워서

극도의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귀가하면 꿉꿉한 시트에,

냄새나는 물에,

마음이 지쳐갈 때쯤-


리스본에 머무는 시간이 끝나고.






오후 늦게

포르투행 기차를 탔다.



한국과 달리

승차 플랫폼에 차 번호가 안 적혀있어서

많이 헤맸고

연착이 되었지만,


왠지 포르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리스본숙소에 머물 당시

혹시 몰라 보니

역시나 포르투 숙소도 후기가 엉망이었고

수수료를 많이 물고 취소했다.


금액계산은 뒤로 하고 게스트 선호의

당장 며칠 안 남은 상황이라 할인을 많이 하고 있는 숙소를 결제했다.



숙소로 들어선 순간


우아-


환호가 절로 나왔다.




나 얼마 만에 독채를 쓰지.


와 이 얼마 만에 한국에어비앤비 같은 정갈함과 체계적인 응대인가.



눈치 안 보고 요리할 수 있다고?





파스타라도 해 먹어야겠다 싶어 마트를 갔다가

삼겹살이 눈에 띄었다.

영어에 능한 정육 코너 아저씨가 윙크해 주시며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게 슬라이스 해주었다.


와 삼겹살?











쌈장대신 파프리카소스를 사서

치즈와 와인과 함께 먹으며


지친 마음을 위로했다.




한국에서도 그러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외식보단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

마음을 채워준다.





기쁘게 먹고,

잠자고 일어나

노래를 크게 틀면서 생각했다.




아.

아마 다시는 에어비앤비 방만 빌리는 건 못하겠구나.




잔고가 40280원 남아있던 통장에

입금내역이 떴다.


숨을 몰아쉬었다.





리스본 숙소에서는 네스프레소 머신만 있었는데

여기 무제한 제공되는 캡슐을 보며

두 번을 내리 마시며 또 생각했다.





투어 예약취소가 되는 바람에

엊그제 방문한 신트라에서

택시로 이동하며 여행을 했는데,


사실 택시같이 밀폐되고 내가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은 공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는데-

카카오택시나 볼트 앱을 끼면 또 괜찮다. 보호하는 안전망이 있는 느낌이라.

- 그래서 택시 이용을 삼가고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아니,

택시 이동 너무 편한 거 아닌가.






자본주의에 굴복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에게 얘기하니 친구가 맞아 못 물러 ㅋㅋㅋ라고 했다.






나는

블랙리스트라는 미드에 나오는 레딩턴처럼

길가에 노숙도 할 수 있고

고급 음식도 누릴 줄 아는

스펙트럼 넓은 누리는 에티튜드가 항상 갖고 싶었는데.




그래서 이걸 깨닫는 순간

순간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편리함에 무릎 꿇게 될까 봐.





그래서 편리하지 않으면

도전을 하지 못할까 봐.






엄마는 항상 잠자리가 중요하다며-

숙소가 편하지 않으면 아예 안 가는 게 낫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찬 버스를 타기도,

퍼스트 클래스 비행기를 탈 수도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나는.








아마 이제 더 이상

이코노미를 타거나, 마냥 걷거나, 방만 빌리는 에어비앤비를 빌리는

여행은 못할 거 같으니

이번 여행 더 험블하고 더 열심히 걸어야지.

라고 썼다가,




지금 이 순간 다시 다짐한다.


꼬부랑 할머니가 돼도

냄새나는 시외버스를 타기도-

미슐랭 5 스타 식당에 앉아서도-

모든 걸 누리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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