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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 Feb 10. 2022

입춘에는 역시 오이 칵테일

오이는 여름의 채소지만. 




얼마전 명절에 제주도를 놀러갔다.

유명한 관광객대상의 식당을 가서 실망한 후

주변을 배회하다가 바닷가 2층에 자리한 바를 갔다.


오로지 밖에서 창안의 풍경을 보고 들어갔는데

위스키바였다. 

 

위스키향은 도무지 적응하지 못해서

위스키바에 가면 그나마 먹을수있는 칵테일을 부탁하는 편. 



그래서 내어주신게 

오이칵테일



제주 마일스 바




청량한 오이향이 확 퍼지면서

연휴동안 먹은 기름진 음식들이 싸악- 내려가는 기분이 들고

산뜻하고 상큼한 레몬향에 신이 났더랬다.

결국 못한다고 믿었던 위스키도 몇잔하고

즐겁고 재미지게 수다떨다(주접떨다) 왔다는 이야기. 




위스키바에 가면 꼭 바테이블에 앉는 편인데

바텐더님과 수다떨면 즐겁다.

왜 이런 로고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하다 이런 곳에 이런 바를 운영하게 되었는지,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는 어떤건지 등등.



술기운에 있는 낯 없는 낯 사라져서

아무렇지 않게 잘생겼다는 칭찬도 하고

공간의 감도가 참 좋다는 이야기도 하고. 





이번 제주도 여행은 차를 빌리지 않고 택시만 타고 이동하는 여행을 했는데

택시안에서도, 식당에서도 느낀게 

대화에 대한 피로감이었다. 


내가 사는 전라도 광주는 그렇게 다들 수다가 떨고 싶다. 

택시를 타도 식당을 가도 수퍼를 가도 

한마디씩 더 하신다. 

택시기사님은 그 전 손님에 대한 흉을, 

동네 식당을 가면 근처 가십을, 

수퍼를 가면 내가 사는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내보이시곤 한다. 




나 또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서인지

타인과 불필요한 대화를 피곤해하는 편이라

항상 이어폰을 꽂고 있거나

말을 거시면 대답만 하는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꼭 여행지를 오면 그렇게 나도 수다가 떨고 싶더라.



식당에서 서빙하는 분께 출신을 물어보기도 하고,

제주도의 삶은 어떤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내어주신 음식의 식재료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하는데

다들 하나같이 무뚝뚝하고 귀찮고 피곤하다. 



그 와중에

이 바에서 만난 사장님과 친구이자알바이자디자이너이자바텐더였던 분은

우리의 대화를 기쁘게 받아주어서

더 신이 났는지 모르겠다. 



술깬 아침 영수증을 보니

주문했던 안주는 쿨하게 서비스로 처리해주시다니! 





처음 마주한 오이칵테일이었는데

청량한 첫인상부터

다정한 마지막 기억까지 

완벽하게 좋은 술로 내 머리속에 자리잡았다.








그래서 라디오에서 오늘은 입춘이라는 멘트를 듣는 순간

훅! 떠올랐다.


입춘에 왠지 딱 어울리는 오이칵테일.






집에 가는 길에 봄베이 진 작은걸 하나 사고, 토닉워터도 하나 사고, 오이도 한묶음 샀다.







감자칼로 오이를 슥슥 세로로 자르고

기다란 유리잔에는 각얼음을 툭툭, 

진토닉은 1/5잔만, 나머지는 토닉워터로. 


마지막에 집에 항상 구비해두는 레몬즙을 짜서 마무리. 




굴러다니던 스타벅스 텀블러와 같이 오는 녹색 빨대를 꽂아서

훅 마시니 

신선한 오이향이 확 풍기면서

달달한 토닉워터에 상큼한 레몬향까지. 



이건 여름의 맛인가.



마시다보니

이건

수영장에 이쁜 수영복입고 커다란 챙의 모자쓰고

앉아서 마실 술인가. 


하면서 쪼로로록 다 세입에 다 마셔버렸다. 





찾아보니 오이는 여름의 채소였고

맛또한 여름의 맛이었던 것같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뭐라도 남기고 싶고 제대로 누리고 싶어서

열심히 검색해서 갈곳을 정하고 여행을 가지만

막상 기억에 남는 건

배회하다 가게 된 장소, 

기대하지 않은 친절,

생각지 못한 청량함이다.



앞으로 오이칵테일은 종종, 

제주여행이 생각날때마다 계절과 무관하게 함께 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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