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원장
파격적인 포스터로
첫눈에 관심을 끌었던 내과 박원장.
과거 순풍산부인과와 같은 시트콤 일거라고 예상했지만
이게 웬걸.
개원의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고객과 환자의 호칭
리액션의 중요성
마케팅의 필요성
전망좋은 원장실에서 할머니의 발톱을 깎아주는 내과 박원장.
이렇게까지 다 까발린다고?
지인과 같이 보는데
엉덩이가 들썩들썩하고 시선두기가 어렵다.
보다보다 중간에 껐는데
얼른 다른 채널로 돌리는 나를 보며
지인은
의사도 쉽지 않은 직업이구나.
라고 한숨을 푹 쉬는데
그 한숨이 내 심장으로 쑤욱 지나
헛헛한 바람을 일으킨다.
배우 조승우가 나왔던 드라마 중에
라이프 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 중에
핸드폰과 같은 전자기기를 만드는 대기업 임원이
'의료업'을 '의료서비스'라는 인식으로 바꾸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거들먹거리면서 얘기하는 장면이 꽤나 기억에 남는다.
꽤나 현실고증이 잘 된 느낌을 받았던 것이
관심이 없었다면 인지하지 못한채 이루어지고 있던 일들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눈뜨는 순간부터 눈감는 순간까지 차고 있는 스마트워치.
스마트워치를 통해 개개인의 심박동, 운동량, 건강상태를 파악하여
그 정보를 자회사인 보험회사로 넘기는 게 불법이 아닌 세상.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내 손목 위에 스마트워치가 꽤나 소름끼쳤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왼쪽 손목에서 열심히 심박동을 체크중이다.
내 개인 건강상태를 팔아서라도 유지하고 싶은 내 생활의 편리함때문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페이로 일하다가
업장을 열게 되어 사업자등록증을 발부받았을 때
보건업 > 의료서비스 라는 분류가 참 생소했다.
써-비스 라고 서비스를 발음하던 시대때부터 있었을 것 같은 이 분류법에서
어떻게 의료서비스라는 호칭의 분류가 들어갈수 있었을까.
그러나 운영하면서 알게되었다.
개원의 주 업무의 10%가 진료이고, 90%가 서비스인것을.
잘, 치료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기본 값이고
얼마나 불편하지 않게 치료를 받을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세상에 치료잘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기에,
특출난 능력으로 순식간에 파파팍 증상을 없애버리지 않는 한,
환자의 원하는 시간에, 무리되지 않은 소요시간이 들며, 적당한 비용으로
치료를 할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기분나쁘지 않게.
그래서 결국 좋은 직원들이 필요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야하고, 오해없는 소통방식을 익혀야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지만
막 개원했을 초기에는
가족중에 한명이
어때, 요즘 장사는 잘 되고?
요즘 손님은 많고?
이런 질문을 하면 질색팔색정색하면서 짜증을 냈다.
손님 아니고 환자.
내가 무슨 장사를 해.
요리사도 미용사도 피부관리사도
다 기술을 가지고 개인 업장을 운영할터인데
유독 의료종사자는 그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그리 만들었다.
나는 이 선서와 계약을 지킬것이니, 나에게 이 의술을 가르쳐준 자를 나의 부모님으로 생각하겠으며, 나의 모든것을 그와 나누겠으며, 필요하다면 그의 일을 덜어주겠노라. 동등한 지위에 있을 그의 자손을 나의 형제처럼 여기겠으며 그들이 원한다면 조건이나 보수없이 그들에게 이 기술을 가르치겠노라. 교훈이나 강의 다른 모든 교육방법을 써서라도.
나는 이 지식을 나자신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나의 은사들에게, 그리고 의학의 법에 따라 규약과 맹세로 맺어진 제자들에게 전하겠노라. 그러나 그외의 누구에게도 이 지식을 전하지는 않겠노라.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
나는 요청을 받는다 하더라도 극약을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것이며 복중 태아를 가진 임신부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결석이라도 자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기술을 행하는 자(외과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내가 어떠한 집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며 어떠한 해악이나 부패스러운 행위를 멀리할 것이며, 남성 혹은 여성, 시민 혹은 노예의 유혹을 멀리할 것이다. 나의 전문적인 업무와 관련된 것이든 혹은 관련이 없는 것이든 나는 일생동안 결코 밖에서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보거나 들을 것이다.
결의가 차다 못해
조금이라도 세속적이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학부때 어떤 선배가 그렇게 잘된대~ 하며 부러워하면서도
그렇게 잘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진료실력이여야만 이 얘기가 해도 되는 이야기인것 마냥
모두들 쉬쉬 하면서 직업적 가치를 신성시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너무 까발려진 의료인의 소상공인으로서의 어려움은
보기 불편하고
그걸 같은 업계 사람이 아닌 사람이 논할때는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이젠 좀 편해지려고 한다.
나는 5인이하업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으로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직원문제에 골머리도 썩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사실 진료적인 부분은
조언을 구할 사람이 있고 정답이 있기도 하며
나를 속이거나 해하지 않은 전문지식 = 책이 있어서
찾아보고 고민하고 연구하면 해결되곤 한다.
하지만 운영이라는 것은, 직원관리라는 것은,
답도 없고 해결책도 없고 정답도 없는 인간관계에서 시작되어
부딪히고 다치고 배신당하고 속상하고 울며 상황이 정리된다.
그래서 더 다양한 분야의 소상공인들의 상황과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의 시작은 나의 받아들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