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6 이 글은 40대가 되어서야 막 쏟아져 나오는 나의 마음
할머니, 안녕.
할머니와 헤어진 지 아마 20년쯤 된 것 같아. 이제야 할머니를 제대로 불러본다는 건 슬픈 일이야. 20년간 늘 마음속에서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러줬는데 대답할 수 없었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할머니의 음성에 대답하는 순간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았거든. 하지만 지금은 담담하게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어. 참 기쁘고도 신기한 일이야.
할머니. 할머니와 함께하던 20대를 벗어나 어느덧 어엿한 40대 중년이 되었어. 방 안에만 있던 할머니 옆에 누워 졸린 가요무대를 보거나,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전화번호부를 만들어 드리던 손녀가 그때의 나만한 딸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어. 할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요양병원에 누워있던 그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내 이름만 불렀을까? 그랬다고 해도 난 참 좋았을 거야. 이름을 부르는 단순한 몇 글자에도 사랑이 느껴졌으니까. 언제나 손녀를 최고로 알던 할머니에게 지금의 나 또한 자랑일 거야.
자신은 ‘병신’이라 여기면서도 그 굽은 등 한가득 손녀를 사랑해 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그때의 내 눈에 할머니는 버스에서 다친 장애인이 아니라, 그 굽어진 등으로 손자들을 받쳐주던 들판 같은 사람이었어. 하루에도 기분이 12번 바뀌는 사춘기 손녀에게 매일 같이 사다 주던 초코바, 철없이 초코바를 받아먹으며 힘들었던 시기를 달달하게 자라왔어. 술 취한 작은 아버지가 찾아와 우릴 위협해도, 사기를 당해서 전 재산을 다 잃고 빚쟁이들이 찾아와도, 온 친구들이 소외시켜도,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헤어져 살게 되어도, 할머니 너른 들판에서 울기도 하고 화도 내면서 사춘기가 흘러갔던 거야. 지금도 사무치게 정말로 고마워요.
국문학 전공해서 어디다 써먹냐고 핀잔주는 시대에 살면서도 좋아하는 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준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 덕에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순수한 마음을 지킬 수 있었지. 현대 문학을 공부하며 그 속에 드러나는 우리 사는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주 통쾌했지. 그 안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곧 나이기도 했기에 좋아하는 문학을 끝까지 공부할 수 있었어.
사춘기가 지나고 할머니를 돌볼 힘이 생겼다고 느낄 무렵부터는 할머니와 함께 출퇴근하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어. IMF 시대에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20대 청년에게 그 꿈은 너무나 큰 꿈이었지.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공부했고, 기도도 더 간절했 것 같아. 우연히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사회복지는 충격 그 자체였어. 할머니와 내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동안 어떤 공공기관에서도 알려준 적 없고, 학교에서도 가르쳐준 없는 학문이었어. 문학 말고도 우리를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게 있구나 싶었지. 그게 사람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어. 인생의 어려움은 너 혼자만의 일이 아니니 사회가 함께 어려운 문제들을 지날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하니 이걸 배워야겠다 싶었어. 무엇보다 더 좋은 것은 할머니가 다닐 수 있는 노인센터에 취업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면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낮에는 할머니와 같은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서 기뻤던 것 같아.
국문학을 하면서 관심이 생겼던 것들을 다 멈추고 노년학도 배우기 시작했어. 노인들은 교육도 받을 수 있고, 심리상담도 받을 수 있고, 일까지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단한 학문이었어. 아주 멋진 노년의 교수님을 만나면서 할머니와 사는 것뿐 아니라 더 큰 꿈도 생겼지. 지역에 내려가 더 열악한 지역의 노인을 지원하며 살고 싶다. 할머니처럼 글자를 모르거나, 버스 타기도 어려운 장애가 있거나, 돌볼 가족이 없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 대단한 꿈을 할머니에게는 말하지 못했어.
'할머니, 우리 나중에 같이 출퇴근하며 살자'
할머니가 살아간 현실과 나의 꿈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말하기 어려웠나 봐.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던 할머니가 계단 때문에 갇혀 살다시피 했을 때, 나를 배웅하기 위해 수많은 계단 길을 기어 내려올 때면 할머니를 기다리면서 계단에 앉아 꿈만 같은 말들은 하지 못했지. 엘리베이터가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거나 1층에 있는 집에서 함께 살자거나 하는 말들이 많았는데 말이야. 그때는 할머니 등을 오랜만에 밀어드리고 맛있는 걸 먹으며 우리의 짧은 시간을 해야 할 일들로 채워가기 바빴던 것 같아.
말하지 못한 말들이 많았고, 꿈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할머니와 헤어지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어요. 누가 묻더라.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똑같을 것 같다고 곧바로 대답했어. 가난해서 학비를 열심히 벌어야 하는 대학생이 먼 거리에 있는 할머니를 찾아가 눈물로 헤어지기를 반복할 것 같다고. 정도는 다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개인의 힘으로 가족의 돌봄을 채워야 하고, 그러다 어려우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시설로 보내야 하는 정책이 다수이니까. 할머니 정말 많이 미안해. 할머니가 그저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거창한 방법이 아니라 난 그저 할머니를 찾아가기 바빴을 거야.
하지만 조금 있다가 어떤 생각이 들어서 다시 대답했어. 지금은 ‘운동’도 알고, ‘투쟁’도 알게 된 내가 떠올랐거든. 현실과는 동 떨어졌었고, 우릴 찾아와 준 적 없었던 국가나 사회복지제도와 다르게 ‘운동’과 ‘투쟁’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출퇴근하며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손녀는 마침내 활동가가 되어 버렸어. 활동가가 돼야지! 결심하고 된 것은 절대 아니에요. 그때의 할머니와 나에게 필요했던 것, 국가나 사회가 해야만 했던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따라오다 보니 난 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되었어요. 그때의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도 하고, 그들을 찾아가지 않는 제도를 바꾸려고 노력해. 그래서 우리같이 사랑하다 헤어져서 서로 그리워하며 아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를 꿈꿔.
중요한 것은 할머니의 대단한 손녀답게 벌써 꿈을 이루었다는 것이야. 할머니와 같은 사람들과 아침저녁 출퇴근을 하거든. 장애가 있거나 없는 사람, 나이가 어리거나 많은 사람, 모두 보편적인 사람으로 만나서 출근 인사를 나누고, 점심이면 함께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고, 저녁이면 내일 투쟁을 기약하며 헤어져. 시설에서 죽어간 할머니가 세상 곳곳으로 나와있지. 20대에 멈춘 할머니와의 삶이 펼쳐져서 힘이 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묶여있던 침대에서도 할머니가 응원하던 대단한 손녀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하면서 우리와 같이 힘든 시기를 지날 사람들에게 연대의 인사를 건네기 시작하려고 해. 정말 멋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