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졸업한 스물넷 봄에 장애인복지관에 취업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연수 중이었는데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사회복지를 복수전공을 했지만 국문학과여서 취업이 어려운가? 10곳도 넘게 면접을 보고 떨어지니 어디서든 일하고 싶어졌다. 열심히 배우며 경력을 쌓았던 현장에서는 연줄이 있는 이가 선점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다 덜컥 합격한 장애인복지관은 국어국문학과 사회복지를 복수 전공한 것도 장점으로 여겨졌고, 좋은 동료들이 가득했다. 좋아서 1시간 이상 걸린 출퇴근길엔 책을 읽었고, 아침 일찍 자리에 가서 공부했다. 좋은 선배와 장애당사자분들이 있어서 힘든 순간도 언제였나 하고 지나갔다. 나무의 새싹 같은 시기였다.
사회생활의 첫 추억들을 장애당사자와 만들었다. 아침이면 같이 신문 보고(누군가는 신문에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찢고, 누군가는 신문 속 예쁜 사진을 들여다보고) 운동도 했다. 점심이면 맛있는 것부터 찾아 먹으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수영을 못해도 같이 물장구치고(누군가는 물을 먹고, 누군가는 물속에서도 이야기하고), 공원 산책을 하며 몸으로 얘기했다. 같이 먹고 느끼며 살아가는 과정은 분주했지만 평온했다. 집으로 돌아간 각자의 삶에선 치열했을지 모르지만, 복지관에 모이면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쌓였다.
문제는 그 각자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잘 몰랐다는 데에 있다. 직원으로서 일하는 나의 삶은 점점 더 풍성해졌다. 결혼을 했고 두 아이와 사는 엄마가 됐다. 그리고 7여 년 만에 팀장이 되었다. 국가가 보장하는 육아휴직 기간을 하거나 휴가를 쓰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회복지기관들과 비교해 보면 첫 직장은 일명 ‘좋은 기관’이었다. 운영법인의 친인척이 산하기관의 운영자로 일하면서 갑질하는 곳, 직원이 그만둘 때까지 괴롭히는 곳, 쏟아지는 업무량을 견딜 수 있는 사람들만 남는 곳들이 허다했다. 그러니 사람들은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어리석고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일했던 10여 년의 시간은 특별한 걸림돌이 없었다. 친인척은 다른 산하기관엔 있어도 우리 기관엔 없었고, 좋은 선배들과 동료들이 있었으며, 쏟아지는 업무량은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팀장이 되고 나서는 더 거침없이 일했다.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좋은 기관', '좋은 사회복지사', '좋은 활동'이 된다고 생각해서 신났다. '좋은 일'을 신나게 잘하고 있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올 거라고 믿었다. '좋은 결과'는 우리 동네가 장애당사자가 평등한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기관 내부적으로는 인력이나 예산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장애당사자가 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팀원이 더 늘어나면 소수의 인원이 다수를 지원하느라 바쁘지도 않을 것이다. 외부에서 예산을 따내고 정산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장애당사자를 개별적으로 더 잘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쁘게 많이 일하는 기간 동안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니, 팀원들이 웃음기를 잃어가도 이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결과'가 우리를 바꿔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채 2년도 되지 않아 맞닥뜨렸다. 예산은 '옮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팀원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많은 일정과 업무량으로 힘들어했다. 장애당사자가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부딪힌 접근성의 문제, 장애인을 포함하지 않는 운영방침들은 분명 비인권적이었지만 복지관 팀장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멋진 활동을 했다고 평가받았던 우리 팀은 결성된 지 3년도 되지 않아 나를 포함한 과반수가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동료들은 신나게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던 내가 갑자기 그만두는 이유를 찾지 못해 의아해했다. 아껴주시던 분들은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시설의 원장도 할 수 있으니 미래를 보라고 했다.
하지만 중요하거나 좋은 활동을 해도 '기관'과 '운영진'의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는 예산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지역사회에서 장애당사자와 함께 활동하다 차별적인 일을 당해도 말할 수 없고 개선되기를 인내해야 하는 역할은 억울했다. 나의 무모한 '열심'이 팀원들을 소진시키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혔다고 느낀 순간 나의 삶도 무기력해졌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걸림돌은 너무나 높고 잘 짜여 있어 바꾸기 어려웠다. 그곳에 계속 있으면 스스로가 더 무서워질 것 같았다. 지금처럼 열심히 억울한 일을 잘 참고 살다 보면 삶은 더 풍요로워지겠으나 마음은 아프게 될 게 뻔했다. 소중한 것들이 가득했던 곳에서 더는 순수하게 진정을 다하기 어렵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더 소진시키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원래 사명감이나 헌신 같은 게 중요하지 않았기에 나를 지키고자 미련 없이 그만둘 수 있었다.
사실 활동가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많은 걸림돌에 부딪히며 산다. 정부가 내세우는 예산의 벽은 복지관에서 만났던 권력자나 예산의 벽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이 걸림돌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직면하며 싸울 수 있다. '여기에 말도 안 되는 기준으로 세운 벽이 있소'라고 세상에 외치며 사는 것은 통쾌하다. 고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당연하고 좋은 것들을 기준으로 쓰고 제안할 수 있어 휘둘리지 않는다. 벽을 허물지 못하지만 마음이 병들지 않고 뿌듯해져서 작은 한 걸음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나로 살 수 있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