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사회복지사의 이기적인 선택

by 이정

지구의 사회복지사 중 적어도 3분의 1은 한국인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한국이 사회복지가 발전한 나라이거나, 한국인이 특별히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흔한 직업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했던 것이다. 그렇게 흔하다는 사회복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주변에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친구와 선배들이 있었다. 지구 사회복지사의 3분의 1이 주변에 있었던 셈이지만 특별한 일처럼 여겼다. 선배들은 ‘사회복지가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네가 잘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경영학, 일어일문학, 미술사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 흥미를 느끼던 때였다. 하지만 ‘사회복지’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무슨 학문인지도 알 수 없어서 관심이 더 생기진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회복지’는 늘 내 옆에 있는 학문이었어야 했고 살면서 여러 번 ‘사회복지사’를 만났어야 했다. 중학교 때는 IMF 시기여서 수학여행을 못 가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나중에는 수학여행조차 없어졌다. 사립 고등학교라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학비를 못 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밀린 학원비를 보내겠노라고 말하며 뜨문뜨문 학원을 다녔다. 대학생 시기에는 반값 등록금 투쟁이 한창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도 혼자서 나와 동생을 양육했기 때문에 ‘사회복지’라는 학문이 곁에 있어야 했었다. 장애가 있었던 할머니나 지인들에게 곤란한 상황이 있을 때 어떤 기관(사회복지기관)에 문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기관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없거나, 이용하려면 일상을 멈추고 ‘당신이 찾아와야 한다’ 거나, 시설 같은 곳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번번이 사회복지의 문을 두드렸지만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고 그때마다 가족들이 함께 버티거나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회복지 현장을 바꾸고 싶다거나,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사회복지사에게 기대하듯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거나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까지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IMF 이후, ‘대체 인문학은 배워서 어디에 쓰냐’는 말을 일상으로 듣던 국문과 학생이 하루빨리 취업을 해서 할머니와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자 선택한 것이 ‘사회복지사’였다. ‘노인복지센터’ 같은 곳에 취업하면 할머니와 출퇴근을 같이 하면서 돈도 벌고 일상을 잘 지켜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내 삶의 해결책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사회복지’와 ‘노년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배워보니 사회복지학 안에는 경영학, 심리학, 역사 등 많은 학문이 섞여 있었다. 사회복지를 배우고 보니 국문학에서도 사회복지가 보였다. 현대문학 시간에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문학적 구조에 대해 배우는 동안 그게 꼭 사회복지처럼 들렸다. 현대문학이 가진 냉철한 눈이 사회구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사회복지’라는 학문이 단단한 사회구조를 깨뜨리는 ‘작은 공’처럼 느껴져 대단해 보였다. 학교 근처에 있는 복지관과 시민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습생으로 갔던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그런 사회구조에 대해 인식할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에 오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모금을 위한 글을 썼다.

모금을 위한 글에서는 사회구조를 말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겪는 차별이나 사회 구조에 대해 말하기보다,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더 열악한지, 사회복지로 인해 얼마나 더 극적으로 변화되었는지 말해야 했다. 모금의 효과를 알긴 어려웠고, 아이들의 일상은 변화되기 어려웠다. 학교에서 배운 사회복지와 달리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도 어려웠고,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은 잠금장치가 있는 낮 보호센터에 계셔서 만나기도 어려웠다.

어느 날은 모순적이고 비판적인 것을 질문하기 좋아하는 국문과 학생의 버릇을 버리지 못해 사회복지관 직원에게 혼난 적이 있었다. 장애인 시설을 처음 다녀오던 차 안이었다. 단기간 보호해 주는 시설이라고 했지만 이미 아주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사람들이 활기차 보이지 않았고 그저 서성이거나 혼자만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와 출퇴근하고 싶은 꿈과 다른 현실이 이상해서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물었다.

"시설에 사람을 두고 가족들이 연락을 끊고, 찾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할머니가 시설에서 영원히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면, 사회복지가 어떻게 해줄 수 있냐? 무엇을 하면 시설에 보내진 삶을 벗어날 수 있냐는 질문을 나름대로 돌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이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실습생들 앞에서 엄청나게 혼났다. 그저 사회복지사가 그 시설에서 어떤 역할을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어야 했던 거다.

이후로 사회복지학을 배우면서는 질문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지구 사회복지사의 3분의 일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 기관에 취업하려면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더 ‘사회복지사’ 답게 열일을 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했다. ‘사회복지사’라고 해서 특별히 ‘사회’의 변화에 대해 대응할 필요는 별로 없었고, 다른 직업군들처럼 영어를 잘하거나 운전면허증, 컴퓨터 자격증 등 기술을 갖추는 것이 중요했다. 결정적으로는 기관에 나를 추천해 줄 인맥이 필요하기도 했다. 기술이나 인맥도 없던 지라 연봉, 직업안정성 등을 고려하기 어려웠고 서류에 합격하는 모든 기관을 찾아가 면접을 보았다. 일반적인 회사와 다르게 한 다리 건너면 다 알만큼 좁고 경쟁도 치열한 사회복지 바닥에서 사회초년생이 채용되기 위해서는,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작은 공 한번 띄우길 포기했다. 사회복지 현장에 찾아오는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떠오르는 모순적이거나 비판적인 질문을 잘 숨기고 주어진 구조 안에서 순응하고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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