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도 괜찮은 척

by 이정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은 힘들었던 그 일을 말하기보다 ‘괜찮은 척’ 해 왔던 나로 인해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글이다.


복지관을 그만두고 일했던 것에 대해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고사했다. 과거의 일을 잘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잘한 것만 드러낼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것도 교만이 아니었나 싶다. 실패한 경험도 터 놓고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실패담을 이제는 잘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실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관에서는 학생들의 방학 기간이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계절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짧게 만나는 터라 개인의 성격, 행동, 특성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복지관을 오가는 길도 잘 살펴서 학생들이 새로운 일과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활동이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에 다른 복지기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를 찾으러 그 기관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잘 달래 내보내주길 기대했는데, 들어가 보니 아이는 울고 있었다. 뺨을 맞고 울고 있었다. 잘못 본 줄 알았다. 무슨 이유가 있었더라도 아이에게 그럴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를 빼앗듯 데리고 나왔던 것만 기억난다. 그 기관의 근무자였던 가해자의 얼굴이 어땠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의 내 모습만 유독 뚜렷하다. 아이를 돌려보내고, 어머니께 연락드렸다. 아이가 뺨을 맞아서 울었고, 가해자가 사과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덩달아 울어버렸다.

CCTV도 없고, 증인도 없었지만 정답이 당연한 일이었다. 가해자는 사과해야 하는 것이고, 기관들은 가해자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상황들은 머릿속에서 전혀 예상할 수 없던 것들이었다.

“담당자인 넌 왜 울었냐?”

“네가 사과를 받아주겠다고 했냐?”

책임자들은 나의 잘못인 듯 냉랭하게 물었다. 대답이 무엇이든 상관없는 듯했다. 어떤 누군가의 조치도, 조언도, 마음도 없었다. 당연한 듯 가해자의 사과를 받을 수 없었고, 학생의 어머니도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셨다. 오히려 ‘그만하면 되었다’며 나를 위로하셨다. 너무 속상해서 선배들에게 방법을 물었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기관과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가해자가 속한 복지기관의 대표라는 사람이 전화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해왔다. 대뜸 폭언이 시작됐다. 주말 한복판에서 빨래를 개며 요동치던 마음들을 외면하고 있던 나는 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네가 뭐냐, 가만 안 두겠다. ”

쏟아지는 폭력들을 들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맞은 학생도, 옹호자인 사회복지사도 죄인이 아닌데 죄인이 되어버렸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사라지고, 문제를 알린 사람이 문제로 정의되었다. 결국 공론화는커녕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았고, 이후 각 기관의 벽은 더 온고해졌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벽은 이러한 문제를 나만의 실패로 인식하고, ‘괜찮은 척’ 더 열심히 만회하려 했던 나 자신이었다. 그저 복지기관들의 운영방식이나 책임자들에게 실망하는데 그친 상상력의 한계가 문제였다. 동료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자만심이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문제 직원’은 되지 않았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고 혼자 이겨내는 데 집중했다.


결국 몇 년 후에 다른 사건으로 그 기관의 문제가 다시 가시화됐다. 폭언을 했던 기관의 책임자가 예전처럼 다시 문제를 덮으려 한 행태가 공론화된 것이었다. 그 일이 드러나기까지 더 큰 폭력이 발생했고, 더 많은 이들이 피해자가 되었다. 결국 그렇게 터진 일들은 수많은 외면, 묵인, 방임과 같은 무수한 실패들 끝에 나온 것이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나만의 실패가 아니야’라고 꺼내놓기까지 많은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은 그때의 내가 ‘괜찮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학생과 어머니에게 죄스러워 마음이 너덜거렸고, 고압적인 폭력에 납작해져 있었다. 상대에게도 피해가 갈 것 같아 누구에게도 손 내밀어 “함께 해달라.”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 경험을 꺼내놓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장애운동 판에서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사람과 함께하는 어떤 일에도 ‘실패’가 결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지들이 나에게 해주었듯 마음속 깊은 ‘실패’나 ‘두려움’을 꺼내 들어도 ‘그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해줄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실패’라고 생각했던 고비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실패’를 새로운 길로 생각할 수 있는 품이 넓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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