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을 탈피하고 다시 만난 ‘실제 상황’

by 이정

기관을 나온 이후 운동을 만나 활동을 하게 되기까지의 구불구불한 과정을 기록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기관을 나오기 전에 수도 없이 들었던 ‘좋은 우리 기관을 나가면 다른 곳은 더 힘들다’는 말은 느낄 새도 없었다. 지역주민으로 산 4년 동안 경험한 지역은 기관의 사회복지사로서 열심히 일하며 추구해 왔던 ‘장애인도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니었다. 기관 밖의 세상은 장애를 둘러싸고 있는 진짜 세상이었고, 어제와 오늘이 다른 변화의 연속이었다. 기관을 나오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엇을 하며 나답게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다양한 경험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역주민으로, 자원활동가로, 연구자로, 자유활동가로 다양한 위치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을 만날 수 있었다.

기관이 짜놓은 형식과 절차 밖에서 만난 세상은 마치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 같았다. 기관에서는 사업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일명 ‘클라이언트 집단’이라는 소수의 대상을 뽑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사회문제와 관련이 있는 보편적인 ‘일반 집단’에서 위험요소를 가진 ‘위험집단’을 추정하고, 거기서도 우선적 지원의 필요한 ‘표적집단’을 고른다. 특히 가장 중요한 마지막 절차에는 기관의 특성과 참여자의 수용성을 고려하여 ‘클라이언트’라는 최종 대상을 선택하게 된다. 거기서도 그치지 않고 ‘적응’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목적에 부합하지 않거나 부담이 되는 사람이나 상황은 기관이 거부할 수 있다. 마치 겉으로는 문제가 사라지고 상황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거꾸로 서 있는 피라미드의 가장 좁은 꼭짓점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셈이었다.

그런데 기관 밖에서 만난 세상은 마침내 거꾸로 서 있던 피라미드가 무너져, 모두가 사막 속의 길을 찾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큰 기관 안에서 지원했던 많은 사람들도 기관 밖에서는 극소수였다. 누구는 걷고 누구는 낙타나 자동차를 타고 가는지가 다르고, 어떤 집단은 길잡이가 있고 어떤 집단 길잡이가 없어 헤매는 시간이 더 길 뿐인 것 같았다. 우리 모두는 황폐한 사막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얼마 안 되는 물가를 찾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에서는 사회복지 정책을 이용해 지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추구한다. 하지만 기관 밖의 사람들은 기관의 체계 안에서는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지조차 인식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고, 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가 사회복지나 장애인 정책의 한계로 보편적인 문제나 위험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기관을 나와서는 기관에서 일하던 때보다 더 장애당사자들이 모여 계신 곳에 적극적으로 찾아가고, 더 많은 시간 이야기하며 활동했다. 노년기 부모님들을 만나 장애자녀와 동시에 나이 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 듣고 중년기부터 노년기 발달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문제를 함께 의논했고, 대안을 시도하는 지역을 찾아다녔다. 가족이 없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가 된 발달장애인을 찾아다니며 부모가 겪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큼이나 지역사회에서 살던 발달장애인이 겪는 세상의 변화가 얼마나 극심한지 알게 됐다.

형식과 절차가 견고한 기관 안에서 만났던 장애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사회복지사였던 나는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기는 서로의 깊은 어려움이나 마음을 내놓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장애당사자나 가족들은 기대하는 만큼, 복지관이라는 기관에서 수용가능한 것만 들고 오셨던 것이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기관에서 일하면서 한 사람은 주기만 하고, 누군가는 받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기를 바랐으나, 단 한 번도 장애당사자와 가족의 역할은 내 동료의 자리가 아니었다는 현실이 보였다. 그래서 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좋은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뿐 아니라 생각보다 많고 높은 권력을 가진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복지관에서 일하던 사회복지사였을 때는 음료수를 들고 찾아오는 공무원과 경찰들만 만났지만, 장애당사자와 작은 조직에서 활동하면서는 오점을 하나라도 더 찾아 자신의 실적을 쌓으려는 공무원들과 장애인을 위협하기도 하는 경찰도 만나야 했다. 기관에서는 실적과 건의사항을 써서 정부기관에 제출하라는 지시에 바빠 불평했던데 반해, 기관 밖에서는 장애당사자가 직접 반복되는 사각지대에 관한 건의사항을 써서 관공서를 찾아다녀도 마치 ‘무언가 혜택을 바라는 집단’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왜 오랫동안 만났던 분들이 겪는 밑바닥의 고통을 몰랐었나?’ 하는 부끄러움에 휩싸이다가도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함께 참여하셨던구나’하는 고마움이 밀려왔다. 기관 밖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당신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술자리에서도 만날 수 있는 이웃이 되었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문제들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인생 숙제를 함께 고민하는 관계가 되었다. 어느 날은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수급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동료로 함께 일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동료로 만나는 노동의 자리가 귀해서 아침마다 일하러 가는 길이 눈물 나게 슬프고 설레었다. 동네 가게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더 어린 후배들을 위한 역할을 하고 싶어 작은 일도 소중히 여기는 장애당사자가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고 급여도 없는 자리에서 장애인을 지원하는 조직을 지키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기 위해 몇 년씩 고된 일을 맡아하는 부모활동가나 지역주민이 수도 없이 많아 세상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움직인다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기관 안에서 오랫동안 기관 안에서 익숙해진 언어와 태도, 속도가 내 안에 남아있다. 활동가로 산 지 5년이 넘어가지만 일명 ‘뼛속 깊은’ 활동가들에게 나의 모습은 ‘사회복지사 같다’는 농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장애운동 판에서는 정책이나 전문가가 정한 ‘절차’와 ‘평가’의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문제로 삼지 않으니, 나만의 문제도 없고 주고받는 관계도 없다. 그 사막 같은 현식 속에서 삶의 언어로 제도와 정책을 다시 써서 길을 만들고, 더 많은 이가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넓혀가는 과정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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