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수고 '시설 인권조사'

by 이정

2016년, 처음 시설에 가서 ‘인권조사’를 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보건복지부에서 민간단체에 위탁하여 시행하는 조사였는데, 사회복지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을 모집했다. 이전에 근무했던 기관의 법인에서도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익히 시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어떤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본 적은 없었다. 간혹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분이 복지관에 오시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은 누구랑 살아요?”

가족과 산다고 대답하면 그분은 항상 같은 대답을 하셨다.

“나도 할머니가 있어요.”

책임지지 못할 질문을 더 깊이 묻지 못해 우리의 대화는 늘 거기서 멈춰버렸다.

그렇다고 인권조사원이 돼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싶어서 시설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탈시설’을 상상하면서 지역에 나와서 살 수 있는 정보를 드리고자 했던 것은 더욱 아니었다. ‘인권조사’가 시설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거나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활동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조사원 교육을 받을 때부터 예상과 달랐다. 조사원 중에는 시설의 직원이거나 심지어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조사원들은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받았다. 시설 운영진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조사 운영진의 확인 없이 인권침해 사실을 논의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인권침해를 모니터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사를 위한 부수적인 도구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교육을 받으며 준비를 하다 보니, 시설에 들어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복지관에 일하면서는 당사자의 교육정도를 확인하거나 복지관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평가도구는 써봤지만, 인권조사에서는 그저 소통을 위해 그림도구를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조사원 중에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도 계셨는데, 교육을 받으며 즐거운 이야기도 나눴다. 교육 기간은 조사원들에게 긴장의 시간이었지만, 막상 조사를 시작하고 당사자들을 만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첫 조사부터 아주 오래된 대형 법인이 운영하는 시설에 가게 되었다. TV 프로그램에서 ‘좋은 시설’로 알려져 후원자도 아주 많은 곳이었다. 90년대부터 후원을 많이 받았고, 최근에는 거주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겠다며 더 많은 후원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거주인들은 법인의 역사만큼 아주 오래된 건물에서 낡고 허름한 생활도구로 채워진 방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후원을 받은 돈으로는 자립생활이라는 간판을 걸고 새로운 시설을 짓고 있었다. 시설 밖 마당에는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금색의 종교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TV에서 봤던 장애당사자의 해맑은 웃음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밥을 먹다가 숟가락으로 혼나기도 하고, 원하던 휴대폰조차 사용할 수 없어 너무 싫다는 것이었다.

조사를 마치고 조사원들이 둘러앉아 조사결과를 간단히 보고했다. 누가 맞아서 외상을 입었거나 묶여있는 등 가시적인 인권침해 사실은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나는 왜 휴대폰을 만들 수 없는지 물으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수많은 돈을 후원받는 세월 동안 거주인의 삶은 왜 변화되지 않고 기관만 더 번지르르 해졌는지 묻고 있었다. 결국 두 조사원의 항의는 많은 시설에 있는 예사로운 일이라는 이유로 조용히 묻혀버렸고, 그날로 조사원을 나가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조사지나 의사소통도구로 준비한 인권조사라 할지라도 헛수고겠구나 생각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인권조사의 ‘조사지’는 더 간소화되고 그림도구조차도 없어졌다. 인권단체 이력을 가진 사람은 조사원 모집과정에서 걸러지고, 시설이 조사를 거부하면 진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질문만 하고 바뀌지 않은 채 반복되는 헛수고 조사를 경험한 거주인들도 '인권조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이거 당신한테 얘기한다고 해서 바뀔 거라고 생각 안 해요."

조사원도, 참여하는 사람도 헛수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더욱 이제는 인권조사를 통한 만남이 얼마나 적은 확률의 만남인지, 한 사람이 한 번 수용되는 것이 얼마나 큰 무게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때와 달리 계속 인권조사에 참여하기 위해 애쓰면서 이제는 한 사람이라도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자 한다. 그래서 헛수고 조사를 하면서 라도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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