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에 대한 깊은 몰이해

by 이정

오랫동안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지만, 정신장애인과 함께 활동해 본 경험은 한 손에 꼽을 수 있다. 일하던 당시에는 정신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관 서비스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복지관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차별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장애인복지관에는 신체장애인의 활동들이 많았고,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활동들이 주로 생겨났다.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는 없었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많았다. 이론서 속에서 안내하는 정신장애의 다양한 특성과 증상들은 참고가 될 뿐이었다. MBTI 유형으로 한 사람을 정의할 수 없듯, 이론서에 적혀있는 여러 정신장애 유형만으로는 한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정신장애인을 지원하면서 헤매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신체장애가 있는 리더는 지역 상점이나 투표소의 접근성을 모니터링하고, 발달장애가 있는 청년은 지역잡지를 만드는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력했다. 정신장애가 있는 분은 자원활동을 하길 원하셔서 지역축제 현장에서 홍보나 안내를 하면서 곁에서 조력했다. 경사로가 설치되거나 잡지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결과가 보이거나 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자원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갈 곳이 별로 없었다.

그분의 자원활동은 시민들에게 행사장을 안내하는 작은 일이었다. 아주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 설명하셨고, 요령 피우는 일도 없이 그 역할에 집중하셨다.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지역축제의 수많은 안내원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원활동가를 배려하지 않는 시민들도 있었고, 당사자의 적극적인 안내에 불편을 느낀 시민들도 있었다.

그런데 시민과 대화를 하던 당사자가 갑자기 스르륵 제자리에 쓰러지셨다. 구급차가 와서 확인해 보니 다행히 지병이 없으셨고 다친 곳이 없으셔서 금방 일어나셨다. 하지만 축제현장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민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으셨던 것인지,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으셨던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자원활동 역할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외 되었고, 축제현장을 즐길 기분도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 가족에게 상황을 설명드리고 후에라도 편찮으신지 살펴봐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 집에 가는 길에 동행해 가족을 기다렸다. 하지만 놀란 나와 달리 나이가 지긋하신 부모님께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맙다는 인사만 건네셨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분명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렸는데 조현병, 우울증, 불안장애 이런 말로는 설명이 어려웠고 당연히 지원할 방법도 몰랐다. 이후엔 자원활동을 하고 싶다던 그분을 만나긴 어려웠다. 대신 정신장애를 함께 가진 발달장애인이 많이 보이고 실제로도 많아졌다.

어렸을 때부터 정신과 약을 많이 복용하면서 구강상태가 안 좋은 어르신, 일을 잘할 수 있었지만 조현병이 있어 취업이 어려웠던 발달청년, 비장애인 친구들에게 폭력을 당한 이후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 정신장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이야기와 차별의 경험들이 보였다. 대부분 정신과 약을 오랫동안 드시고 계셨고 증상은 잡혔지만 사회활동을 하는 데는 개별적인 지원방식이 필요했다.

정신장애가 있는 이들이 더 차별적인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장애인복지를 한다면서도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알 길이 없다는 것은 더 막막했다. 하지만 언젠가 장애인복지법 15조(정신장애인은 다른 법의 지원을 받으니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제한을 둘 수 있다는 조항) 폐지를 주장하며 바닥에 앉아 손을 하늘로 치켜든 정신장애당사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 모든 당황스러웠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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