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다니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공부는 정신장애와 관련한 공부였다. 모르기 때문에 사회복지를 하면서 가장 막힌 곳이라고 여겼다. 살면서 스스로 어려움을 지나가는 방법이라고는 책을 읽어 공부하는 게 최선이었기에 어려운 의학용어와 낯선 영어를 쓰는 수업들을 쫓아 들었다. 다양한 정신장애의 모습을 배우고 다가가는 방법을 배우는 게 주된 관심사였다.
그러다 한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교수님의 수업에서는 어려운 용어 대신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교수님은 ‘자유가 치료다’라는 이상한 말씀을 하시면서, 학생들을 치료하길 원하셨는지 출석체크도 하지 않으셨다. 한 학기 수업 노트에는 알 수 없는 말들이 가득 적혔다.
‘정신병리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우리는 정신질환이 없다는 망상. 이는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 어쩌면 우리는 가정하며 사느라 현재를 살고 있지 못한다.’
‘가만히 두어도 다양하게 성장한다.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가난, 장애에 집착했던 나를 보게 됐고, 완벽해 보이던 사람들이 함께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들이 갑자기 튀어나올까 불안해서 억누르고, 할머니처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진 세상을 믿지 않는 모습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정신병리에 대해 써보라는 과제는 정말 하기 싫었다. 건들면 안 되는 것을 삽으로 파내는 것 같고, 누군가에게 속을 뒤집어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낸 리포트에는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겪은 사고들이 내 안에 있던 불안을 더 키웠다고 분노했다. 하지만 그 불안은 개인만의 불안이 아니었다는 걸 배웠다고 전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분노한 후에는 자책감들이 몰려오고, 이내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진다고 고백했다.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사소한 일에 격하게 화내고 싶지 않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타인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싶다’고 적었다.
그리고는 자신 있게 ‘정신병원 폐쇄병동’과 ‘탈시설운동단체’에 실습을 핑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대학원에서 ‘정신보건’을 더 배웠다고 해서 더 완벽하게 알지 못해도, 공공정신병원과 인권단체는 더 사건 사고가 많은 곳이라 더 불안해지더라도, 자유로운 삶을 어떻게 살게 하는지 보는 게 더 중요해졌다.
정신병원에 실습을 나가서는 어려운 의학용어와 증상에 대해 다시 익혀야 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신발을 갈아 신고 나면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 사람들을 만났다. 병원 밖에서 탈원화를 지원하는 기관들을 방문해서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지혜를 얻고, 다시 폐쇄병동으로 들어가 당사자가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제도나 기관들을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었다. 병원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있었지만 실습생이라는 신분으로는 당사자와 직접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인권단체에서는 그동안은 잘 이해해서 정보를 알려드렸어야 했던 ‘부양의무제, 장애인등급제, 장애인 시설 수용’에 대해 폐지해야 한다고 배웠다. 실습생인데도 불구하고 시설 밖을 나온 사람들과 시설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시설에 수용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이 중요한지 연구해야했다. 혼자가 된 발달장애인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결국 수업시간에 마음에 남았던 말들이 맞다는 걸 확인했다.
‘평범한 삶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나를 사랑하는 누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평범한 것을 지키려고 우선순위를 미루고 몰두하는 조직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온 몸으로 지역사회에 살아가길 표현하는 발달장애인, 그 이의 평범한 삶을 알아내려 애쓰고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함께 버텨내고 싶은 마음으로 활동하는 '탈시설운동'에 반해버렸다. 여전히 불안하고 무기력해지고 세상을 믿지 않았지만 분노가 아닌 큰 기쁨 알맹이 같은 걸 발견한 것 같았다.
실습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온 어느 날, 폐쇄병동에서 함께 실습했던 동료가 한 당사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무표정의 당사자가 탈원화를 지원하는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활짝 웃고 계셨다. 이 분이 정말 같은 사람이 맞는가? 매달려 들여다보았다. ‘자유가 치료다’라는 이상한 말이 눈에 진짜로 보였다.
그래서 이후로는 ‘탈시설운동’이라는 더 이상 막히지 않고 기쁠 것만 같은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