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인 40대 주부가 장애인의 차별을 왜 연구해?

by 이정

어느 날 갑자기 책상에 앉아 학교에 가겠다고 원서를 쓰고 있었다. 아무리 의견서를 써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들이 많을 때였다. 큰 복지기관에서 일하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운영을 시작한 기관에서 같은 일을 했다. 만나는 사람들도, 지역도, 행정도,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공무원은 다른 태도로 찾아왔다. 직원들 월급날이 되면 월급도 못 받는 부모 활동가 센터장이 공무원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런데도 서류 점검이라도 받는 날이면 뭐라도 잘못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없는 쥐를 잡은 듯이 찾았다. 복지관에서 근무할 때는 늘 선물을 들고 웃으며 찾아온 사람들은 협력을 위한 요청에도 ‘줄 것 없다’라는 태도를 앞세웠다.

40대에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 둘과 살고 있었기에 학교에 가서 대단한 것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장애 당사자나 가족의 목소리를 터부시 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는 시간을 지나고 보니,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은 학위가 있는 사람이나 공무원에게 도움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보니, 그저 현장에서 말하는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되게 하기 위한 기술, 도구 같은 것을 갖고 싶었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며 학교에 다니는 부모가 없었기 때문에, 공동육아까지 하면서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었다. 교수님에 대한 정보나 학업 과정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집에서 가장 가깝고 아이들이 병원을 가야 할 때 빨리 갈 수 있는 학교로 가야만 했다.

학업계획서에는 장애 당사자, 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체자로서 시민사회, 전문가, 행정과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싶다고 적었다. 학업을 마치고 나면 ‘장애 당사자와 가족이 쉽고 가깝게 법과 제도 같은 옹호 체계를 체감하고, 그 주체자로서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에서 활동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공부하면 할수록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온 생각이 꽂혔다. 연구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적인 차별은 개인적 차별이 아님을,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차별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양하고 심각한 사회적 차별을 보여줄 수 있는 ‘사회적 차별’에 관한 데이터와 선행연구들은 적었다. 사회적 차별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장애인은 조사 대상의 80%가 넘게 매우 높지만 줄어들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아는 사람은 40%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교육받고 있거나 일을 하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조사한 경우라, 더 많은 사회적 차별에 노출된 사람들은 데이터에서도 보이지 않아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해외의 연구에서는 장애인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차별에 관한 연구들이 많았다. 인종차별 등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서 시작해, 차별 철폐 정책이 장애인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가에 관한 연구들이 있었다. 정말 부러워서 더더욱 ‘사회적 차별’을 연구주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치열하게 지나갔다. 결국 일은 그만두게 되었고, 그동안 멈추었던 영어 공부에다 외계어 같은 통계까지 공부해야 했다. 학업 스트레스와 불안은 높아진 듯했지만, 나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언제나 그래왔듯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비슷하게 잘 보냈다. 그렇지만 절대적으로 앉아있는 시간이 매우 필요했던 것이라 놀러 가서도 주저앉아 있는 나를 지켜보는 가족의 인내심이 컸다. 고집부리며 데이터도 별로 없고 선행연구도 부족한 ‘사회적 차별’에 대해 연구했기에 교수님, 동기, 선후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함께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업 분위기 속에서 직설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면서도 위로받고 사람까지 얻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건강 관련 삶의 질의 효과를 중심으로, 중・고령 지체장애인의 사회적 차별과 자살 생각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제출할 수 있었다. 사회적 차별에 관해 공부하면서 차별이 남기는 물리적인 영향뿐 아니라 정신적인 영향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인은 4.6명으로 비장애인의 3배가 가까웠다. 살펴본 데이터에도 자살 생각을 한 사람뿐 아니라 시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32명이나 됐다. 하지만 장애인의 자살은 개인의 우울로 치부되고 돌봄을 준다고만 여겨지는 사람들의 우울함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는 중・고령 시기에 장애인이 사회적 차별을 경험하거나 건강과 관련한 삶의 질이 안 좋은 경우 더욱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몹시 어려운 길을 돌고 돌아 다 쓰고 나니 할머니에 대해 연구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려운 단어와 숫자들로 가득한 논문을 읽고 있는데 ‘병신’이라며 자신을 향한 낙인을 입에 달고 살았던 할머니가 내 앞에서도 ‘죽어야지, 죽어야지’를 반복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그 말이 특별하거나 무섭지 않고 할머니에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을 차별하는 수많은 순간 속에서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라고 외치지 않은 할머니를 다시 이해하게 됐다.

누군가는 거친 연구라고 말했지만, 거친 연구주제보다 더 거칠고 분노했던 마음들을 잘 다듬어서 쓴 것이라 만족했다. 꼭 ‘사회적 차별’을 쓰고 싶다는 고집을 지킬 수 있게 이끌어주고 가장 나다운 연구주제라고 알아주는 이들이 있어 고마웠다. 결국 우리가 겪은 고통이 ‘사회적 고통’이었다는 것을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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