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by 이정

2020년, 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자회견이 열린다고 해서 선배들과 함께 케이크를 준비했다. 기자회견에 케이크를 사가는 일이 몇 년 만에 올까 말까 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927일 동안 국회 앞에서 이어 온 노숙농성을 해산하는 자리였다.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터라 ‘운동’이 무엇인지, 과거사법 통과가 어떤 의미인지 헤아릴 개념이 머릿속에 없었다. 기자회견장으로 가는 길에 선배활동가가 물었다.

“정하는 무슨 운동(movement) 했었어요?”

“운동이요? 저 운동(exercise) 진짜 싫어하는데...... 운동 안 해요.”

누구보다 진중한 선배활동가가 그동안은 듣도 보도 못했을 해맑은 대답을 듣고 어떤 표정이었을까? 보지 못했다. 민망해서 더 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땐 운동이나 과거사법이 인생을 뒤집고 뒤흔들 수 있단 걸 전혀 알지 못했다.

30대까지 평범한 주부, 시민의 시간을 살았다. ‘운동’보다는 ‘시위’라는 단어가 더 익숙했다. 뉴스에서 빨간 머리띠에 단체복을 입고, 손을 하늘 위로 뻗치는 사람들의 쉰 목소리가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일 테니 적극적으로 반대할 관심도 없었다. 복지현장에서 만난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은 뒤풀이 시간이 되면 대학시절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곤 했었다. 그분들은 학생시절 학생회 같은 낯선 조직에서 활동하거나, 학교 졸업을 하는데 오래 걸렸다는 말을 줄곧 했다. 대학시절 ‘반값등록금’을 위해 활동하던 선배들과는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다. 수업을 많이 듣고 늘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에게 ‘반값 등록금’ 요구보다 급한 것은 용돈을 마련하고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어디서도 ‘운동’,‘활동가’,‘투쟁’에 대해서 들어본 바가 없었다.

국회 앞 기자회견 장에 도착해 보니 기쁜 자리라고 하기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무거웠다. 다크 투어를 하며 만났던 서산개척단 어르신들은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고, 단체의 회원으로 만났던 변호사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현수막 위에 철퍼덕 앉아계셨다. 전국의 집단수용시설에 강제수용되었던 사람들 뿐 아니라, 수많은 국가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유가족이 모인 기자회견이었다. 역사책에서도 들어본 바가 없는 극심한 인권침해 사건들이 귀를 스쳐갔다.

사람들은 과거사법의 제정을 축하하면서도, 과거사법에 대한 아쉬운 마음들로 울먹이고 있었다. 일본에 강제징용을 갔다가 서산개척단에 수용되었던 피해생존인, 억울한 일이 있어도 노인이 될 때까지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해 온 사람들이 앞서 울었다. 그 뒤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모두가 개정안 통과를 축하하며 기뻐하는 이 순간, 저는 마치 가슴속에 모래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만 같다. 그럼에도 저는 이 모래알갱이가 먼지가 될 때까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은 바로 과거사 사건의 피해당사자로서 다른 아픔들을 마주하는 일이다”

3여 년 동안 노숙농성을 해 온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인 대표가 발언했다. 법이 통과되었는데 왜 무너졌을까? 그땐 그 말의 무게를 알지 못했고, 그 투쟁에 이끌려 새로운 빛을 보게 될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노숙 농성장에는 정갈한 살림살이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그 소중하다는 농성장을 철거하면서 눈물로 기뻐했다. 우리는 준비한 케이크에 초를 켜고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작고 위대한 농성장은 마술같이 금세 사라졌다. 사람들은 곧 누군가가 그 귀한 자리를 다시 채우고 힘든 투쟁을 할 것이라 했다.

그 후 5년 동안 과거사법에 철저하게 기대어 활동했다. 수많은 피해생존인, 유가족과 함께 국가폭력 피해의 진상을 규명받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국회 앞 농성장이 있던 그 자리에 서서 그때의 대표님, 새로운 대표님과 함께 다시 과거사법 개정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외쳐야 하는 활동가가 되어있다. 여기저기 움직이는 게 운동인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운동’이라는 길에 들어서고 나니 세상사, 그리고 내 인생사도 참 신기하고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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