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원을 거부한 어르신의 기록

by 이정

2020년 코로나19가 일상이 돼버린 시기, 인권침해가 발생한 노인양로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노인양로시설에는 극심한 학대피해로 인해 오게 된 어르신이 계셨다. 나는 양로시설은 ‘요양’ 시설과는 달리 학대피해 노인이 잠시 머물며 회복하는 ‘쉼터’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권침해 사건이 늘 보도되는 ‘노인요양시설’과는 다른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애쓰던 3년 동안 이곳도 나의 할머니도 죽기까지 벗어날 수 없었던 노인요양시설과 다르지 않은 구조였다는 연결고리를 처음부터 보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노인양로시설에 들어가 조사를 시작하던 첫날부터 교수, 심리상담가, 법률가, 의사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사건의 진실을 조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게다가 여론의 관심이 뜨거웠기에 조사 결과가 진실되게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다면 당연히 할머니들의 삶의 변화가 펼쳐지리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곧 어김없이 할머니들이 ‘시설’에서 오랫동안 인권침해를 견뎌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감은 두려움이 되었다. 나의 할머니 같은 또 다른 어르신들을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눈물 없이는 하루를 버티기 어려웠다. 이 시설의 인권침해 제보가 처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때부터 기대감은 사라졌다. 알고 보니 수년 전에도 어르신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외친 사람이 있었고 제보자만 사라지게 된 일이 있었다. 그렇게 시설의 문제는 계속되어 왔고 문제가 더 심해지자 다른 이들의 제보가 시작된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학대피해생존인으로 시설에 들어오게 된 이후, 오랫동안 학대피해를 증언하는 인권활동을 하며 살아오셨다. 시설 안에서 자신의 삶이 함부로 다뤄져도 참거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분에 넘치는 일이라 여겨오셨던 것 같았다. 어르신들은 자신의 인권침해를 인터뷰하는 내내 시설 직원들을 염려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자신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 그동안의 인권활동이 무색해지거나 시설이 있던 자리에 더 큰 요양원이 들어오는 것을 우려하셨다. 조사결과 보고서에는 시설이 어르신들이 지역사회로 돌아가 평안한 여생을 보내는 일보다는 후원금을 모아 더 큰 요양원을 짓는 일에 목적을 두고 운영해 왔다는 사실과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보다는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감내해 오셨던 역사가 담겼다.

하지만 언론이 구조적 인권침해나 어르신의 생애 대신 ‘얼마를 횡령했는가’라는 숫자에 집중했다. 반복되어 온 시설의 문제와 한 사람의 삶은 사라지고, 돈의 행방만이 기사 제목이 되었다. 한 달여간 시설의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두꺼워진 어르신들의 증언 기록, 학대 피해에 대한 증거 자료들은 A4 2-3장의 보도자료로만 알려졌다. 심지어 시설을 옹호하는 언론은 그 돈을 제대로 못 쓴 것이지, 개인이 사리사욕을 채운 것은 아니라는 말로 시설을 변호하기도 했다. 행정은 노인양로시설이 예산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더 좋은 시설로 어르신들을 모시겠다는 시설의 변명 같은 말장난에 적극적인 행정 처분을 미루었다.

행정과 언론이 돈의 문제만 다루고, 어르신의 삶을 재조명하지 않자 분노한 시민들이 행동에 나섰다. 어르신들이 인권침해 피해생존인으로 살아남은 이후 인권운동을 하며 살아오신 삶을 알고 있었거나 이에 연대해 온 시민들이었다. 시설이 자리한 마을의 주민들은 시설이 어르신을 감금했고, 행정이 시설을 ‘불법지원’을 하고 있다며 현수막을 내걸었다. 주민감사청구를 제기하면서 어르신들이 삶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행정의 역할을 요구했다. 시설의 후원자였거나 자원봉사자였던 시민들은 운영기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는 어르신들의 지역사회에서의 평안한 여생을 보장하지 않았다. 여론은 선거국면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사건의 맥락을 짚어내지 못했다. 나를 비롯하여 노인의 시설화 문제를 다룬 경험이 부족한 민간단체들은 애만 쓰다 흩어졌다. 그래서 조사 마지막 날 어르신이 말씀하신 “나 집에 갈 수 있어?”라는 거대한 질문은 노인의 탈시설로 기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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