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원하던 이들의 반란

by 이정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모두는 편안하고 품위 있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처럼 비참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요?

-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중에서 -


『동물농장』을 읽으면서 탈시설 운동에서 만난 여러 장면이 겹쳐졌다. 동물들이 말한 ‘상상하는 것 이상의 편안하고 품위 있는 생활’과 ‘비참한 생활’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과 시설에 있었던 사람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온 세계를 뒤덮고 시설에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우리는 그들을 그저 숫자로 기억할 뿐, 어떤 생애를 살다 갔는지 알 길이 없다. 해외에서는 사망자 절반이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한국은 다양한 종류의 시설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정확한 사망 통계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K-방역 시스템이나 헌신적인 시설이 알아서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을 위한 일들을 해주리라 생각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지역사회와 시설의 경계가 두텁고 분명하던 그때 시설에 있던 한 청년과 그의 어머니가 탈시설 운동에 문을 두드렸다.

“지오(가명)가 몸이 약해서 병원에 갈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가 요양원인 줄 아느냐.’ ‘여기가 병원이냐.’ ‘아이가 시끄럽고 다른 아이들의 생활을 방해하니까 다른 시설로 옮겨라. 산골에 있는 조용한 데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설은 부모님에게 지오님을 데려가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지오님과 함께 살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시설에 더 있게 해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했다. 거부와 애원이 반복되는 사이 지오님은 얼굴에 앙상한 뼈가 보일 때까지 말라갔다. 결국 부모님은 앙상해진 자녀 앞에서 어떤 시설을 들어가든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오님이 시설을 나와 서 살 수 있는 집도, 지원할 사람도 먼저 준비할 수 있는 말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탈시설 자원을 연결해 나가자며 다가 선 사람들의 말을 믿고 지오님의 시설 밖의 삶을 결심하셨다.


‘동무들, 여러분의 결심이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헛된 논쟁에 솔깃해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느니, 인간의 번영이 곧 동물의 번영이라느니 하는 감언이설에 절대로 귀를 기울이지 마시오. 모두가 새빨간 거짓말이니까요.’

-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중에서 -


‘가족이 있는 사람은 활동지원 시간을 더 받을 수 없다’, ‘중증 장애인은 시설에 있는 게 낫지 않나?’,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탈시설이냐? 또 다른 시설이 아니냐?’ 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거세게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부모님과 활동가들은 서로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과 활동가들은 활동지원 서비스 심사를 받는 동안은 지역사회에서 꼭 살고 싶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집을 신청하고 떨어질지도 모르는 두려움 앞에서는 의연해야 했다. 중증 장애인과 함께 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과 지역사회를 만날 때에는 인내하며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그러므로 이 투쟁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완벽하게 단결해야 하오. - (중략)- 힘이 세든 약하든, 똑똑하든 모자라든 우리 모두는 형제입니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되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니까요.’

-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중에서 -


한편 탈시설한 지오님은 이런 주변의 흔들림이나 결의에 찬 단결과는 상관없다는 듯 꿋꿋하게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설에서 문제행동이라고 여긴 것들을 수정하기 위해 양팔과 다리에 채워져 있던 고정장치를 떼어내고 2주 만에 90도로 굽힌 채 들지 못하던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이 생기고 난 이후에는 늘 허기진 듯 냉장고에 집착하던 습관이 사라지고 체중이 10Kg 증가했다. 무릎 꿇고 거실을 뱅뱅 돌던 습관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손을 이끌고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자신의 집을 방문했던 부모님에게 먼저 가라고 등을 떠밀기도 했다. 부모님을 만나면 더 이상 예전에 시설에 있을 때처럼 울지 않았다.


우리의 불안했던 마음을 확 되잡아 준 지오님의 꿋꿋한 삶의 장면이 『동물농장』에도 등장한다. ‘설탕’에 현혹된 암말 몰리가 “(농장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뒤에도 설탕이 있을까요? 갈기에 리본을 달고 다닐 수 있을까요?”라고 걱정하며 묻는 장면이다. 이에 대해서 수퇘지 스노볼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당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그 리본이야말로 바로 노예의 징표요. 자유가 리본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걸 모른단 말이오?"라고 질문을 되돌려 준다.

지오님의 탈시설 과정을 지켜본 부모님도 시설을 밖을 나와보니 달라진 자신의 시선을 이렇게 고백했다.

옛날에 형제복지원도 ‘한 명 당 얼마를 줄게’ 하는 순간 변질이 돼서 무조건 사람을 잡아넣었던 것처럼,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인권이 다 없어지고, 그저 돈이 되는 한 명, 아니, 한 명도 아니고 ‘한 개’가 되는 겁니다.

-지오님의 부모님 발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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