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위로하는 하루
외로움이 몰려오는 순간
샤워를 하다가 아득해졌다.
텅 빈 집안에 사랑하는 가족이 하나도 없이 혼자라는 사실이 나를 공격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간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오전에 트래킹을 나가서 바닷길을 걸으면서도, 발걸음이 무겁고 축축 쳐졌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더 기분이 처졌다.
할 일도 없고 기다릴 사람도 없었다.
- 영영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울증으로 접어들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생각이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또 찾아왔다.
어질러진 거실을 대충 치우고 골프 연습장에 나갔다.
이미 캄캄한 밤이었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제주도의 바람은 거칠고 사나워서 짐승이 울부짖듯 메아리를 만들었다. 골프 연습장의 그물이 세찬 바람이 칠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출렁거렸다.
팔이 아파서 클럽을 들기도 힘들었다. 스윙은 갈수록 어설퍼졌다. 공은 거의 맞지 않았다.
-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비싼 돈을 들여서 치지도 못하는 골프를 치며 시간을 죽이려고 애쓰는 내가 싫었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십 대에도 이십 대, 삼사십 대에도, 그리고 오십 대에 접어든 현재도 각자 나름의 이유로 불행했다.
처음부터 타고나길 그런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 이 정도면 행복한 거지, 뭐.
내일이면 또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세상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일 뿐, 가족과 친구가 있을 때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고 해서 새삼 불행할 것도 없었다.
오늘 밤에 이 마음을 일기장에 털어놓고, 내일은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다면.
푹 달인 한약처럼 검고 끈끈한 외로움도 제주 바람에 흔적없이 날려 버리자.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떠날 테니까. 그들이 사라져 간 것처럼 나도 떠날 테니까.
까짓 외로움쯤이야 하룻밤만 지나면 사라질거야...
여느 때처럼 침대에서 웹툰을 뒤적이다가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동지가 가까우면서 밤은 점점 더 일찍 찾아왔다.
내일도 일기예보는 '맑음'.
잔인하도록 화창한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