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이 아름답다면

찰나를 붙잡는 시선

by 유랑

아침에 눈뜨면서 생각했다

끔찍하게 외로운 하루가 또 시작됐다고.

나와 띠동갑인 어머니는 12년 전 아버지와 사별하고 63살에 혼자가 됐다.

나는 12년 이른 51살에 혼자가 되었으니, 현재만 놓고 본다면 큰 차이는 없달까.


지금 이 순간만 놓고 본다면

티 하나 없는 푸른 하늘에 양떼구름이 몽글몽글한

11월의 금요일 아침,

작은 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쏴아 쏴아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파도처럼 들려온다.

내 침대와 맞닿은 창틀 너머로 푸르스름한 수평선이 보인다.


어제는 험난한 바위를 넘어가는 계곡 트래킹을 했다.

마음속으로 '텐션-텐션-텐션'하고 읊으며 중심을 잡으 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한번 리듬을 타니까 빠르게 바위 끝을 날 듯이 타 넘어갈 수 있었다.

그저께는 서귀포 올레길을 네 시간 이상 걸었다.

내일 또 트래킹을 나가고 오늘 하루는 휴식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외로움과 친해지는 과정인 걸까.

어차피 인간은 혼자이니 그런 구분조차 무의미한 걸까.

입 안이 델 것처럼 뜨거운 커피를 만들어옆에 놓고

브런치에 일기를 쓴다.

십일월부터 삼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철 이른 제주 동백꽃이 장미처럼 환하게 피어올랐.

냉장고 서랍 가득한 귤은

수분이 빠진 껍질이 질겨졌지만 여린 속 알맹이는 차고 달콤하고 부드럽다.


소파에 앉아서 눈물 흘리지 말고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고

카페에서 글을 써야지.

아무도 읽지 않는 긴 소설을 쓰다가

긴 채를 휘두르며 우드 샷을 연습하고

적막한 밤에는

안 쓰는 물건들을 지.


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지난 기억들이 모두 아름답고 허망한 꿈이었다 여기.

아무리 그립더라도

자꾸만 돌아보고

집착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