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네 오두막집을 그냥 사지 그래?

6. 오두막집 집들이

by 유랑

집들이에 놀러 왔던 친구들 중 하나가 문득 말했다.

- 그 집 그냥 네가 사지 그래?


닭볶음탕 안주로 술을 실컷 마시고 간 며칠 후였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그는 와인잔을 들고 뾰족한 목조 천장을 보면서 감탄을 연발했었다.

여기서 글 쓰면 글이 저절로 술술 써지겠다라며.




오두막집을 산다는 생각을 꿈에도 안 해본 내가 되물었다.

- 산다고? 얼마 정도에?

- 음... 한 삼억?


이전에 지나가는 말로 육지에 아파트가 있지만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했던 게 생각난 모양이었다.

그 아파트를 팔면 오두막집을 살 수 있지 않겠냐고.


'오두막집을 산다고?'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물론 오두막집이 무척 좋고 수도권 아파트를 판다면 살 돈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여기를 진짜로 산다면?

오두막집 별채만 산다는 건 불가능할 거 같다. 주인이 별채만 따로 팔 것 같지도 않거니와 부득이하게 나중에 팔아야 할 경우 오두막집만 덜렁 사겠다는 사람도 없을 거다.

주인집과 카페를 포함한 필지와 건물 전체를 사들인다면 모를까. 그런데 나 혼자서는 목조주택과 카페를 사용하지도 못할 뿐더러 임대를 주거나 관리할 능력도 없다.

오두막집이 좋은 건 의지도 되고 마당도 관리해 주는 주인집이 있고, 거기다가 적당히 한적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카페도 바로 옆에 있으며 주인아저씨와 아들, 그리고 카페 사장님 부부가 다들 좋은 분이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꼬리를 흔들며 무조건 애정을 주기만 하는 마당개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뙤약볕이 쏟아지던 여름, 정전이 됐다. 글 쓰다가 불이 꺼져서 내다봤더니 마침 주인아저씨가 들어오다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다고 울타리문으로 다시 나갔다.

옆집 카페 사장님은 마당 호스로 카페 지붕을 겨냥하고 연신 물줄기를 뿜어냈다.

카페도 정전이라 에어컨을 못 쓰는데 귤창고로 쓰던 돌집이라 열기가 엄청나다고 했다.


카페 사장님이 휴대폰으로 통화하더니 여름철 전기 사용량 급증 과부하로 전봇대 퓨즈가 나갔다고 했다.

나는 더위라면 질색이지만 에어컨을 계속 틀어놨기 때문에 오두막집 안은 서늘했다.


세면대로 가서 수도꼭지를 눌러보니 수돗물은 잘 나왔다. 일단 화장실 걱정은 없었다.

싱크대 아래에는 부루스타도 있었고 햇반이나 라면 등 데워먹을 음식도 충분했다.


밤에도 불이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현관 입구에는 빨간 손전등이 있었다.

처음 이사 왔을 무렵에는 밤에 주차장에서 오두막집까지 손전등을 들고 다녔지만 익숙해지자 희미한 별빛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온 후로는 캠핑을 별로 안 다녔는데 드레스룸에는 캠핑 풀장비가 있었다.

캠핑용 랜턴은 지속 사용시간이 무려 열두 시간이었고 보조배터리도 있었다. 백패킹용 버너와 이소가스도 세 통이나 있었다.


노트북은 여섯 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으므로 전기가 안 들어오면 차 몰고 스타벅스로 피신해서 풀충전해오면 된다. 백패킹도 하는데 전기 없이 하루이틀 지내는 거야 문제도 아니다.

카페 사장님은 휴대폰으로 한참 통화를 하더니 또 마당에서 지붕으로 물을 뿌렸다.

카페 영업은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빵 반죽 다 해놓고 오븐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정전이 돼버렸다며 허허허 웃었다.

주인아저씨는 전기기술자이기도 한데 한전에서 나온 기술자를 도와서 부지런히 전봇대를 수리 중이므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했다.


나는 집 안이 너무 더워지면 스타벅스로 가야지, 아예 서귀포 시내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올까 하면서 맘 편히 노트북 작업을 했다.

카페에 손님이 찾아오자 카페 사장님이 사정을 설명하는 모양이었다.

개를 데리고 놀러 온 손님들이 처마 밑 야외 의자에 앉아서 마당을 보면서 음료를 마셨다.


서너 시간 만에 실내등이 켜지면서 가전제품이 일제히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부지런히 냉기를 뿜어냈다. 냉동실 안 얼음도 아직 녹지 않은 상태였다.

산꼭대기 절간보다 더 고요하던 오두막집의 침묵이 살짝 아쉬울 정도였다.


전기가 안 들어와도 귤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귤들은 잘만 익어가고 마당개는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에 앉아있었다. 한전 기술자분과 주인아저씨는 전봇대에 올라가서 끊어진 퓨즈를 수리하고 카페 사장님은 에어컨 대신에 찬물을 뿌려서 건물을 식히고 어쩌다가 손님이 오면 전기 없이 만들 수 있는 요거트나 주스를 만들어 팔았다.


나는 맘 편히 노닥거렸다.

다 그분들 덕분이었다.

그런데 여기 오두막집을 내가 산다고?


지인에게 나는 주인아저씨가 오두막집만 떼서 팔 것 같지도 않고 주인집과 카페를 다 사서 나 혼자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세가 그리 비싸지 않고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므로 계속 살 수 있으면 사는 거고 나가라고 하면 나가는 거라고.

오두막집 자체도 좋지만 이웃 분들이 다 같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라고 했다.


지인은 납득이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도 해보고 와인바도 운영해 보고 제주도 와서 몇 번째인가 연애도 하는 중인 그라면 부지런히 카페 영업도 하고 주인집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거나 살림집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시 생각해봐도, 내 주제에 오두막집 주인은 어림없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편하게 지내다가 나가야 할 사정이 생기면 떠나가야 한다.

소유가 얼마나 무거운 짐인데.


소유하지 않는 게 머리 아프지 않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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