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주카펜터와 카페느슨

느슨한 사람이 뿜어내는 푸근한 아우라

by 유랑

‘카페느슨’은 제주도 서귀포시 중산간로 귤밭 한가운데에 있는 반려견 동반가능 카페이다.

땅 주인인 제주카펜터가 낡은 귤창고를 손질해서 영업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는 귤창고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제거하고 튼튼한 구조목으로 만든 목조 지붕을 얹었다. 오래전 누군가가 큼지막한 돌에 시멘트를 발라서 지은 귤창고 바닥이 직사각형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붕도 그에 맞춰 길쭉한 사다리꼴로 만드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처음에 제주카펜터는 직접 귤창고 카페를 운영할까도 생각했다.

부지런한 그는 앞마당에 잔디를 깔고 초입의 키 큰 종려나무를 중심으로 철마다 꽃을 볼 수 있도록 동백나무와 귤나무, 배롱나무를 심었다. 잔디밭과 귤밭의 경계에는 수국과 장미와 꽃무릇도 가꿨다.


초록빛 담쟁이는 카페 담벼락을 타고 올랐고 목조 지붕 천장에 난 창을 통해 밝은 햇살이 쏟아졌다.

기분 좋은 공간이었지만 손님은 별로 찾아오지 않았다.

카우보이 모자에 선글라스를 쓰고 뚝딱뚝딱 집을 짓는 솜씨 좋은 목수 제주카펜터가 감칠맛 나는 요리나 데코레이션 실력은 조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제주카펜터는 현실 자각을 마치고 카페 건물을 임대하기로 했다. 그는 보러 온 사람 중에서 말이 잘 통하는 젊은 부부와 임대 계약을 맺었다.


큼지막한 애완견을 키우는 부부는 외딴곳에 위치한 카페를 실내에 대형견도 데리고 들어올 수 있는 애견 카페로 운영하기로 했다. 카페 이름은 ‘느슨’이라고 지었다.


바로 옆에 직접 목조주택을 지어서 살고 있던 제주카펜터 역시 마당에 보더콜리와 닥스훈트를 한 마리씩 키우고 있었으므로 애견 카페를 연다고 하자 두 손 들고 환영했다.


먹는 것에 진심인 카페 안주인은 입맛이 까다로운 만큼 요리 센스가 훌륭했다.

그녀는 직접 빵을 만들고 메뉴를 개발했다.

카페느슨에서는 다양한 커피류 외에도 미숫가루 같은 맛이 나는 제주 보리개역과 제철 과일로 만든 스무디, 요거트 등을 팔았고 강아지들을 위한 음료인 멍푸치노도 있었다.


카페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수입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바깥주인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귤 농사를 짓는 한편 편백나무 공방을 열었다. 제주카펜터가 주차장 가장자리에 뚝딱뚝딱 뾰족지붕 공방 건물을 지었다.

카페 손님이나 관광객들은 원데이 클래스에 참가해서 목공예품을 만들어서 가져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카페 안주인의 요리 솜씨는 나날이 늘어갔다. 부드러운 롤케이크와 버터향 나는 소금빵은 물론이고 다쿠아즈라는 마카롱 비슷한 디저트나 샌드위치에 넣을 잠봉뵈르 햄까지 직접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반려견 ‘메밀’은 노랗고 가느스름한 눈이 만만치 않은 성깔을 암시했지만 잘 길들인 개답게 사람을 물지는 않았다. 애견 카페의 손님들은 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 이들이었으므로 메밀이 컹컹 짖어도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거나 눈치를 봐서 사슴처럼 짧고 거칠거칠한 털을 쓰다듬어주었다.


잡종견 메밀이 카페 손님들의 관심을 독차지하자 제주카펜터의 보더콜리와 닥스훈트는 샘이 났다.

영리한 보더콜리는 사람의 인기척이 날 때마다 나무 울타리 위로 펄떡펄떡 뛰어오르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눈치 없는 닥스훈트는 마당을 뛰어다니면서 시끄럽게 짖어댔다.


목조주택 건축 의뢰가 뜸해서 심심하던 어느 날 제주카펜터는 사무실로 이용하던 별채도 세를 놓기로 마음먹었다. 사무실은 비어있는 창고 하나만 치워도 충분했다.


별채는 거실과 침실, 욕실이 한 개씩인 오두막집이었는데 실평수가 십오 평에 불과했지만 널따란 데크와 작은 창고도 있었다. 세입자로 들어올 사람은 제주카펜터와 마당을 같이 사용해야 하므로 조용한 성격에 개를 좋아해야 했고 중산간을 오르내릴 차도 있어야 할 것이었다.


올해 초 나는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부동산 매물을 보고 제주카펜터의 집을 찾아갔다.

높다란 거실 천장은 뾰족지붕 아래 공간이라서 가운데가 높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비스듬히 경사가 졌다.


나는 제주카펜터의 근사한 이 층짜리 목조주택보다 어설프고 장난스럽게 생긴 오두막집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는 낡아빠진 자동차도 있었다. 하지만 대도시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내가 과연 서귀포 중산간에서 생판 낯선 사람인 우락부락한 제주카펜터 바로 옆 오두막집에서 살 수 있을까.


다음날 나는 또 오두막집에 찾아갔다.

겨울이라 추웠고 마당의 잔디도 바싹 메말라 있었지만 붙임성 있는 개들은 낯선 이를 보고도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집 안도 집 밖도 무척 고요했다.


카페느슨의 카페라테는 쓰지 않으면서도 진하고 고소한 커피맛이 과연 맛있는 맛이었다.

프릴이 달린 하얀 앞치마를 입은 쓴 똑 부러지는 인상의 카페 여주인은 옆집 사는 제주카펜터와 십 대 아들 둘 다 무척 조용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며칠 후 나는 차에 짐을 모조리 싣고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지나는 동안 카페느슨 입구의 동백나무는 날마다 붉은 꽃송이를 뚝뚝 떨어뜨렸다.

한적한 길가에도 붉고 흰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졌다.


추위가 누그러지자 귤나무마다 초록 잎사귀 사이로 일제히 하얀 귤꽃들이 피어올랐다. 꽃봉오리는 눈송이를 닮았고 자그마한 꽃에서는 귤향기가 났다.

제주카펜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터 소리가 요란한 예초기를 돌려서 기세 좋게 자라난 잔디를 깎았다.

오두막집 사방에 난 유리창은 연두색부터 진녹색에 이르기까지 각기 농도가 다른 다양한 초록빛으로 물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슬이 반짝이는 잔디밭을 바라보면 게스트하우스에 온 여행자가 된 것만 같았다.

급하게 나설 필요 없는 장기투숙자이므로 느긋하게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다가 데크에 나와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했다.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보더콜리는 무릎 옆으로 바싹 다가와 애교를 떨었다.

강아지의 눈 사이에 난 하얀 털을 쓰다듬다가 말랑말랑한 귀를 만지고 등뼈를 따라서 살살 쓸어내리면 부스스한 긴 털이 마당으로 날렸다.


오후에는 카페 앞으로 나가서 푹신한 잔디밭을 지나고 귤밭을 한 바퀴 돈 다음에 오두막집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꽃다발처럼 피어오른 진보랏빛 수국을 감상하거나 갓 피어난 크림색 장미 향기를 맡다가 정원을 공들여 가꾼 카페 주인에게 미안해지면 커피를 한 잔 사서 마셨다.


더운 여름이 지나면서 노지 감귤은 튼실하게 알이 굵어졌다.

추석을 앞둔 날 카페느슨에서 귤 따기 체험을 한다고 해서 가위와 바구니를 빌려서 귤밭으로 들어갔다. 귤나무마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귤들이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금세 탐스러운 귤을 바구니 하나 가득 땄다. 계산을 하러 들어가자 카페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나한테 어떻게 돈을 받겠냐며 귤은 오다가다 그냥 따먹으라고.

오두막집으로 돌아와서 귤을 하나 까자 풋풋하고 싱그러운 귤 향기가 온 사방에 진동했다.




카페느슨에는 손님이 점점 많아지는 중이다.

커피와 빵도 맛있고 푸릇푸릇한 잔디 마당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푸근한 사람들이 풍기는 고소한 아우라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나 보았다.


*인물과 지명은 일부 사실과 허구를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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