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욕을 하고 다닌다고?

인간관계의 어려움

by 유랑

오랜만에 지인 언니와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사랑스러운 그녀가 고른 장소답게 초록초록한 공원을 바라보는 카페는 쾌적한 인테리어에 바삭한 빵에 야채샐러드, 계란 크로켓, 구운 옥수수를 알차게 곁들인 브런치도 맛있었다.


연락이 뜸하던 그녀를 찾아간 이유는 내가 예전에 그녀와 함께 활동했던 트래킹 동호회에서 탈퇴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탈퇴한 후에는 동호회 인터넷 페이지에서 퍼올 수 없는, 예전에 내가 썼던 트래킹 후기를 퍼서 메일로 보내주었다.




제주의 모든 곳을 걸어가 보고 싶었지만 길 모르는 나에게 트래킹 동호회는 고마운 곳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트래킹 모임에 나갔다.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마음 넓고 친절한 사람들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호의를 베풀며 어울리기 위해 애썼다. 어차피 몰고 가는 차이므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가 있으면 카풀로 내 차에 태워주었고 가끔은 밥을 사거나 간식을 사기도 했다.


나는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자리를 피하는 편이었지 드러내놓고 싸우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동호회에서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예를 들면 A와 B가 어쩌다가 빈정이 상해서 대판 싸웠다고 치자. A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고 B는 그럭저럭 잘 지내던 편이었지만 A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B와는 그만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 뒤로 A와 친한 무리와 B와 친한 무리들은 분리가 되고 나도 자연히 B와는 볼 일이 없어져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B의 무리들이 A를 신나게 욕하다가 덤으로 내 욕까지 하도 다닌다는 거였다.


B와 그 무리들과는 이전에 괜찮은 사이였고 내 쪽에서 호의를 베푼 적도 많았는데 그들이 없는 말을 지어내며 내 욕을 했다는 걸 듣자 화가 났다.


동호회에 가끔 나오기는 하지만 가족에게 더 집중하는 편인 지인 언니는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은 남의 험담을 듣고 싶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다.

그 후로 언니는 쓸데없는 감정싸움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대신에 마음 터놓을 절친은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와는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의 사소한 인연이 이어져서 잘 지내는 편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자리를 옮겨서 커피를 마시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한낮의 여름 햇볕은 뜨거운데 마땅한 카페가 보이지 않았다. 도로 브런치를 먹었던 카페로 돌아와서 커피를 주문하면서 지인 언니는 ‘우리 되게 웃기다’며 깔깔 웃었다. 카페 직원들이 저 사람들 뭐라고 하겠냐면서.


나는 그거야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이고 금방 까먹을 거고 오늘이 지나면 기억도 못 할 텐데 뭘.


동호회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내 욕을 하고 다닌다는 말에 발끈한 나에게 지인 언니는 ‘그 사람들, 곧 기억도 못할 거야.’라며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어떻게 사람들이 나한테 넙죽넙죽 받아먹고 뒤돌아서서 욕을 하냐고 서운해하자 ‘그만큼 사랑도 많이 받았잖아.’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B보다 훨씬 나은 인성의 A와 가까운 사이로 남기를 택한 후 A무리들과 나는 더 가까워졌으니까.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인 언니에겐 그런 친구들이 없었다.


하지만 쿨한 지인 언니도 한때는 가깝게 지냈던 C를 싫어했다. C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듣기 불편한 험담이었다. C도 단점이 있겠지만 나는 사생활이므로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지인 언니는 남편과 자식 자랑과 흉을 실컷 늘어놓았는데 그 또한 가족이 없는 내가 오래 들을 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처지가 다르면 관심사도 다른 법이니까.


다음날 A가 나와 C 등등 가까운 지인들과 저녁을 먹자며 연락을 해 왔다.

솔직하고 뒤끝 없는 그에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런 욕을 먹고 있었는데, 너 보기에는 내가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A는 몇 가지 예리한 지적을 해 주었다. 내 입장에선 여기까지 호의를 베풀겠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그다음이나 다음다음까지를 기대하고 있었으므로 그러면 무척 기분 나빠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생각이 달랐고 C도 내가 하는 행동이 이해 안 간다며 기분 나빠한 적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C에게서 거리감을 느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날 저녁에 중식당에서 A와 C를 포함한 다섯 명이 어울려서 식사를 했다.

고추잡채를 꽃빵에 올려 먹으면서 A가 새로 시작한 사업에 대해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B 무리들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럴만한 가치도 없었고.


저녁식사 자리가 파하자 나는 먼저 일어났다. 더 어울리고 싶기도 했지만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시면서 얼큰하게 술이 오른 그들을 2차까지 따라가기도 애매했다.


혼자 돌아오는 길은 외롭고 처량했다.

아마도 나는 친구들과 밤바다를 보면서 나의 억울함과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역성을 들어주길 원했던 거 같다.

내 하소연 듣기보다는 즐겁게 떠들며 진탕 술 마시는 걸 원했던 그들은 가까운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2차를 했다고 들었다.

그 시간에 나는 조용한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나는 그들을 모두 트래킹 동호회에서 만났다.

A와 B가 싸운 지도 일 년이나 지났고 나를 싸잡아 욕했던 무리들도 이제는 까맣게 잊어버렸을 거 같다.

기분 나빴던 일은 잊어버리고 A와 C, 지인 언니와는 가끔 볼 것 같다.


오다가다 스쳐 간 사이라도 잘해주려면 끝까지 잘해줘야지 인간관계에서 ‘여기까지’란 건 없다는 걸 배웠다. 그런 만큼 내 앞가림은 알아서 하고 사람은 잘 보고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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