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헤어진 전남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프롤로그. 이혼한 지 일 년 만에 쓰는 이야기

by 유랑

작년 크리스마스가 지났을 무렵 이혼했다.

그를 처음 만나서 사귄 지 이십사 년, 결혼한 지 이십 년 만이었다.




나에게는 이혼이 그에 대한 미련을 끊어내는 일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더는 기다리지 않는 일.


사랑하는 연인이자 남편이었던 그는 어느 날부터 얼굴 마주치기 무서운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내가 말을 걸면 그는 화를 냈고 그가 느끼기엔 나도 별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자기 기분만 생각한다는 점에서.


나는 혼자서 자주 울었다. 그는 모른 척했다. 그도 힘들었고 나를 달래기에는 너무 지쳤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집에 살면서도 그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릴 뿐, 그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끝도 없는 외로움에 지쳐서 차라리 헤어지기를 원했다.


처음에 그는 이혼에 반대했다.

정 힘들면 서류는 그대로 놔둔 채로 따로 살자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졸혼(?) 같은 걸로.

그는 오랫동안 아내인 나를 자신의 가족이자 일부분으로 여기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이혼 요구나 재산분할 같은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에게도 내가 아파도 참고 잘라내야 할 암세포 같은 걸로 보였는지 이혼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육 개월간 별거하면서 이혼날짜와 재산분할 협의를 마쳤다.

이혼하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가면서 앞으로는 그와는 남남이 되어 다신 못 볼 줄 알았다. 가장 가까운 연인이자 가족으로 산 세월이 이십사 년, 남편이기 이전에 부모형제보다 더 가까운 가족과 생이별을 한다는 게 가슴아팠다.


하지만 이혼한 후에도 우리는 자주 연락하진 않지만 어쩌다 연락이 오면 반가운, 오래된 친구 같은 사이로 지낸다.

아직은 일 년 밖에 안 지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차츰 멀어지다가 세월이 더 지나면 아예 안 볼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그를 여전히 좋아하고 아직까지는 그도 나와 비슷한 감정인 것 같다.


그와 나는 둘 다 자기중심적이라 처음부터 결혼생활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결혼했다는 이유로 나는 그가 내가 그려놓은 이상적인 남편과 다르다며 미워했다. 그는 어느 날인가부터 더 참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했다. 그때부턴 서로 나눌 마음도 없었고 함께 하고 싶은 시간도 없었다.

마음이 안 통하는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와 헤어져서 남남이 되고 나자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알 것 같다.




그는 좋은 사람이고 매력적인 연인이었지만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연인이자 한때는 부부였던 우리는 이제 거의 연락하지 않고, 앞으로 만날 기약도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신뢰하는 친구로 지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