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혼할 때 불행하면 결혼할 땐 행복했나요?
A. 글쎄올시다, 잘 모르겠네요
오전 열 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김포공항으로 갔다. 법원까지 택시를 타고 갈까 했는데 공항으로 그가 마중을 나와주었다.
약속대로 1번 게이트로 나가자 그의 하얀색 차가 내 앞에서 멈췄다. 그는 차에서 내려서 내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었고 내가 조수석에 타자 법원으로 차를 몰았다.
십이월 이십칠 일, 전국에 하얀 눈이 펑펑 내렸던 낭만적인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틀 후였다.
법원 주차장에는 한쪽 구석에 치워놓은 지저분한 눈더미가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는 그를 따라 종종걸음을 쳤다.
처음 찾아오는 관공서의 출입문 구조는 복잡했다. 그는 똑바로 앞만 쳐다보면서 거침없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냈다.
이층 복도 테이블 앞에 앉아서 그는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어 이혼신청서를 작성했다. 그가 건네준 볼펜으로 나도 내 인적사항을 적어 넣었다. 그 남색 크로스 볼펜은 오래전 내가 해외 출장 다녀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사서 그에게 선물한 거였다. 그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접수창구에 이혼신청서와 재산분할합의서를 제출하자 안경을 쓴 통통한 공무원이 한 달 후 출석하라며 접수증 두 장을 주었다. 일월 삼십일일이나 이월 칠일 중 편한 날에 둘 다 출석해야 하며 한 명이라도 출석하지 않거나 둘 다 출석하지 않으면 이혼신청은 없던 일이 되는 거라고 했다.
그와 나는 접수증을 한 장씩 나눠 가졌다.
그의 차를 타러 돌아오는 길에야 비로소 말을 걸 수가 있었다.
- 서귀포는 눈 다 녹았는데.
- 거기도 눈 많이 왔어?
- 어. 엄청 많이. 나 크리스마스에도 캠핑했는데 큰 도로는 다 통제되고 그랬어.
- 그랬냐. 점심은 뭐 먹을래?
그는 뒷좌석에 가방을 던져두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의 차는 내 차보다 훨씬 좋은 차라서 차 안도 넓고 쾌적했다. 푹신한 아이보리색 가죽시트에 앉았는데, 배는 조금도 고프지 않았다.
뭘 먹어도 목이 멜 것 같은 이혼한 날 점심 메뉴로는 뭐가 좋을까.
- 냉면은 어때?
- 아는 데 있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와 나는 각자 스마트폰으로 냉면집을 찾았다.
그가 가까운 데 삼십 년 전통 냉면집이 있다며 차를 몰았다.
좁은 골목길 안쪽의 오래된 냉면집은 작고 허름했다.
티브이를 켜놓은 식당 안에는 점심식사 중인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가격 저렴한 동네 맛집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생활에 찌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좁고 붐비는 그 식당에 들어가기가 끔찍하게도 싫었다.
이혼하는 날 마지막으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그와 식사를 하고 싶다면 유치하고 철없는 생각인가.
형광등 불빛 아래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안색이 희끄무레한 생선처럼 보이던 그 좁고 허름한 가게를 본 순간 온몸이 돌처럼 굳어진걸 어떡하나.
내가 질색하는 기색을 눈치챈 그는 짜증이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걸 참느라 힘들어 보였다.
- 그럼 어딜 가고 싶은데?
나는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다가 그가 예전에 괜찮다고 말했던 중국집 이름을 댔다.
그는 네비를 쳐보더니 거리가 멀다고 했다. 지도앱에서 가까운 중국집을 찾아서 여긴 어떠냐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대꾸도 안 하고 차를 몰았다.
학원가 건물 칠 층에 자리 잡은 중식당은 한적했고 간단한 코스 요리도 나쁘지 않았다.
그가 '낮술 한 잔 하면 좋을 텐데 차 때문에 술을 못 마시네'라며 어설프게 웃었다.
'내가 운전할까',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그를 보며 웃었다.
그는 내 운전이라면 치를 떨었는데 이제와서 와이프도 아니고 남남인 나에게 애지중지하는 차를 맡길 리 없었다.
이십 년 전 그와 결혼식을 올렸던 날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던 그와 나는 친정이 있는 지방도시에 내려와서 부모님 아파트에서 하룻밤 자고 식을 올렸다. 피곤한 채로 신부화장을 마친 나를 보며 그는 같은 날 결혼하는 신부 네 명 중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면서 함빡 웃음을 지었다.
하얀 예복을 차려입은 그도 나름대로 근사해 보였다.
팔박구일간의 신혼여행에 집중하느라 스드메는 시늉만 내다시피 간소하게 했지만 서울 친구들은 결혼식장이 멋지다며 한껏 축하해 주었다.
아마도 나는 그때 행복했겠지?
평생 가장 행복한 날이었으니까.
지금에 와서는 잘 모르겠다.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건 아마 원래부터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생각난 게 결혼식 때 눈물을 보인 건 신부가 아니라 신랑, 내가 아닌 그였다.
눈물을 훔친 그에게 왜 우느냐고 묻자 그냥 독신생활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내가 도끼눈을 뜨자 그는 너무 행복해서 운다고 둘러댔다.
그러고 보면 결혼할 때 울었던 그도 이혼하고 나서 웃는데, 나도 그와 비슷한 심정인지 모르겠다. 아까 억지로 냉면집에 들어갔으면 그대로 펑펑 울었을 것 같다. 그가 중국집으로 와 줘서 다행이었다.
신혼부부라기보다 권태기에 접어든 오래된 연인이었던 우리는 화려한 신혼여행 패키지가 아닌 저렴한 일반 해외여행 패키지로 허니문을 다녀왔다. 그때 사용했던 캐리어를 나는 이번에도 가져왔다.
그와 이혼하면서 가져갈 짐을 챙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