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전남편이 끓여준 생일 미역국

이십 년 간 서로 생일날 미역국 한 번 안 끓여주었던 부부

by 유랑

이혼법정에 출두하러 서울로 간 날은 내 생일 이틀 전이었다. 그는 기념일을 챙기는 걸 번거롭게 여겼고 나도 알콩달콩한 성격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생일을 따로 챙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 생일 보름 후가 그의 생일이었는데 그가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으므로 나도 그의 생일을 안 챙기는 걸로 맞대응했다. 그러니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에는 처음부터 인성이 많이 부족했던 게 나라는 인간이었다.




‘이혼하시겠습니까?’라는 판사의 질문에 초등학생이 출석부에 대답하듯 우리는 ‘네’하고 말했다.

이혼 법정에 우글우글 모여든 다른 부부들의 행색은 가지각색이었다.

미리 계획해 놓은 일을 해치우듯 그와 나처럼 태연한 중년도 있었고 연예인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젊은 커플도 있었으며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아서 겨우 걸음을 떼는 노인도 있었다.

각자 사정이야 있겠지만 대체로 부부로 살았던 세월 때문인지 나란히 있는 게 대체로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세 쌍 중에 한 쌍은 이혼한다더니 이혼은 생각보다 별 것 아닌지도 몰랐다.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이혼하는 부부'답게 대판 싸운 것처럼 잔뜩 굳은 이들도 있었다. 갓 이혼한 여러 쌍이 3층 재판장에서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오는데 한 아저씨가 인상을 쓰면서 전 부인에게 ‘카드 내놔’라고 말했고 전 부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신용카드를 건네주었다.

그와 나는 법원 건물을 나오면서 그 아저씨 흉을 봤다. 그 말을 하려면 그 전이나 후에 하지 꼭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해야 하냐, 그 아주머니도 같이 살기 참 힘들었겠다며 뒷담화를 했다.

이혼 확정 날에는 법원 앞 우동집에서 초밥을 곁들인 우동 정식을 먹었다. 그리고 주민센터를 찍고 그의 아파트로 갔다. 이혼은 법원 판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혼인신고하듯 이혼신고도 따로 주민센터에 해야 하는 거였다. 그 사흘 후에 주민센터에서 이혼처리가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그의 아파트는 여전히 깔끔했다. 그는 살림살이하는 방식에 대하여 자신만의 원칙이 확고했고 내 살림 솜씨는 그의 기대 수준에 한참 못 미쳤다. 그때그때 장을 봐서 신선식품은 신선하게 먹어야만 한다는 그의 신조에 나는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나는 장 보고 요리하는 걸 귀찮아해서 서로 큰 스트레스였다.

그의 부엌은 평소 소신대로 동선을 고려해서 빈틈없이 효율적으로 살림살이를 수납해 놓았다. 그렇지만 냉장고에 식료품은 예상보다 많았는데 본인도 직접 해보니까 그날 요리해먹을 만큼만 장을 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달았단 거지!


제주도에서 그에게 선물로 주려고 레드향을 가져왔다. 그의 식료품을 축내거나 살림살이를 손대면 안 될 것 같아서 식료품도 따로 챙겨 왔다. 별건 아니고 누룽지와 수프 따위였다.

그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를 위해서 배와 귤을 사놓았다며 비싼 레드향은 왜 쓸데없이 많이 갖고 왔냐고 눈치를 줬다. 장도 미리 봐놨다며 저녁으로 떡볶이와 낙지볶음 중 무엇을 먹겠냐고 물었다.

낙지볶음을 택했더니 그는 태양초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화끈하게 매운 낙지볶음을 만들어 주었다. 한입 먹는 순간 입에서 불이 났다. 너무 매워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그가 기껏 나 때문에 낚지를 사서 요리했는데 몇 입 먹지도 못해서 미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전생에 여우와 두루미였나 보았다.

나는 제주도에서 챙겨 온 꿀약밥햇반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에게 여러 번 미안하다고 말했더니 그는 먹다 남은 낙지볶음은 다음에 밥 비벼 먹으면 된다며 피식 웃었다.


다음날 내 생일에는 그가 미역국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내 생일이니까 미리 즉석 미역국을 사놓았다면서.

그의 말에 무척 고마웠지만 정작 미역국을 얻어먹은 것은 저녁이 가까운 늦은 오후였다.

이혼신고서류를 다 냈으니 부동산 재산분할 등기를 하느라고 그가 바빴기 때문이었다.

평소 그는 아침과 점심은 거르다시피하고 저녁 한 끼 제대로 먹고 야식을 먹었는데 나는 아점이나 오후 간식 정도는 먹어야 했으므로 쫄쫄 굶다시피 미역국을 언제 줄거나 이제나저제나 목 빠지게 기다렸다.

동호회 지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생일축하 카톡과 기프티콘을 보내 주었다.


드디어 그가 데워준 즉석 미역국을 먹으면서 제주도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보았다. 그에게 민폐를 끼치고 우는 소리 할까 봐, 이번에도 미리 트래킹 약속을 잡고 왔다. 그러면서도 편도 비행기표만 끊어와서 기약 없이 그의 아파트에 머무는 내가 이해 안 가기도 했다.

가장 이상했던 건 이혼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나에게 생일 미역국을 끓여준 그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헷갈리는 기분이었다.



수도권 아파트는 택배가 하루 만에 왔다.

나는 비행기표 예매하면서 남성용 기초화장품 세트를 주문했다.

이혼 수속 밟는 동안 먹여주고 재워줘서 고맙다며 그에게 남성용 기초화장품 세트를 선물했다.

그러고 보면 그가 처음으로 생일 미역국을 끓여줬듯 이십사 년간 남자친구이자 남편이었던 그에게 기초화장품 한 번을 선물한 적이 없었다.

그는 ‘내가 생일 선물 해줘야 하는데’라고 무척 어색해하면서 잘 쓰겠다고 말했다.

이혼 다 하고 제주도로 내려갈 때도 변함없이 그는 나를 공항까지 차로 바래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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