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기야, 내 핸드폰이 고장났는데

내맘대로 해서 좋긴한데 기왕이면 더 좋은 기종을 알려주지 그랬어

by 유랑

- 저기, 내 핸드폰이 고장나서…

아주 구차한 용건이었다. 참고 또 참다가 하는수 없이 무척 없어 보이는 톤으로 비굴하게 카톡을 보냈다.




그는 전자기기를 좋아해서 내가 의류 쇼핑몰 구경하듯 최신형 휴대폰 모델을 알아보는 걸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이십년간 휴대폰을 직접 알아본 적이 없었다. 최신형 휴대폰을 싸게 살 수 있는 ‘버스폰’이 나오면 그가 단말기를 교체해주고 가장 저렴한 요금제로 알아서 가입해주었다.

무뚝뚝한 그에게 선물이라곤 일체 받아본 적 없다고 여겼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최신형 갤럭시 단말기에서부터 아이패드까지 줄줄이 받았으니까.

덕분에 나는 휴대폰 기능이나 가격에 대해 아예 무지했다. 애지중지하던 구형 LG단말기가 잔고장을 일으키자 어쩔 줄을 몰랐다. 설산에서 지갑도 없는 신세였어도 핸드폰만 터지면 LG페이나 카카오페이를 써도 되고 모바일 뱅킹도 되고 정 안되면 119 전화라도 하면 되는데.

인제 어쩌나. 내 차는 구형이라 네비도 없는데.

휴대폰이 고장나면 길치인 나는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였다.


오랫동안 SKT를 쓰다가 지지난해 그가 알뜰폰 요금제로 갈아탄다며 내 휴대폰을 가져가서 유심인가 뭔가를 끼웠다. 솔직히 나는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휴대폰을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사면 되는지 물어볼 사람이 전남편밖에 없었다.

근데 내가 이제와서 그에게 그런 걸 상의해도 되나??

일단 혼자서 해결해보려고 참고 또 참았다. 제주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휴대폰을 어디서 어떤 걸 샀냐고 물어보고 매장에도 가봤다.

네비가 자꾸 꺼져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펑펑 운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깟 휴대폰, 급하면 아무 대리점에나 가서 새로 사면 되지 뭐.

그래도 내 취향에 맞는 기기를 고르고 싶었고 단말기 가격이나 요금제도 뭘 몰라서 눈탱이 맞기는 싫었다.

그에게 연락하기도 애매했지만 그도 예전처럼 알아봐주거나 ‘이거 해’라고 결정해주지 못할 것이므로 – 순순히 따를지도 의문이었으므로 – 휴대폰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동하기로 했다.

아이폰14를 쿠팡에서 사기로 결정한 후, 막판에 그에게 연락한 구실은 신용카드 혜택 핑계였다. 휴대폰은 통화가 잘 안되서 보이스톡으로 통화했다.

- 저기, 내 휴대폰이 고장나서 쿠팡으로 아이폰14 사려고 하는데.

- 어. 음.


그의 두 마디는 참 많은 걸 내포했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그 불편한 아이폰을 네가 어떻게 쓰려고 그래. 어쨌거나 내가 알바 아니고 니가 알아서 해라. 근데 내가 뭘 해 줘야 하는거냐? 등등등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용건을 계속 말했다.

- LG서비스센터 가니까 유심 문제나 단말기 문제 두 가지 중 하나라는데… 일단 유심 바꿔보고 안되면 단말기는 수리비 많이 나온다니까 그냥 바꾸려고.

- 아, 그래?


나는 그의 반응을 좀 더 기다렸다. 유심을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나는 몰랐다. 그는 내 수준을 정확히 알고 있을 터였다. 과연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 너희집 근처 GS편의점에서 유심 파니까 사오면 되겠네.

나는 그가 시키는대로 유심을 사와서 갈아끼웠다.

새로운 유심을 단말기에 인식시키려면 고객센터와 통화해야 한다.

나는 전화가 안 되므로 그가 대신 고객센터에 연락해서 유심 일련번호를 등록해주었다.

그래도 전화는 잘 안 터졌다. 유심 문제가 아니라 4년된 구형 단말기의 문제였던 거다.


나는 플랜 B대로 쿠팡에서 아이폰을 사면 이틀만에 온다며 그에게 할인카드가 있냐고 물었다.

이혼 후에 몇 번인가 그와 긴 대화(?)를 나눴기에 내 휴대폰이 맛 가기 시작했다는 둥 그에게 할인카드가 있다는 둥 대충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가격비교를 해보겠다며 잠깐 기다리라더니 쿠팡 가격이 괜찮은 것 같다며 내 주소로 배송되도록 자기 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했다. 카드할인금액 7만원 빼고 입금하라고, 자기도 카드실적 쌓이고 좋다면서.


고마운 마음에 7만원을 안 빼고 전액 입금하자 그는 ‘안 그래도 되는데’라며 멋쩍어했다.

그래도 이제 남남인 그가 의지할 사람이 그밖에 없는 걸 알고 기꺼이 몇 시간이나 고객센터와 통화하고 유심 갈아끼우는 것까지 도와줬으므로 무척 고마웠다.

덤으로 이제 내가 무슨 단말기를 사든 내 마음대로였다. 그는 여태껏 아이폰은 불편하다고 못 사게했으니까.

그는 아이폰은 불편할텐데, 하다가 니맘대로 해라, 했고 저장용량 128이면 충분하고 부족하면 만원주고 내장하드 끼우면 되는데 왜 10만원이나 더 주고 256을? 했다가 니맘대로 해라, 휴… 했다.




내맘대로 해서 좋았는데 알고보니 아이폰14는 카메라 성능이 기대에 못 미쳤다.

기왕이면 10만원 더 주고 아이폰14 프로로 사라고 조언해 줄 것이지! 휴대폰 단말기 모델별 가격과 성능을 완전 다 꿰고 있더만.

무지한 나는 아이폰 14프로가 카메라 성능이 그렇게 차이 나는 건 줄 까맣게 몰랐는데, 기왕 신경 써주는 김에 그 얘기를 해줄 것이지!

전남편이 친구가 되서 좋긴 좋은데, 그게 이프로 아쉬웠다고나 할까!


이전 08화7. 부부일때도 남남일 때도 계산은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