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자! 그는 내일 모레 갈 거니까
현관에 세워둔 내 골프백을 보면서 그가 언제 산 거냐고 물었다. 비싼 건데 육 개월째 세워두기만 했다고 자랑하다가 요즘은 통 안 쓴다며 아쉬워했다.
말 나온 김에 다음 날은 실내 골프연습장에 가기로 했다.
골프연습장에 도착하자 그가 내 골프 백을 어깨에 메고 앞장서서 걸었다. 안내데스크에서 이용요금과 렛슨비를 문의하면서 잠깐 수다를 떨고 이 층 두 자리를 나란히 끊었다. 수평선이 보이는 서귀포 한적한 골프연습장이었다.
그와 골프 연습을 하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는 대학시절에 한 학기 골프 수업을 들었고 동남아에 파견근무하던 시절에는 필드에도 종종 나갔다고 했다. 회사 스크린 골프 동호회에서도 잠깐 쳤다고 했다. 나는 그와 별거한 후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골프 레슨을 받았으므로 그가 골프 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몇 년만이라는 그의 스윙은 사개월간 열심히 골프 레슨을 받은 내가 보기에는 그냥 말 많은 초보였다.
평소 하던 대로 나는 여유있게 연습하다가 쉬다가 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와 달리 거의 쉬지도 않고 채를 바꿔가며 부지런히 공을 쳤다. 돈 내고 연습장 끊었으니 본전 뽑아야겠다는 구두쇠 심보였다.
십년만에 골프채를 잡아본 그나 타고난 몸치인 나나 뒷땅에 헛스윙에 어설프긴 매한가지였다. 근데도 그는 평소처럼 아는 척을 했다. 나 또한 본성이 튀어나와서 레슨프로, 즉 전문가에게 배운 건 다르다며 옥신각신했다. 잘난 척 하기에는 둘 다 너무 못 치는 게 뻔히 보였으므로 우기는 것도 웃겨서 그냥 웃고 말았다.
제주도로 가자며 어렵게 내가 말을 꺼냈을 때 그는 ‘제주도에서 뭘 하냐’며 영 내키지 않아했다. 그러다가 ‘골프나 치면 되겠네’ 했다.
헌데 연세로 얻은 오피스텔에 살림살이를 대충 갖춰놓고 골프 연습장에 등록하자고 하자 그는 딱 잘라서 싫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는 골프 연습장도 저렴하고 퍼블릭 골프장도 많으니 같이 배워서 필드도 나가면 좋았을텐데. 그는 오십 평생 근검절약하며 일하다가 제주도에서 허송세월하는 것도 불안한데 골프를 치면서 돈을 쓰는 건 도저히 못 참겠나 보았다.
무더위에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공을 오십개쯤 치고나자 나는 앉아서 쉬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는 일 분도 못 쉬고 연습을 했다. 돈 내고 연습장을 끊었는데 앉아서 노는 게 용납이 안 됐던 거였다. 예전같으면 구두쇠 남편에 치를 떨었을텐데 이혼한 지금은 그냥 짠했다. 그의 재정상태도 충분히 괜찮으므로 좀 편하게 쓰고 살아도 될 텐데.
이혼수속이 끝나고 내가 내려간 후 그도 집 근처 골프 연습장에 가서 이용요금과 조건을 알아본 적 있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고 그 정도면 좋은 조건이니까 등록하고 배워보라고, 골프채는 가성비 좋은 걸로 하나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같이 그 멋지다는 제주도 해비치 골프장 필드에 나가보자고. 그는 내가 너무 적극적이라 또 겁이 났는지 아무 말 않고 피식 웃기만 했다.
골프연습장 이용시간이 끝나자 퍼팅장으로 그를 데려갔다. 퍼팅연습은 무료라고 강조하면서.
아무도 없는 퍼팅장은 시간보내기 좋았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 그는 금세 공을 밀어넣고 퍼팅은 이렇게 하는 거란다, 잘난 척을 시작했다.
오두막집으로 돌아오면서 그에게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 자기는 죽을 때까지 가진 돈 다 못 써.
그가 웃었다.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냥 하던대로 구두쇠로 사는 게 편하고 좋은 그였다.
저녁에는 집에서 OTT 영화를 봤다. 그와 나는 여전히 쿠팡 멤버쉽과 웨이브 OTT 아이디를 공유하고 있었다. 내가 언젠가 보리라 마음먹고 골라놓은 고전 영화를 그는 나중에 혼자 보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가 고른 최신 한국영화는 재미가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이전과 달리 매사에 심각하지 않았고 딱히 불평하지도 않았다. 그는 며칠 있다가 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