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진 찍는 법 가르쳐준 그 사람

여친일 때도 와이프일 때도 안 가르쳐 주던 걸 왜 지금 가르쳐 주는건데?

by 유랑

그와 나의 여름휴가는 6박 7일, 딱 일주일이었다.

내 마음속 마지노선을 귀신같이 어떻게 알았을까. 이십 년 사는 동안 그리도 내 맘을 몰라주던 남자가 이혼하고 나니까 아무 말 안 해도 잘도 알았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타인에게 말 걸 때 받아주는 분위기나 밀어내는 마음은 본능적으로 눈치채는 걸까.

부부라는 허울 아래 자기 편한 대로 억지 부리고 이기적으로 굴었을 뿐.




전남편과 여름휴가 나흘째, 서귀포에 있는 미술관에 갔다.

이번에도 칼럼 원고를 쓰기 위한 취재를 겸해서였다.

미술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새 아이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그에게 구도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마침 생각난 게 그는 대학원 때 렌즈가 대포구멍만 한 니콘 카메라를 들고 유럽 건축기행도 다녀왔었다.


그는 즉석에서 구도를 잡아주면서 내가 모르던 몇 가지 촬영 팁을 알려주었다.

게으르고 멍청하던 남편이 남남이 되자 사진기술에 대한 지식도 있는 게 해박하고 좀 멋진 남자처럼 보였다. 사진을 따로 배웠냐고 묻자 그 정도는 상식이라고 했다.


미술관 전체 건물과 정면 사진을 찍으면서 계속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디자인 관련 직업상 시각이 발달한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재능이 있었던지 감이 좋아서 즉석에서 구도를 바로잡아 주었다.

사진에서 수평이나 수직이 비뚤어지면 아마추어 티가 적나라하므로 그것부터 바로잡으라는 지적부터, 되도록 피사체를 크게 포커싱 해서 찍으라고 했다.

마침 미술관 정면에 설립자의 흉상이 보여서 사진 찍고 이건 어떠냐고 보여줬더니 ‘이 흉측한 모가지는 대체 뭐냐’고 어이없어하며 구박을 했다. 분위기가 아름답게 나와야지, 덧붙이면서.


그의 지적질이 지당한데도 ‘이 흉측한 두상’이라는 표현이 너무 웃겨서 나는 그만 빵 터졌다. 한번 웃기 시작하자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웃었다.

그리스 신전처럼 기둥이 늘어선 미술관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고상한 미술관 설립자의 흉상에 대고 ‘이 흉측한 모가지는 대체 뭐냐’라니.

금방이라도 시커먼 흉상이 입을 열고 인상 쓰면서 ‘뭐라고? 이 괘씸한 것들’이라며 버럭 소리 지를 것 같았다. ‘이 흉측한 두상’을 곁눈질하며 다른 사진을 찍으면서도 나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그는 그렇게 썰렁한 농담으로 이상한 포인트에서 나를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미술관 실내에서도 전시실 전경이나 작품을 찍는 사진 구도에 대해 그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자신감이 없어서 자꾸 같은 사진을 또 찍는다면서 한 장면은 구도를 바꿔가며 세 컷만 찍으라고, 작품사진은 도록이나 인터넷에도 다 나오니까 작품 하나하나를 잘 찍어야 할 필요는 없고 되도록 자연스럽게 전경을 묘사하듯 찍으라고 알려주었다.

미술관을 취재하며 서너 시간 동안이나 그에게 사진을 배웠다. 웬만한 사진클래스 개인지도보다 더 빡센 수업이었다. 그는 힘든 내색 하지 않으며 열심히 도와주었지만 대신에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점점 더 말투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와서 생각한다. 왜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는 여자친구였고 아내였던 나에게 사진 찍는 법을 한번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나는 그가 가진 값비싼 카메라를 보면서도 왜 그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취미활동에 대해 한 번도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좀 더 가지고 대했더라면, 취미와 지식을 공유했더라면 그토록 대화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정서적으로 빈곤한 부부로 살지는 않지 않았을까.

사랑이란 같이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것인데 왜 그와 나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까지 하고도 왜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을까. 이혼하고 남남이 되고 나서야 데이트 비스무리한 걸 하면서 사진 찍는 법까지 가르쳐주고 또 배우고 있다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미술관 취재에 끌려다니느라 피곤해진 그는 저녁식사를 하러 가던 길에 내가 운전을 엉망으로 한다며 짜증을 냈다. 그때껏 용케 참았던 잔소리였다.

이제는 와이프도 아닌 남의 차 조수석에 앉아있는 주제에 나더러 깜빡이를 안 넣는다느니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다느니, 예전에 하던 그대로 쥐 잡듯 야단을 쳤다.

참다못해 그만 좀 하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 순간 그도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운전이 엉망인 건 사실이지만 이십 년간 무사고로 차를 끌고 다녔는데 지금 와서 남편도 아닌 그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얼음 같은 침묵을 가르고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시청 공무원이라고 밝힌 앳된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몹시 기분이 나빴는지 공무원에게서 걸려온 업무상 전화를 받는데도 말투에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공무원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용건이 이거냐저거냐 묻는게 영락없는 개저씨였다.

‘어떻게 공무원 전화도 그렇게 받냐’며 혀를 차는 나에게 그는 공권력에 굽신거려야 할 이유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며 신경질을 냈다. 그러더니 볼일이 생겼으니 돌아갈 비행기표를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방금 전 공무원에게는 지금은 여름휴가 중이므로 한 일주일 후에나 처리하겠노라고 대꾸해 놓고.


‘그래, 넌 그렇게 살아라’

무례하게 전화를 받는 그를 보던 내 속마음이 그랬더라면, 엉망으로 운전하는 나를 보던 그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와 나는 서로의 취향과 성격을 잘 알았고 장점과 단점도 속속들이 알았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베고 또 베다 보면 그 물이 점점 두부처럼 굳어져서 단면이 싹둑 잘린다.

이기적이고 속 좁은 나와 나보다는 조금 낫지만 큰 차이는 없던 그는 그렇게 헤어져야만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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