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시간여행을 한건지도 몰라

신트라 < 포르투갈

by 나디아

2025. 1. 29. 목요일

리스본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원래 벨렝지구에 갔다가 오후에는 알파마 지구에서 해 질 녘을 즐길 생각이었다. 곳곳 전망대에서 야경을 만끽할까 했지.

그러나 리스본은 오늘 흐리고 비가 예보되어 있다.

어젯밤 긴급회의 결과, 우리는 좀 날이 흐려도 신트라 나들이는 괜찮겠지! 하며 급 신트라 당일 여행으로 계획을 선회하였다.

(그.러.나...........)

신트라 기차역. 이 색감 무엇. 범상치 않다.

호시우역(CP기차역)에서 신트라 왕복권을 끊어 기차를 타고 신트라 역에 도착했다.

날씨가 우중충합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희망적이었죠! 뭐 이쯤은!

오늘의 일정은,

신트라 역 → 무어성 → 페나 성 → 신트라 역, 점심 식사 → 헤갈레이아 별장 → 신트라 역 → 리스본 컴백!

신트라역 인포메이션에서 신트라 투어 1일 버스 티켓을 끊고 무어인의 성으로 출발합니다.

아..(탄식)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티켓 오피스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그래 좀 있으면 비가 그치겠지. 아 음료 자판기가 있네... 으슬으슬한데 핫초코나 마셔볼까, 뭐야 고장 이래. 쳇'

아 근데 비가 그칠 생각을 안 한다.

엇. 나 홀로 여행객 저 외국인은 우산도 없이 후드 점퍼 둘러 입고 출발하네?

우리도 가볼까? 그래 더 기다릴 수 없다! 출발해 봅니다.

와 아름답다 여기.

산신령 나오는 거 아니지?

너무 아름다운데?!

다행히 우리는 옷을 단단히 입고 나왔고 이곳은 비바람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곳이었다.(머리가 아프고 복잡한 고민이 있으신 분, 신트라 무어인의 성으로 초대합니다.)

풍경에 감동했고 이토록 궂은 날씨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우리는 실실 웃으며 우산 따위는 내팽개치고 비바람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풍경에 동화되었다.

가슴속 희뿌연 안개가 걷히는 듯했고 깊숙이 바람이 들어왔다.

근데 혼자라면 좀 무서웠겠는걸. 평소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는데 날씨가 이래서인가 근교 여행은 미루는 날인 가보다.

사람이 없다. 드문드문 관광객을 마주칠 때면 반가워서 절로 인사가 나올 정도.

무어인의 성 곳곳 요새 정상까지 오르는 지점은 두어 군데가 되며 꽤 가파르고 높다.

그러나 우리는 모조리 오르리라.

아 날씨는 참 얄궂다. 햇살이 구름을 뚫고 잠깐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숨어 버리고 금세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우리는 마치 꿈결처럼 안개비 속을 유영했다. 구름 위를 거닐 듯 마음은 안온한 평화로 가득 찼다.


비바람과 안갯속에 무어성 자체 투어를 마치고 나와 다시 434 버스를 타고 페나 성으로 간다.


페나성 도착. 티켓 사무소 한켠에 앉아 잠시 몸을 녹인다.

머리 젖은 거 봐. 지나고 보면 다 모험이고 추억이지만 험난한 하루였음을 내 몰골(?)이 말해주고 있다.

아 당 떨어진다. 입장해서 우리는 자그마한 스낵 자판기가 있는 부스를 보고 반갑게 뛰어 들어간다.

그러나 신용카드 결제는 안되고 나의 유로 잔돈 탈탈 털어 몇 번의 실패 끝에 자판기에서 핫 초코라테와 쿠키, 견과류 픽업에 성공했다. 낄낄낄 신난 우리의 표정이라니 여행은 참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페나성 입구까지 가려면 꽤 많이 걸어야 한다. 그것도 오르막길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나 우린 걸어간다. 당을 보충했으니. 우리는 걷는 여행자니까.

페나성에 입성하니 또 반짝 해가 나왔다.

그러나 5분을 못 가 어두운 구름이 몰려온다 참 이상한 날씨.

그래도 우리 잠바 떼기 좀 벗어보자며 정성스레 서로의 피사체를 사진으로 담아본다.

시시각각 흐린 하늘, 구름이 몰려오는 느낌이 사진에 그대로 담긴다.

먹구름이 또 우르르릉~~ 소리를 내며 몰려오고 있다.

잠바 떼기 입어~!

어머 저 하늘 좀 봐, 우리 오늘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지? 우리 괜찮겠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누군가 그랬다. 페나성을 실제로 가보고 실망했다고.

사진으로 볼 때는 색색깔 너무 이뻤는데 실제로 보니 색칠이 너무 낡고 벗겨지고 보수가 안 되어있어서 역시 멀리서 보아야 이쁘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난 생각했던 것보다 예쁘고 좋았다. 원색적이고 직관적인 색을 성 외부칠에 사용한 것은 어쩜 포르투갈 왕가의 취향이었을까 그동안 봐왔던 무수한 성들과 비교했을 때 이 얼마나 개성 있는가. 왕궁의 위엄성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까지 있으니 말이다.

이 깊은 산중에 있는 성은 그 간 유독 비를 많이 맞이했을 것이니 벗겨지고 낡을 수밖에.

그 세월의 때를 감추려 매번 페인트칠을 새로 하는 것보다 이 낡은 때 그대로 존재해 주어 세월을 더욱 눈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너무 배가 고프다.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버스를 타고 신트라 역으로 와서 이 식당을 찾아 들어온 건 오후 3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원래 가려던 레스토랑이 문을 닫아 가까운 곳 이곳의 문을 살자쿵 열었는데 어여쁜 인사와 함께 직원이 우리를 맞아 주었고 따사로운 공기와 불빛은 비에 젖은 우리를 품어주는 듯했다.

배를 채우기 전에 이미 사르르 몸과 마음이 녹았다.

유서 깊은 동네 식당 포스가 폴폴 났다.

하루 종일 비바람 속에 돌아다닌 우리, 토닥토닥 맞이해 주는 듯한 식당에서 따뜻한 수프를 우선 한 사발씩 먹었다.

아.......... 속 깊은 곳까지 따듯해지는 느낌.

샐러드와 생선 커틀릿, 밥도 시키고 샐러드 소스가 너무 맛있었던!

그러나 수프와 샐러드를 먹었다고 우리는 절대 메인 요리를 한 가지만 시키지 않지.

정어리 튀김을 빼뜨릴 수 없지

서로 토닥토닥 우리 너무 고생했다.

로컬 식당 느낌 뿜뿜한 이곳, 지친 몸의 우리를 이토록 환대해 주다니 잊지 못할 거야.


아 이제부터 맘이 좀 급해집니다.

헤갈레이아별장으로 가야 하는데 밥 먹고 나니 이미 시간이 4시가 넘었어요.

신트라 역에서 헤갈레이아 별장까지는 걸어가도 되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는 고로 후다닥 버스를 타고 도착하여 헤갈레이아에 입장합니다.


[사진 출처_ triple.guide›regions]

와~ 날이 좋을 때 가면 저런 풍경인 것인가

우리 뭐야 우리 날씨 왜 이럼.

헤갈레이아 별장은 정말 좋은 계절, 좋은 날씨에 오면 너무너무 이쁠 듯!

이 말을 우린 AI처럼 수차례 반복했다. 주절주절.

우리가 본 헤갈레이아 별장은 이렇다;; 그래도 사랑한다

자 이제 시작!

헤갈레이아에서 시작된 우리의 어드벤처!

때, 2025년 1월 29일 목요일 저녁 5시

장소, 포르투갈 신트라 헤갈레이아 별장

미스터리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누가 알면 답 좀.

별장 내부로 들어가 본다. 백만장자의 별장이라더니 화려하군. 날마다 이곳을 산책하며 지냈을 거 아냐.

꽃 만발한 계절이면 정말 예뻤겠다.(반복)

이 계절에도 꽃이 피어있으니 봄에는 얼마나 만발일까.(무한반복)

드디어 열린다.

미스터리어스한 시간!

시작부터 으스스하다

헤갈레이아 별장에서 유명한 스폿, 이니시에이션웰 (Initiation Wells)이라는 지하 우물,

지하 9층까지 내려가려면 아홉 바퀴를 돌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단테의 '신곡'에 영감을 받아 9개의 지옥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단테의 '신곡'은 단테가 저승 세계를 주제로 쓴 대서사시로 아홉 단계의 지옥이 나온다.

상징적인 숫자 '9'

계단을 내려가는 건 지옥에서의 속죄하는 과정이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라니

다 내려가서 꼭 올려다봐야지!

의미를 알고 보니 기분이 묘하다.

내려가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다 내려와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겸허해진다. 지은 죄가 있겠지 알게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동굴을 걸어 이렇게 유명한 폭포를 만난다.

저 다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분명 저기에 사람이 있었는데,,

포토 스폿으로 인기 있는 '우물'

분명히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건물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니시에이션 타워의 나선형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작은 연못 '우물'이 여행객의 포토 스폿으로 특히 인기 있다. 우물과 이어진 터널 입구와 초록빛 연못 위 돌다리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여행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문구를 보았고 우리도 두 눈으로 똑똑히 저 다리에서 사람이 서 있는 걸 보았다.

미안해서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지는 않았지만.

그럼 이 다리는 어딨 지? 우리도 가보자!

날씨도 시간도 어둑해져 그런가 신비로운 분위기에 우린 매혹되었다.

작은 폭포 물소리가 깊고 그윽하게 울려 퍼지는 왠지 현실 세계 같지 않은 이 느낌.

우리 둘이니 너무 다행이야. 혼자면 너무 무서웠을 것 같아. 그러니 우리는 할 수 있다! 모험심으로 똘똘 뭉쳐 저 다리를 찾아 나선다.

동굴을 빠져나와 대충 방향과 위치를 가늠해 보며 저 초록빛 연못이 있는 다리를 찾아 나섰다.

앙? 이쪽이 아닌가? 다시 돌아 이곳저곳을 누벼본다.

분명 사람이 있었으니 우리도 갈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하지! 찾을 수 있을 거야.

포기하지 않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헤갈레이아 별장, 지하 우물의 주변을 돌아 돌아 누벼본다.

아 이상하다. 우리는 길눈이 어둡지도 않고 방향감각이 나쁘지도 않은 꽤 숙련된 여행자...라고 생각하는데 한참을 헤맸지만 결국 못 찾았다.

그리고 급 무서워졌다. 가뜩이나 으스스 한 날씨에 만난 헤갈레이아 별장은 어둠이 내려앉아 왠지 공포체험장 같았다. 멋들어져 보이던 축 늘어진 나뭇가지들은 왜 자꾸 머리카락으로 보이냔 말이다.

연못을 찾으려 얼마나 집중하며 돌아다녔는지 인지하지 못한 사이 사람들은 다 나갔는지 아무도 없다.

그제야 시간을 보니 폐장 시간이 되었다.

낯선 곳에서 비와 어둠이 내리면 판단력과 인지력이 떨어지는 것. 들어왔던 입구 방향을 겨우 기억하며 더듬 더듬 이동했지만 아.. 막혀있다. 어디로 나가야 하는 거야.

들어온 곳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 출구는 따로 있었던 것.

아 무섭다.

결국 헤매다 우리를 발견한 관리인이 우리를 출구 쪽으로 인도했다. 휴우~.

안도도 잠깐 우리는 계속 미련을 못 버리고 "이상하지 않아? 왜 없지? 그 연못 다리........... 이상하다 미스터리해....... 이상해........"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그러나 또 하나의 난제가 우릴 기다렸던 건 몰랐지.

헤갈레이아 별장 앞에서 신트라 역으로 돌아가는 노선의 버스가 끊긴 것이다.

그럼 다른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다른 노선의 버스를 타지 뭐! 구글맵을 켜고 걸음을 재촉했다.

사위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어둡다. 아무도 없다. 우리 오늘 여행은 공포가 컨셉이냐며.

그러나 겁내고 있을 수 없다. 걸어야 한다 어서 버스를 잡아타야 한다. 걷자!

정신없이 걷다 보니 신트라 가구들이 모여있는 아기자기한 동네에 이르렀다.

바쁘게 걷는 와중에도 우린 "이 동네 너무 이뻐!!! 그치그치?" 조잘조잘

커튼 사이로 따사로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 달그락 저녁 식탁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을 맞이한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있겠지? 또 마음이 잠깐 뭉클해졌다.

정신 차려! 우리 버스 타야 해. 우리 오늘 리스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니.

그러나 난 또 이 순간을 잠시 붙잡는다. 이 공기에 푹 빠져 걷는다. 집들이 너무 아기자기 예쁘고 동네 골목골목이 너무 운치 있다.


어둠 속에서 한참을 걸어 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어째 버스가 올 기미는 없다.

신트라 역으로 가는 일반 시내버스는 운행 중이지만 우리가 가진 티켓으로는 안된단다.

비가 온다. 캄캄하다. 그리고 우리는 배가 고프다. (거지? 외쿡거지)

우리는 눈빛을 교환한다. (그냥 타보자. 유효한 티켓은 아니지만 우리 티켓을 내밀어보자.)

비를 맞은 외쿡인 여자 둘이 불쌍해 보이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원 데이 패스를 디밀며 눈을 맞춘다.

버스 기사, 들어가라는 손짓을 한다!

고마워요 오브리가도!!!

우리가 표를 안산건 아니고요, 우리 티켓의 버스가 안 오니 어떡해요. 그래도 우리가 잘했단 건 아니고요 고맙습니다 불쌍히 여겨줘서.. 오브리가도!

그럼 뭐 해, 우리의 어드벤처는 끝나지 않았다.

신트라 역에 내려 기차 시간이 된 것 같아 미친 듯이 달려 플랫폼으로 갔으니 기차는 떠. 난. 다. 우리를 두고.

우리 리스본 집에 갈 수 있는 거니.

더 세차게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너무한 거 아냐 하루 종일 이런 날씨라니.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1월 30일

쨍한, 너무도 쾌청한 하늘 아래

리스본,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에 서니

'어제 우리 꿈꾼 거 아냐?.................... 안개 그윽했던 무어인의 성에서의 그 공기

비 그친 페나성에서의 한낮

길을 잃었던 헤갈레이아 별장에서의 으스스한 어두운 저녁'

신트라에서의 하루가 한 여름밤의 꿈같아서 저 햇살아래 몸이 두웅실 잠시 현기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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