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한 NICE에서 머물며

길을 잃다

by 나디아

생 폴 드 방스 < 니스 < 프랑스

2018년 8월 13일 월요일


몇 년 전 묵었던 집으로 다시 예약했다. 따뜻한 말투를 가졌던 주인의 해같은 얼굴을 기억하며 말이다.

여전히 작은 베란다로 햇살이 들어찼고 여기서 빨래를 말리면 사각사각 햇살 냄새가 묻어나겠다.

그래 니스의 아침이야.

우린 아침을 먹고 나와 'PAUL'에서 모닝커피, 디저트타임을 갖는다.

어제 모노프릭스에서 장을 봐둔 계란 몇 알을 꺼내 부드럽게 스크램블을 하고, 누룽지를 보글보글 끓이고, 콩줄기를 올리브 오일에 살짝 볶고, 어설프게 빠알간 오이무침이 전부인 아침 식탁이었지만

햇살이 다한 식탁 차림을 만끽하고 나온 참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커피와 함께 크루아상 하나, 까눌레 하나쯤은 먹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우린 장 메드생가를 걷다 자연스레 폴 카페로 들어와 커피를 음미한다.

구시가를 향해 다시 걷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우비를 꺼내 입고, 언니는 우산을 척- 펼친다. 그리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린 또 전진.

오늘은 월요일, 살레야 앤틱 마켓 열리는 날이다. 아무것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우비가 이리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 우린 피렌체에서 머물다 니스로 넘어왔다. 미켈란젤로 언덕 가는 길에 맞닥뜨린 엄청난 폭풍호우.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여기저기서 우산은 날아가고 우린 그 마저도 없어서 주차된 어느 차옆에 바짝 붙어 쪼그려 앉아 폭풍을 피했던 그 오후.

그렇게 온통 다 젖은 채로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비 그친 석양을 바라보다 마주친 우산 장수에게 저 오렌지색 우비를 샀다. -

집념의 두 여인.. 비가 오는데도 리모지 에소잔 세트, 각종 컵코스터, 각종 앤틱 패브릭, 실버 커트러리 등등 알차게 건졌다.

구시가를 거닐다 어느 귀퉁이에 있는 우체국을 찾아간다.

낯선 여행지가 어색하지 않을 때쯤 엽서 한 장을 산다. 아침이 오면 빡빡 문질러 지울 지우개가 필요한 그 순간의 낭만을 담아 끄적 인후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중간에 길을 잃어 공중에 날려도 모를 편지를 부친다. 이번엔 토론토로.

이제 우리는 생 폴 드방스로 간다. 버스 탑승,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춘다.

다채로운 여행자들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위 아더월드 그렇게 아무 말 없어도 알 수 있다. 우린 지구별 여행자라는 것을. 또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겠다. 우리의 목적지는 모두 '생 폴 드 방스'였던 것.

그러니 우리에겐 약속이 있었지. 지구별 여행자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거든. 누군가 내리면 '아 여긴가 보다!' 하고 우르르 내리면 되는 거였지. 그러니 무슨 걱정이야.

난 이번이 니스 여행 두 번째, 생 폴 드 방스도 두 번째 방문이라 내릴 즈음이 되면 알아챌 것 같았지만

누군가 나를 데리고 내릴 테니 한껏 경계를 풀고 풍광에 취해도 좋았던 그 시간.

아무도 안 내리니 나도 안 내려.. 아 이상하다. 낯선데 너무 낯설어. 무뚝뚝한 프렌치 버스기사가 정차를 하고 뭐라 뭐라 하는 폼이 그래 여기가 종점이라는 거다.

버스 안 지구별 여행자들 단체둥절.

???? 아니 아니 버스 운전기사 참 시크하기도 하여라. 말 좀 해주지. 딱 보면 모르나 우리 다 '생 폴 드 방스'가는 걸!

그럼 여기서 회차하는 거냐 그럼 우리 생폴 드 방스로 돌아가서 내리면 안 되냐 이리저리 물어봐도 영어로 커퓨니케이션은 전혀 안된다. 그냥 무조건 내리란다.

이렇게 우리는 낙오되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우리 잘하는 거 하나 있잖아, 걷기.

무조건 버스가 왔던 길로 하염없이 내려가 본다. 서로 말이 없어지는 순간.

불시착. 여긴 어디 우린 누구.

길 잃은 우리, 여긴 꼭 강원도 어디쯤 같다며 주절대며 대책은 없지만 신발 벗고 좀 쉬어가기로.

당 떨어지는데 뭐 먹을 거 없나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본다.

우리는 얼마나 더 길을 잃을지, 혹시 길 위에서 우리 마음도 얼어붙을지 알 수 없으므로 잠시 멈춰서서 토닥여 본다. 내 마음을. 안보이는 당신의 마음을.

길을 잃어도 괜찮아.

바람과 햇살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도착!

돌아 돌아 도착한 이곳은 찬란한 햇살아래 조잘조잘 웃음소리가 가득 찬 채로 우리를 반겼다.

참 이상하지? 여행하며 유명 관광지가 싫은 이유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라며

이렇게 또 곳곳에서 들리는 정다운 웃음소리가 반갑고도 마음에 평화를 주니 말이야.

그렇지 사람이 아니면 무엇이 남겠니.

그래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남겠어.


몇 년 전 들러서 그림을 샀던 아뜰리에에 다시 방문하여 몇 년 전 이곳에서 그림을 사갔다는 이야기를 주인이자 화가에게 전하며 우린 서로 반가워했다.

"내 방에 아직도 당신이 그린 라벤더 밭이 있어요."

곳곳에 꽃이 너무 이쁜, 마을 전체가 아뜰리에였던, 그래서 우리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했던

이곳, 샤갈이 묻혀있는 생 폴 드 방스에서의 오후는 참 평화로웠다.


이후 니스로 돌아와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우리는 해변에서 물놀이를 했다.

집에 가서 밥 해 먹자며 아쉬운 마음을 몸과 함께 일으켜 마트에서 장을 봐 와서

와인 한잔과 함께 잠들었던

그날 밤. 꿈에 난 생 폴 드 방스의 어느 계단 위에 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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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아니면무엇이남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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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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