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레메 < 카파도키아 <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데니즐리를 거쳐 괴레메에 도착한 때는 막 여명이 가신 후.
도착하면 연락 달라고 했으니 숙소에 전화해 운을 띄워놓고 오토갈에서 서성이며 시간을 때워 본다.
온몸에 피로를 덕지덕지 묻힌 채 마주했지만
이곳은 다정하게 나를 반겨주는 느낌이다.
먼 시골 친척집에 온 것처럼 조금 낯설지만 설렌다.
한참 후 호텔 직원이 우리를 차로 픽업 왔고 데리러 오지 않았더라면 초행길에 찾기 쉽지 않았을 좁고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올라 동굴 숙소에 도착했다.
얼리 체크인을 해준 것도 고마운데 원래 오늘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건만 조식을 먹어도 좋다는 다정한 호의까지 더해주었다.
감사를 표하고 우린 방에 들어가 밥보다는 휴식이 먼저, 샤워를 하고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각자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잠깐 꿀잠에 빠졌다.
꿈을 꾸었다. 여긴 천국인가.
한두 시간 잤나 일어나 이 신기한 동굴 호텔을 시찰해 본다.
우리 방은 2층, 문 앞엔 마당처럼 너른 공용 테라스가 있고 테이블이 서너 개 있다.
이따 저녁엔 이곳에 앉아 별을 바라봐도 좋겠다.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 보니, 달그락달그락 아직 조식 시간이 끝나지 않았나 보다.
그럼 우리도 초대받았으니 합류해 볼까. 식빵에 햄과 갖가지 야채를 야무지게 조합하여 샌드위치 만들어 커피와 함께 먹는다. 삶은 계란과 요거트도.
#아바노스(AVANOS)
우리는 도자기 마을, 아바노스로 가기로.
괴레메 오토갈 도로 쪽에 있는 작은 로컬 버스 정류장에서 아바노스 행 버스를 타고 한 20여분을 달려 마을 초입에 내렸다.
강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 본다.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고요하게 흘러간다. 바삐 걷는 이도 없도, 강물도 그렇게 흐른다.
인적이 드문 동네 한복판에 들어서니 수많은 도자기 가게가 나오네.
어디로 들어가 볼까? 이럴 때 필요한 건 촉. 느낌적인 느낌으로 골라 한 군데 들어서본다.
흙을 빚는 작업이 일상인양 여기저기 흙먼지를 묻힌 옷을 입은채 자애로운 미소를 가진 주인이 우릴 맞아주었다.
애플티 한잔을 권하길래 우린 또 거절하는 법 없지. 가게 한 편의 얕은 테이블 앞에 쪼그려 앉는다.
새콤 달콤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짧은 단어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자니 우린 영락없는 동네 이웃 품새다.
그때 누군가 가게로 들어와 자연스레 합석을 하고 아저씨는 그에게 우리를 소개한다.
아저씨의 이웃은 아들이 곧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가지고 온 것이란다.
“아네~ 와! 축하드려요! “
우린 어느새 아바노스 주민이 되어있다. 도자기 가게 들어와 하는 일이 도자기 체험도 아니고 그릇 구경도 아니고 주인아저씨와 이웃들과 도란도란 앉아 수다라니.
참으로 평화로운 한낮이다.
배부르게 이야기를 마치고 우린 가게 그릇들과 옆에 있는 아저씨의 작업장을 둘러본 후 흔쾌히 물레질을 선보여주신다길래 물개박수를 치며 기다린다. 무슨 공연 시작되듯.
시범을 보여주시고 우리도 도자기 물레질 체험을 해보며 이곳에 녹아들었던 시간.
아무리 요리 보아도 조리 보아도 우리를 대하는 태도엔 도무지 장사꾼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체험을 마무리하고 나와 마저 아바노스 마을을 거닐다 우린 괴레메 우리 동네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아저씨 가게에 들르기로 한다.
아직 길게 남은 여정, 도자기를 고이 간직하는 미션이 의심스러워 관두려했지만 우린 아저씨의 도자기를 사고 싶어졌다. 그 선량한 마음으로, 그 뭉툭하고도 따뜻한 손길로 빚은 그릇이라면 고이 싸들고 갈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
다시 돌아가 겨우 몇 개의 그릇을 샀을 뿐인데 아저씨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한국으로 보내는 듯 서운해하며 직접 만든 세라믹 팔찌를 선물로 주셨다.
왜 눈물이 나지.
"아저씨, 안녕하신가요? 부디 건강하게 여전히 아직도 그곳에서의 삶이 계속되고 있기를 빌고 빕니다."
#발코니에서의 저녁
아바노스에서 돌아와 동네 작은 슈퍼에 가서 장을 보았다.
오늘의 여정을 마친 배고픈 여행객들로 문전성시. 세상에나 우리가 노려보던 납작 복숭아를 앞에 선 여행자가 다 쓸어 담은 것 아닌가. 이런...
잠시 우리는 여행자의 뒷통수를 노려보았지만
’네, 많이 드세요. 그대의 하루도 무척 고되었겠죠,‘
당신의 등뒤에 토닥토닥 눈길을 보냅니다.
괴레메에 밤이 찾아왔다. 그럼 별을 봐야지.
발코니 테이블에 한 상 차렸다. 맥주랑 따뜻한 차도 우리고 견과류, 과일, 그리고 감자 칩.
고요한 저녁, 동굴 숙소 마당에 나와 바라보는 경치는 흡사 이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아닌가.
사방을 둘러봐도 몽긋 솟은 동굴과 머얼리서 띄엄띄엄 빛나는 희미한 불빛.
우리는 지나간 사랑을 이야기했던가. 가끔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I see you.
#로즈밸리
괴레메에서의 어느 저녁, 로즈밸리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다.
30분 전 모임 장소로 이동했건만 어쩐지 느낌이 쎄..하다. 투어 출발 시간이 다가오는데 인적이 없다.
결국 모객이 되지 않아 인원 미달로 투어가 취소되었다는 것. 이런.
포기란 없는 우리는 여행사들이 쪼르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뛰어내려 가 본다.
로즈밸리의 석양을 볼 수 있는 투어시간은 정해져 있으므로 마음이 급하다.
아무 여행사에 들어가 당장 떠날 수 있는 로즈밸리 투어에 합류를 요청한다.
이런! 출발한 지 10분 정도 지났다는 답이 돌아오고. 우린 곧 찾아올 노을만큼 슬퍼졌다.
우리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여행사 직원은 우리에게 “Let’s GO!”
자신의 차로 투어차량을 따라잡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한 친절 오늘은 사양하지 않을게요.
그의 차를 타고 달린다. 비록 트래픽 잼이 없는 황량한 길을 가르지만 어, 이건 거의 플라잉인데.. 나도 모르게 손잡이에 매달려 힘을 준다.
잡았다! 고마워! 고마워! 너무 고마워!
투어차량에 합승하여 얼마가지 않아 하차하여 걷다가 밸리 야외 카페(?)에 들러 차 한잔의 시간이 주어졌다. 좌석은 따로 없다. 군데군데 흩어져 차 한잔을 들고 앉아 풍경을 조망한다.
이리 낭만적인 시간이라니.
핑크빛 노을이 드리우기 시작한 시간,
로즈밸리를 함께 걷던 어느 신혼부부의 요청에 영은 정말 열심히도, 심혈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우리의 여행엔 늘 함께 하는 테마곡이 있는데 이번엔 뒤늦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에 꽂힌 것.
영은 나중에 그랬다. 괴레메 동네산책하다 벤치에 앉아 들으며 한번 눈물을 몰래 훔쳤고, 야간버스 안에서는 통곡했노라고.
(나는 자느라 몰랐던 것)
사진을 찍어주며 우린 그렇게 또 울컥했던 것.
괴레메 로즈밸리 노을아래 선 두 사람이 오래오래 행복하길.
#벌룬투어
잠을 설쳤다. 카파도키아 괴레메의 새벽, 사위는 캄캄한데 우리를 픽업하러 온 차가 이미 숙소 앞에 도착했다.
비몽사몽 우린 차에 실려 벌룬투어 오피스인가 널찍한 로비에 도착하여 따뜻한 차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제공받는다. 그러더니 색색깔 동그라미 스티커가 우리 팔에 붙여지고 '그린! 레드!“ 등의 호명과 더불어 차례차례 봉고차에 탑승한다.
그렇게 카파도키아 벌룬 비행장 도착.
조금 차가운 공기, 어슴푸레 밝아오던 그 새벽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해.
점점 날이 밝아오고 벌룬은 비행 준비 완료.
그리고 우린 벌룬을 타고 하늘을 날았지. 하늘에서 내려 다 본 풍경, 여기저기 둥둥 떠다니는 열기구.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아무 말도 안 나오던 그때.
그저 무엇인가를 향해 한없는 감사만 터져 나왔던 시간. 나도 너처럼 말없이 눈물을 훔쳤어.
날은 밝아오고 그 시간을 함께 한 너를, 그 꿈을 함께 꾼 너를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니.
#엄마의 스카프
오늘은 카파도키아를 떠나기 전 쇼핑데이다.
카펫이 유명하다던데 그걸 이고 지고 갈 수는 없으니 이스탄불에서도 몇 개 샀지만 캐시미어 스카프를 구경해 본다.
우리는 엄마 선물을 고르기로 하고 고민을 거듭한 결과 최종적으로 서로가 낙점한 건 같은 패턴의 스카프!
"엄마한테 말할게. 길 가다 똑같은 스카프를 한 사람을 만나면 영이 엄마니까 인사하시라고. 아주 반갑게."
이렇게 느리게 나른하게 흘러가는 여행지가 또 있을까.
사방을 둘러봐도 작은 빌딩하나 보이지 않던 곳.
집들도 바위처럼 흙처럼 저 편의 산에 녹아들어 고요하게 존재하던 곳.
저녁이 빨리 찾아오던 곳.
그럼 장밋빛 석양에 물들어 머얼리 어느 집 불빛들이 느리게 하나씩 켜지 던 곳.
그렇게 별을 세며 맞이했던 밤.
동틀 녘에 나를 잠 깨워 바깥으로 이끌던 곳. 그 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
그렇게 함께 호흡하느라 느리게 흘렀던 우리의 시간.
느리게 그러나 뜨겁게 한 여름밤의 꿈을 꾼 듯.
#지구한바퀴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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