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에서의 오후, 나홀로

말라카 < 말레이시아

by 나디아


아무 준비 없이 이곳에 와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이곳으로 그녀가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하러 떠나며 내게 던진 한마디를 허공에 버리지 못한 채.

"언니, 방 남으니까 와!"

어쩜 여행 고파하는 나를 위한 예의상의 멘트였을 텐데 그녀는 설마 몰랐을까 나는 그런 말을 그냥 버릴 사람이 아니란 것을.


얼마 후 심신이 지쳐있던 어느 날, "나 가도 돼? 바쁘니 안 놀아줘도 돼. 얌전히 혼자 놀다 올게."

그렇게 서둘러 짐을 싸고 나 홀로 여행에 친구가 되어줄 시집도 하나 가방에 넣어 떠나왔다.

오늘 아침, 토스트 만들어 커피랑 그녀와 도란도란 아침을 먹고 나와 홀로 버스터미널, TBS로 향했다.

며칠 있어보니 난 쿠알라룸푸르가 좀 지루하더라.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에 감탄을 연발하며 아침에도 그 앞으로 달려가 공원을 산책하고 야경에 심취했지만 금방 시들.

어째 걷기 좋아하는 여행자에겐 쾌적하게 걸을만한 거리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말라카(Melaka)로 간다.

말레이반도 서해안에 자리 잡은 말라카는 유럽의 지배를 장기간 받은 탓에 그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고 하니 좀 예쁘겠군.

말라카로 가려면 TBS(쿠알라룸푸르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을 가야 하는데 TBS로 가는 것부터 난관이었으니 지하철, 지상철, 모노레일 등이 복잡하게 얽히어 환승 시스템을 모르는 나는 인포메이션 센터를 전전했다.

그러나 헤매도 도착한다. 그것은 진리더라. 버스 탄지 딱 두 시간 만에 말라카 터미널에 도착하여 17번 로컬 버스 타고 말라카 시내에 입성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유명한 네덜란드 광장.

다행히 찬란한 햇살, 경쾌한 바람과 함께 쾌청한 날씨가 나를 반겨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지라 이제야 구겨졌던 내 마음이 조금 펴진다.

말라카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잔재가 곳곳에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더니 곳곳이 클래식한 느낌 그대로 참 예쁘다.

힘내서 돌아다니려면 당 충전이 필요하니 일단 먹어야겠다!

바로 존커 스트릿에 있는 락사 맛집을 찾아 들어왔는데 와~ 사람도 너무 많고 합석은 기본이며 이렇게 더운데 에어컨도 없이 벽걸이 선풍기만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테이블 한구석에 껴앉아 이리저리 눈치 끝에 주문 시스템을 익히고 붙여놓은 음식 사진도 스캔하며 주문을 마쳤다.

아! 너무 맛있어! 락사는 말레이식 누들인데 내가 시킨 건 뇨냐 락사.

전날 쿠알라룸푸르 유명한 말레이시아 가정식 레스토랑에서 먹은 락사는 면이 좀 끊기는 식감이라 아쉬웠다면 이곳 락사는 탱글탱글 면!

땀 삐질 삐질 흘리며 초집중 모드로 너무 맛있게 먹으니 이거 왠지 주변 현지인들이 나를 다 쳐다보는 느낌이다.

뭔 이국 여자가 혼자 들어와 자기 나라 음식을 마구 폭풍 흡입하고 있으니.

흐뭇했으리라 자체 분석을 마치고 서둘러 땀 닦고 급 이미지 좀 정리하고 유유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오후가 되니 날씨가 좋다 못해 오버한다. 아 덥다.

이제 배가 부르니 본격적으로 걸어볼까, 생폴 성당으로 간다.

생폴 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 앞서 걷는 아씨들 (나 할미 같음) 둘이 배경이 된다. 참 예쁘다.

언덕에 올라오니 바람이 분다.

파괴되고 이리 앙상히 남은 교회터 안에 들어와 보니 꽤 관광객이 많았음에도 분위기 무엇! 정갈하고 고요한 바람이 분다.

우리 모두가 조금은 거룩해지는 곳.

이후 신시가지도 돌아보고 네덜란드 광장으로 컴백하는 중이다.

트라이쇼라고 말라카 명물(?) 인력 자전거인데 서로 경쟁하듯 화려하게 꾸미고 다닌다.

음악까지 목청껏 크게 “이 야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내가 이 노래를 여기서 듣다니!


어느새 오후에 접어들었다. 강가를 산책해 보기로 한다.

강가를 산책하다 오카리나였던가. 연주소리에 홀려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 골목길.

이곳의 공기는 주변 모든 소음에서 차단된 듯 고요하게 내려앉았고 오직 청아한 음악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젊은 아티스트들이 연주하고 혹은 세공품을 만들고 있었던 골목.

아티스트들 옆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말라카 여행 중 최고 힐링의 순간.

아까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말라카 좋냐고 덥지 않냐며.

'너무 좋아. 바람도 좋고 그리 덥지 않고 여기 너무 이뻐!'라고 답장했는데

다시 휴대폰을 열어본다. '그 말 취소야. 너무 더워. 근데 여기 스타벅스가 없나 봐. 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근데 여기 너무 좋아'

그녀에게 전송.


이제 말라카에도 해 질 녘이 찾아오겠지. 서둘러 돌아갈 채비를 해야겠다.

오늘 하루 이곳에선 온전히 홀로, 이방인이었지만 좋았어.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어 참 다행이다.

그곳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야.

어서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서 오늘 저녁엔 그녀와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늦도록 밤을 맞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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