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나후아토 < 멕시코
가끔 꿈에 나왔다.
과나후아토 그 다정한 골목, 어스름하고도 명랑한 저녁 불빛 그 명랑한 밤길 속에 내가 있었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깨어나 꿈과 현실이 가늠이 안되어 몽롱했던 순간,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오래 꿈을 꾸다 보니 어느덧 그게 현실이 되더라는 말은 자기 계발서 저자의 머리말 같은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내가 다시 이곳에 왔다.
멕시코 Guanajuato..
쏟아지는 햇살아래 서서 이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흡수하니 한 움큼의 눈물로 새어 나왔다.
오래전 1년간 정 붙이며 살았던 곳이라 동네 주민 코스프레 하고 싶어서 비록 5일뿐일지라도 호텔 아닌 곳으로 집을 정했다.
Embajadora에 있는 우리 집. 창문을 열면 plaza de embajadora의 햇살 쏟아지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곳.
그럼 우리 집 소개를 해본다.
내 방은 심플하다. 창가에는 앤티크 한 침대가 있고 그 옆에는 소파 테이블 겸 화장대, 침대 앞에는 옷장이 있다. 스미는 햇살을 커튼으로 살짝 가려주면 낮잠이 쏟아질 것 같은 아늑한 방이다.
그러나 이 아늑함은 오래가지 못했으니 나갔다 하면 이것저것 자잘한 쇼핑을 했고 집에 돌아오면 쇼핑 봉다리를 테이블, 의자, 바닥에 널부러 뜨려 놓은 채 정리는 생략하고 휴식을 택했으니 말이다.
내 방을 흘깃 보며 그녀는 '엄머!' 하는 표정을 짓고 지나가길래 그녀의 방을 살짝 방문해 본다.
그녀에게 정리벽이 있었던 걸 미처 몰랐네. 모든 물건들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옷장을 열어보니 그곳의 모든 것도 나란히 나란히 이웃하고 있었다.
과나후아토 사람들은 세라믹 공예를 좋아하며 색감을 놓치지 않고 집안을 한껏 꾸며놓는 편이다. 우리 집안 곳곳 중에서도 화장실 겸 욕실을 가장 산뜻하게 꾸며 놓은 건 나름의 깊은 배려가 있었으리라.
내 방 옆, 내 전용 욕실은 태양을 닮은 해바라기가 가득, 알록달록한 세라믹 장식이 더해져 산뜻한 기분을 보태어준다.
그녀의 욕실도 마찬가지.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다.
거실에는 활짝 열리는 커다란 창이 줄지어있다.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이면 난 창문을 열고 아침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창밖은 바로 쁠라사 엠바하도라.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햇살을 만끽하는 나의 아침.
이제 나가 볼까? 여행 중에도 변함없이 아침형 인간인 나는 그녀가 잠든 사이 잠깐의 산책 겸 나가 간단하게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본다.
우리 집 옆에는 작은 야채가게가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존재감 뽐내는 건 단연 구아바! 가게 앞에 지나가기만 해도 그 이국적인 향기가 코끝을 간지르니 말이다.
토스트와 계란은 있으니 구아바랑 다른 과일 몇 가지랑 요거트를 산다.
물론 그녀는 구아바에 손도 안 댈 테지만.
돌아오니 잠에서 깬 그녀가 사부작사부작 씻는 소리가 들린다. 토스트를 굽고 햄과 양파를 썰어 넣어 스크램블을 만들고, 요거트에 과일 촘촘히 썰어 넣는다.
빼놓을 수 없는 커피도 양껏 내려본다.
우리의 식탁. 이곳에서 우리는 아침이면 커피와 함께 식사를 하며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을 고했고 저녁이 내려앉으면 Te de mazanilla를 마시면서 하루를 닫았다.
불빛이 따사롭던 우리 집. 하루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를 포근히 안아주는 것 같았던.
오늘도 우리는 별 계획과 일정도 없이 느릿느릿 골목 곳곳을 걸었고 해 질 녘에 Pipila에 올라 모든 집들이 불빛을 빛내고 밤을 맞이할 즈음 내려왔다.
집에 도착하면 우리는 거실 테이블에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켜두고 각자 시간을 보낸다.
나는 씻고 그날의 쇼핑 품목을 정리하고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쓴다.
이 날은 둘 다 밤이 깊었는데도 잠 못 이루고 서성이다 거실로 모였다.
소파에 기대앉아 우리는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꺼내본다. 서로의 기억을 퍼즐처럼 맞추다 보니 그날들이 어제 인양 선명해진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으로 달려갔고 어둠이 내려앉은 우리 집.
괜찮아 이곳에선 조금 느려도.
조금 게으르게 느지막이 아침을 맞이해 보지 뭐.
또 아침이 찾아왔다. 오늘 아침의 후식은 구아바와 빠알간 복숭아.
복숭아를 입으로 가져가며 그녀는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본다. 난 구아바를 아작아작 씹으며 향기와 추억을 함께 음미한다.
오래전 그 시절 어느 골목, 구아바 향을 지나치지 못하고 향기를 쫓아 가게에 들어가 생소했던 이 과일을 처음 만났던 그 시간이 떠오르니 말이다.
아. 이렇게 냄새, 향기로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오래전 그 시절, 주말 오전과 오후 사이쯤 난 빨래를 하곤 했다.
내 방옆 가든으로 나가 세탁기를 돌리고 꺼내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고 나면 그렇게 기분까지 개운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차 한잔을 하러 나갔다 오면 늦은 오후, 아직도 쏟아지던 그 햇살,
햇살 좋고 바람 좋은 그 옥상에서 빨래는 사각사각 말라가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 냄새!
햇볕에 묻은 빨래 세제 냄새다.
빨래 비누 냄새 (섬유유연제의 버라이어티 한 퍼퓸향은 아닌) 그 향이다!
아직도 서걱서걱 막 마른 옷에서 나는 빨래 비누 냄새를 맡으면 그때의 그 햇살, 그 오후가 생각난다.
손을 뻗으면 한 줌 잡힐 것 같이 생생하다.
그렇게 냄새, 향으로 기억되는 것들은 그 어떤 형상이나 음률보다 더 강렬한 전파력을 가진 게 분명하다.
알록달록한 색상을 어느 곳에든 입히기 참 좋아하고 세라믹으로 장식하기 좋아하는 과나후아토 사람들.
과나후아토에서는 늘 여유롭게 시작하는 아침이 우릴 찾아온다.
그립다, 우리 집.
#세계여행
#지구별여행
#과나후아토
#과나후아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