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책리뷰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이금이 지음

by 나디아


청소년 문학도 하나의 장르라면 단연 믿고 보는 청소년 문학가 이금이 씨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역사 장편소설이다.

읽고 난 후 양가감정이 들었다면 이것이다.

이렇게 좋은 작품이 청소년문학 컬렉션으로 구분 지어진다는 게 아쉽고 아깝고

또 마지막 책장을 덮고 보니 묘하게 청소년 문학의 정서가 이런 거구나 하는 약간의 한계점도 느껴지니 말이다.

어쨌거나 모처럼 대하드라마 한 편에 마음을 빼앗겨 정주행하듯 책에 몰두했다.

흡사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고 그러나 그보다 몇 배 더 광활한 배경을 사뿐히 넘나드는 황홀함(?)도 있었다.

경성 가회동 저택과 수남이의 고향인 초가집이 띄엄띄엄 줄 선 산골에서 시작하여

현해탄 건너 교토, 하얼빈, 충칭, 상하이는 예사, 일제강점기 그 시절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에서 채령과 준페이, 수남과 강휘의 굴곡진 삶이 펼쳐지고 있으니 딱 내 마음을 흔들만 했다.


나라를 잃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관통한 뼈아픈, 서글픈 역사 위에 쓰인 이야기지만

1권을 독파하는 동안 내 마음에는 내내 봄바람이 불었다. 분홍 벚꽃 잎이 일렁이며.

시작은 멜로 영화에서 툭 튀어나온듯한 통통 튀는 안하무인 공주, 여주인공 재질인 채령에게 매력을 느꼈다.

저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으니.

그러다 겨우 일곱 살 배기가 겁도 없이 나서며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라고 할 때만 해도 수남이, 그 아이의 존재감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비록 태어난 신분은 천해도 그래서 끝내 바꿀 수 없는 팔자라는 한계속에 살지라도, 더불어 사람은 또 본디 강직한 심성과 타고난 품격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수남이 그녀를 보면서 수차례 생각 했다.

수남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만 그것은 비굴함과 굴종이라기보다 주어진 상황에 진심을 다해 사는 것으로 비치니 그녀는 작지만 작지 않았다.

수남과 채령이 교토에서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자기도 모르게 확장시켜 가며 살을 부대끼며 사는 장면이 펼쳐질 때는 그 평화가 오롯이 내 피부까지 와닿는듯했고

허리를 조이는 원피스를 입고 한껏 단장한채 데이트를 나가는 채령의 품새를 지켜봐 주는 수남이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 살랑댔다.

그곳에서 어쩜 수남이의 운명을 개척해 줄 연이 되는 브래들리 여사를 만나 도란도란 영어를 배우며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수남이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는 뿌듯함으로 책장을 넘겼다.


아 잠깐 깜빡했었지 참 이 책은 나라잃은 치욕의 세월 속에 정점을 찍은 위안부 이야기를 담았다는 걸.

2권으로 넘어가며 봄날 아지랑이 어지럽게 일렁거리던 내 마음에는 순식간에 피 철철 나는 칼바람이 불었다. 채령 대신 채령이가 되어 황군여자위문대에 끌려간 수남이. 그녀가 목도한 현장은 소름끼치도록 처참했다. 대원들이 속수무책으로 굶주린 들짐승만도 못한 일본병사에게 난도질을 당하는 장면은 충분히 심호흡을 하며 지나갔지만 그래도 아파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채 서둘러 책장을 넘겨버렸다.

이야기는 좀 더 속도를 내어 위장 부부가 되어 미국으로 떠난 채령과 준페이 이야기, 미국에서 홀로 파란만장한 삶을 시작하는 수남 이야기가 펼쳐진다.

채령의 아버지 윤자작은 그야말로 뼛속까지 친일파로 가문의 잇속만 챙기며 배를 불렸던 인물로, 나라를 잃어 곳곳에서 신음하며 치욕적인 삶을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는 절대 용서할 수 기회주의자, 맞다. 그래 기회주의자.

그렇게 나라를 잃은 혼란기를 틈타 단물만 빨아 그 부를 후손에게까지 물려주었다 한들 그의 딸 채령도, 또 불행한 역사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의 열망을 저버리지 않고 젊음을 던진 수남, 강휘, 준페이, 태술 모두는 그저 시대의 피해자 아닐까 하는 연민이 들었다.

난 그 젊음이 다 하나하나 슬프다. 애달프다.

특히 그토록 순정을 바쳐 채령만을 사랑했던 준페이도 채령에게 폭력을 쓰게 되는 장면을 볼 때는 참 마음이 아리고 씁쓸했다.

물론 그보다 먼저 흑화 된 채령이 그 꼿꼿하고 도도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겨우 조카나 다름없던 마리나를 질투하는 의부증 있는 여자가 되어 망가지는 모습을 목도하게 될 줄이야.

참 세월은 모질다. 세파는 참 거칠다. 그 속을 관통한 젊음은 어느 한군데 깊은 생채기가 난 채 어딘가에 남고 또 떠났다.

그래서 책장을 덮으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침탈자인 이웃나라도, 아직도 청산이 안되어 사회 곳곳에 남은 친일파의 잔재도 다시 숙고해 봐야 할 과제가 되어 내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그것보다 그 오욕의 세월을 각자의 뜨거운 심장으로 살아낸 그들의 그 '젊음'을 기리고 싶었다.

당신, 살아오느라 참 수고했다.

살아내느라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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