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깍쟁이 손녀에게도 늘 실없이 웃으셨던 할머니가 오늘 참 그립다

by 나디아

어렸을 때부터 난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살갗에 닿는걸 극도로 꺼릴 정도로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주변에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 가족 같은 그들의 반려동물에게 식겁한 표정을 짓는 건 예의가 아니니 동물친구들이 내 곁에 서성여도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온 세월이 길다.

우리 올케도 애견인. 그녀가 결혼하기 전부터 기르던 슈나우져, 몽이가 죽었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빗속에 운전을 해서 집으로 가는 중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야... 그 집 지금 완전 초상집이잖아.. 몽이 죽었어.." 내 마음도 왜 그리 한동안 심란하던지.

그녀는 얼마못가 또 입양을 했다. 이번엔 몰티즈(말티즈) 몽이.

아주 미인 아니 미견이다.

지난 설연휴 때 몽이와 함께한 2박 3일 동안 꽤나 정이 들었다. 심장이 좀 안 좋다는 말에 몽이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왠지 짠했고 살자쿵 안아본 몽이의 체온에 내 마음이 녹았다. 그래서 올케가 친정에 가는 1박 2일간 자청해서 몽이를 맡았다.

몽이 밥그릇에 네임 스티커도 뽑아 붙여주고, 사료는 안 먹고 간식만 좋아하니 그만 줘야겠다 싶다가도 자꾸 주게 되고, 아침 공기가 너무 상쾌하길래 몽이를 안고 아침 바람을 쐬주었다.

언니네랑 모두 점심을 먹으러 외출할 땐 잠시 집에 혼자 둘 수밖에 없었는데 혼자 있는 몽이가 너무 걱정돼서 귀가를 독촉하는 내게 언니가 한마디 했다.

"야, 너 자식 있었으면 굉장 치도 않았겠다... "

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난 아마 극성에 가까운 엄마였으리라. 사랑이라는 굴레 속에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온신경이 쏠려있을 것이고 아이의 작은 신음에도 전전긍긍했으리라.

아이의 작은 성공에도 내 마음이 들떴을 것이며 아이가 실패를 맞닥뜨릴 땐 그 쓰라림을 나의 온몸과 마음으로 맞이했을 것이다.

난 그렇게 함량 미달인 양육자이었을 것이다. 분명.

그때 내게 이 책을 누군가 쥐어주는 상상을 해 본다.

책을 읽으며 내내 떠오른 단어는 중년으로 접어든 내 인생의 화두이기도 한 '관용'이다.

작가의 할머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며 또 감정의 폭은 무척 작은 사람이었다.

부모가, 양육자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소유할 수 있는 유년기에 그들을 둘러싸는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공기인 것이다.


할머니의 무심한 반응은 청천벽력 같은 큰일도 견딜 만한 작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힘이 있었고 할머니에게 그런 무심한 이해를 받고 나면 사납게 파도치던 내 마음은 거칠던 너울이 가라앉고 어느덧 평화로움 쪽으로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고마운 무심함-193쪽)


지지와 격려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진정으로 힘이 된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받을 때 진짜 산소가 되어 그의 폐로 스며들고 근육에 힘이 된다. 지지와 격려가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서서히 긍정적인 힘을 잃고 부담이 되어간다. (기대와 격려의 두 얼굴-207쪽)


할머니가 평생 한 말들의 80퍼센트는 단 열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쩌’다. 표준어로 하자면 ‘그래, 안 돼, 됐어, 몰라, 어떡해’ 일 것이다. (101쪽)


할머니의 다섯 마디,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쪄

그래 내 마음이 폭풍 같을지라도 할머니가 '워쩌..' 한마디만 해준다고 한바탕 눈물이 솟구칠 것 같다가도 이내 잠잠해질 텐데..

그리고 그저 누구에게나 주어진 일상과 싸우는 일, 출근하여 고군분투하고 때론 실패하고 때론 수줍은 작은 성취에도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셨겠지 '장혀~'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반세기 먼저 살아본 넘치는 지혜로 나를 앉혀놓고 위로와 격려와 지혜로 선인의 가르침을 폭포수와 같이 전수해 준다 해도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할머니가 가진 그 평화로움의 한 끝을 내게 닿게 하면 그만인 것이다.

'뒤얐어..'

응 그럼 되었어, 할머니...

나 괜찮아졌어.


이쯤 잊혀간 나의 할머니를 떠올려 보게 하는 건 이 책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한 집에서 살았다.

심윤경 작가의 할머니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할머니는 외모를 가꾸고 외출을 좋아하시며 자기 인생을 즐기시는 점이었달까.

할머니는 말수가 적으셨다. 그리고 때론 되바라진 손녀에게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신적이 없다.

뒤돌아 후회와 죄송함이 몰려와 어떻게 다가갈지 몰라하고 있을 때도 할머니는 항상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먼저 손을 내미셨다 "우리 ㅇㅇ왔구나~ ㅇㅇ야~ 밥 먹었니?"

허리통증을 호소하셨던 할머니.. 어깨와 허리를 안마해 드리면 '힘들어서... 그만해~ 애썼다. 너무 고마워'

이렇게 필요이상의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시던 할머니..

할머니 인생의 말년에는 내가 너무 한창 바쁘다는 이유로 우두커니 남겨진 그분의 외로움을 몰랐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

한번 더 '할머니~~~'하고 다가가볼걸. 손 한번 더 잡아드릴걸

더 자주 내 손으로 작은 반상에 식사를 차려드릴걸..

곱고 정갈하시고, 깍쟁이 손녀에게도 늘 실없이 웃으셨던 우리 할머니가

오늘 참 그립다.

할머니가 내게 남겨 준 것도 '관용'이었다.



[타이틀 사진] by me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2021.11.11.(목) ~ 2022.03.01.(화)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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