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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수 May 18. 2023

1980년 광주항쟁을 우리 문학은 어떻게 그려 왔나



5.18 광주항쟁 43주년이 되었습니다. 한 세대가 훌쩍 지났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5.18은 어떤 감응(感應)을 불러일으킬까요. 아마 별 감동 없는 암기 사항에 지나지 않겠지요? 굳이 그 아픈 기억을 들추어낼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 답해야 할까요.

뜻을 새기기 전에 공감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요. 곁에 있는 친구와 죽이 맞듯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와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사는 게 더 의미심장해지지 않겠습니까. 80년 광주를 그린 영화와 소설들을 다시 보면서 과거의 시간들이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짚어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나 자신이 새로 태어나듯이 한 세대 전과 극적인 만남으로써 삶의 화폭이 빛과 음영으로 깊어지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여러분께 이 드라마틱한 만남을 권합니다. 격동의 청춘 시절에 해당하는 [부활의 노래](1991)로 시작하여 가슴 찢어지는 결별의 트라우마 [꽃잎](1996)을 거쳐 미적(美的) 승화 [오래된 정원](2006)으로 이어지는 5.18 광주 팩션(팩트+픽션)의 성장사를 소개합니다.


영화는 소설과 따로 때어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광주항쟁을 문자로 기록하거나 형상화한 작품으로 ‘황석영’의 르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임철우’의 장편소설 [봄날]을 고전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5.18을 그린 초기 영화는 이 작품들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여 기록한 르뽀이며 광주 만행을 저지른 권력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1985년)에 은밀하게 제작 배포되었지만 그 시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읽혔습니다. 광주항쟁을 그린 소설로는 윤정모의 [밤길], 홍희담의 [깃발], 임철우의 [봄날], 박혜강 [꽃잎처럼]이 많이 읽혔는데 이중 [봄날]은 항쟁 열흘간을 다섯 권의 대작으로 그려낸 독보적인 작품입니다. 지금 소개할 진혼가들은 이 작품들을 바탕으로 싹튼 후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중민주주의 진혼가 [부활의 노래], [깃발]


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퇴진하면서 광주 5.18 진혼가가 분출되기 시작하는데 [부활의 노래]는 극장에서 상영된 최초의 광주 진혼가였습니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들불야학’ 노동자 ‘박기순’이 실제 겪은 일을 바탕으로 1990년에 제작되었습니다. ‘박관현’ 열사를 그린 인물 ‘철기’가 노동야학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1978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야학에서 일하면서 민중의 현실에 대해 눈을 뜬 ‘철기’는 다니던 전남대학교에서 총학생회장으로 나서고 비상계엄령이 떨어지자 도피생활을 시작합니다. 도피생활 중 광주항쟁이 일어나고 나중에 만난 야학 친구 ‘현실’한테서 야학 선배 ‘태일’이 도청에서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책에 빠집니다. 노출 ‘현실’이 학출 ‘철기’를 위로하면서 이 둘은 서로 의지하게 되고 ‘기철’은 죄책감을 극복해 나갑니다.


영화 [부활의 노래] ‘태일’의 죽음과 영혼 결혼식 장면


[부활의 노래]가 그리고 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투철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 투사들로 그 숭고한 헌신은 역사에 기록될 만합니다. 그에 반해 [꽃잎]이 그리고 있는 인물, ‘이름 없는 소녀’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소품 같은 존재입니다. 80년 광주에서 죽어간 이들 대부분은 이 소녀처럼 ‘이름도 남김없이’ 산화(散花)해 갔습니다. 늦은 봄 흩날리는 꽃잎처럼 말이지요. 소설 [깃발]에서 대학생 ‘윤강일’이 자기 동료 ‘상원’의 죽음을 내세우자, 노동자 ‘순분’이 "죽음조차도 윤 선생님 쪽의 사람만 부상하는군요"라고 소리치며 화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로 5월 27일 진압군이 도청을 치고 들어올 때 끝까지 남아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기층 노동자 출신이고 지도부를 꾸렸던 지식인 학생들 대부분은 무기 반납을 주장하며 결국 도청을 빠져나갔습니다.

죽은 자들은 얼마나 원통할까요. 도망자 배신자로 낙인찍힌 자들은 또 얼마나 비참할까요. [꽃잎]은 그 상처를 심리극 기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엄마와 함께 금남로 시위에 나갔다가 진압군의 총격에 엄마는 길바닥에 쓰러지고 유혈이 낭자한 엄마의 손은 그대로 굳어버립니다. 딸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엄마의 움켜진 손을 발로 짓이겨 떨쳐 내버리고 도망쳐 살아남지만 죄책감에 실성해 버리고 맙니다. 강가에서 우연히 만난 남정네를 오빠인 줄 알고 졸졸 따라가지만 막노동꾼은 미친 소녀를 때어버리기 위해 갖은 학대를 다합니다. 그래도 소녀는 떨어질 줄 모릅니다. 어느 날 무덤 앞에서 신들린 듯 오열하는 소녀를 보고 그녀가 왜 미쳐 버렸는지 알게 됩니다.


[꽃잎] 엄마를 버리고 혼자 도망쳤다는 죄책감으로 미쳐버린 소녀


[꽃잎]에서 그린 혈육 간의 상처는 5.18로 반복된 동족상잔의 뼈아픈 역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봄날]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산, 흰 새]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6.25 동란의 비극을 그렸는데, 이는 5.18의 비극이 6.25 동족상잔의 반복이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골육상잔(骨肉相殘)은 우리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으로 남아있습니다. 5.18의 골육상잔은 여러 작품에서 그려졌습니다. 5.18 기록문학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임철우’의 대하소설 [봄날]에는 형제가 제각각 시민군, 진압군으로 나뉘어 서로 총질을 하는 끔찍한 장면이 나오고,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에도 진압군으로 광주에 들어왔다가 눈앞에서 동생이 상관에 의해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미쳐 버리는 형이 등장합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자는 의기를 북돋우는 일도 의미 있겠지만 상처받은 자들의 아픔을 달래는 일도 꼭 필요합니다. 문학예술은 하나의 방편으로만 호명(呼名)될 수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5.18의 예술적 승화 [오래된 정원]


정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겠노라며 동지들과 어깨를 걸었다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대열에서 이탈한 이들이 겪었을 양심의 가책이 얼마나 쓰라렸을까요. 심리적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을 비겁자라고 함부로 손가락질 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한숨으로 밤을 지새우느라,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하겠지요. 죄책감 때문에 오막살이 소박한 살림마저도 용납할 수 없는 안일(安逸)로 여겨졌을 겁니다. [오래된 정원]은 그렇게,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소박한 정원을 등지고 제 발로 사지(死地)를 찾아 나서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곱고 착한 ‘윤희’와 너무나도 행복하게 함께했던 아름다운 정원을 뒤로 하고 동지를 찾아 나섭니다. 그녀와 함께라면 두메산골 오막살이도 고대광실(高臺廣室) 부럽지 않을 ‘영원한 정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오래된 정원] 눈물겹게 아름다운 둘만의 정원


다. [오래된 정원]에는 눈으로 말하고 눈빛에 매료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감하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수가 있겠지요. 진실한 관계는 이렇게 맺어지고 그렇게 맺어지는 관계로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웃과 함께 자연에 어울리면서 말이지요. [오래된 정원]이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천명하는 건 부질없을 뿐만 아니라 진실하지도 않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80년대 이념의 시대, 21세기초 개인화 시대를 넘어 앞으로 공감(共感)의 시대를 열어 가자는 고운 눈빛으로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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