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는 미로를,
통과하는 아이들

03.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책 <연을 쫓는 아이>

by 유주 youjoo

떠나는 이유를 생각하던 시간은,
결국 우리가 어떤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지 마주하게 만든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이상하게 같은 자리에 놓일 때가 있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먼저 알아보게 되는 어떤 결,

닮음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부족하고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조금 선명한 겹침.


내게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연을 쫓는 아이>가 그랬다.


누군가 내게 인생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답할 것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그리고, 꼭 한 권의 책을 권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이야기를 내밀 것 같다.

<연을 쫓는 아이>


영화를 본 시기와 책을 읽은 시간이 서로 전혀 겹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책<연을 쫓는 아이>가 자꾸 따라왔다.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서사라는 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것들로는 충분하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먼저 감각이 알아본 결이 있었다.

한 작품을 떠올리면 다른 작품의 공기까지 함께 밀려왔다.


그 묘한 겹침을 붙잡지 못한 채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어느 순간 한 단어가 떠올랐다.


운명.


내게 이 두 작품은 모두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정확히는, 이미 정해진 듯한 삶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끝내 어떻게 응답하는가를 묻는 이야기였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운명은

정해진 듯한 삶의 궤적 속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통해 당신의 인생을 증명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이에 반해 <연을 쫓는 아이>에서 운명은

지워지지 않는 과거,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관계,

시간이 흘러도 따라오는 감정 속에서

“당신은 결국 무엇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것인가”

라는 물음으로 남는다.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두 작품은 모두,

'이미 쓰인 것처럼 보이는 삶 앞에서,

인간은 과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가'

라는 물음을 준다.

그래서 내게 이 둘은 닮아 있다.


It Is Written?

정말로 모든 것은 이미 쓰여 있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


그 질문은 다른 곳에서 한 문장을 불러낸다.


For You, A Thousand Times Over…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연을 쫓는 아이)


내게 이 두 문장은 서로 다른 작품에서 왔으면서도

하나의 문답처럼 겹쳐진다.


이미 쓰여 있다는 말과,

그럼에도 누군가를 향해 끝내 자기 몫의 응답을 건네는 말.
거스를 수 없는 듯한 삶과,

그 안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자기 자리를 선택하는 마음.


어쩌면 내가 이 두 작품을 함께 떠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삶이 얼마나 불공평하게 시작되는지를 숨기지 않는다.

누군가는 너무 이른 순간에

폭력과 가난, 상실과 죄책감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그 불공평함이 인간의 가능성마저 지워버리지는 못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운명은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끝내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가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도망치지 않는 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일.
끝내 자기 삶의 한가운데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일.


나는 아마 그래서 이 두 작품을 오래 좋아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시간에 만났고, 전혀 다른 결로 다가왔지만,

결국 내 안에서는 같은 질문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정말 모든 것은 이미 쓰여 있는가.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떻게 끝내 자신의 대답을 써낼 수 있는가?


이 글에서 함께 본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슬럼독 밀리어네어.jpg

읽은 책


<연을 쫓는 아이>

연을 쫓는 아이.jpg


Reading · Listening · St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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