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고, 나는 중간 어딘가에 서 있다

by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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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이 피어나는 봄이라 그런가.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봄기운을 타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날씨.


새록새록 피어나는 봄향기를 따라
사람들도 하나둘 바깥으로 나온다.


도서관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와 공을 차고,
햇빛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계절은 참 성실하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제 할 일을 한다.


책을 읽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요즘은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다.


한때는 짜증과 예민함이 나를 집어삼켜
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약 두 알에 감정의 폭풍이 잦아든 걸 보면
정신과 약은 참 묘하다.


겨울 동안은 너무 우울해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약은 여전히 많이 먹고 있지만,
봄향기와 함께 우울도 조금씩 엷어지는 걸 보면
영원한 시련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무속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다.
한때 조울 증상이 심해졌을 때,
나는 내가 신기가 있는 줄 알았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고
생각은 비정상적으로 또렷했으며
감정은 과열되어 있었다.


약을 바꾸고 잠을 자자
그 ‘특별함’은 사라졌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가 아니라
병의 증상이었다.


무속과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을 고르라면
아마 정신과일 것이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나는 기력이 너무 없어
차라리 무언가에라도 홀려
에너지라도 얻고 싶은 심정이다.


그만큼 나는
죽어서 살아 있는 기분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차라리 다시 조울이 와서
‘사람 사는 기분’이라도 느끼고 싶다고.


하지만 곰곰이 떠올려 보면
그때의 나는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

고소를 당하고,
가는 곳마다 싸움이 붙고,
관계는 무너졌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은
도파민도, 의욕도, 기운도
모두 바닥에 내려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중간치로 올려주면 좋겠는데.


의사는 조심스럽다.
나는 답답하다.


에너지가 없다.
그런데 살아야 한다.

평생 어떻게 벌어 먹고살지 생각하면
막막함이 밀려온다.


봄은 온다.
나는 아직 중간 어딘가에 서 있다.

완전한 우울도 아니고
위험한 고양도 아닌
그 사이에서.

어쩌면
이 ‘중간’을 배우는 것이
내 삶의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햇빛이 따뜻하다는 사실만으로
조금 살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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