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랗고 커다란 얼굴, 땡그랗고 처진 눈망울, 웃을 때마다 반달눈이 되는 우리 둘째를 보고는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둘째 너~무 예쁘죠." "밥 안 먹어도 배부르시겠어요." "어쩜 이렇게 애교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으레 하는 대답을 하며속으로 되뇐다.
'한번 직접 키워 보세요.'
첫째를 키우면서 나는 내가 나름 육아의 달인이라고 생각했다. 아동 관련 학과를 나왔고, 보육교사 자격증도 있다. 학원강사로 일하면서 초등부터 고등까지 두루두루 경험했다. 프로이트부터 에릭슨이며 몬테소리, 레지오 에밀리아며 프로젝트 이론까지 꿰고 있었다.
게다가 168이라는 키에 건장한 체격, 어릴 때부터 체력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좋았다. 무엇보다 나는 잠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보다 늦게 자서 일찍 일어났던 나에게 엄마는 우스게 소리로 그러다가 일찍 죽는다고 했고 난 잠은 죽으면 몰아 잘 거라고 대꾸했다. 이 정도면 타고난 엄마의 조건 아닌가?
첫째는 나와 성향이 비슷했고 길이 아니면 쳐다보지조차 않는 FM 스타일의 아이였다. 마음이 여려서 잘 울긴 했지만 자라면서 스스로 감정을 다스렸고 조심성이 많아 사고도 치지 않았다. 크게 혼낸 기억도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당연히 둘째도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출산 가방을 싸며 룰루랄라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를 볼 생각에 신이 났더랬다. 좋아하는 곱창3인분을 금식전 식사로 먹고 마지막 휴가라고 생각하며 수술실에 들어갔다. 날짜를 미리 잡았기에 노심초사 자연분만을 기다리며 진을 뺄 일도 없었다.
첫째때는 이틀 내리 옥시토신을 맞으며 자궁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고통에 까무러치기 직전 제왕절개를 했더랬다. 그거에 비하니 둘째 출산은 수월했다. 하룻밤 정도 칼로 에리는 듯한 훗배앓이를 참아내자 다음 날부터는 병원을 신나게 누빌 수 있었다. 남이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친구들과 카톡을 하거나 '이제 임신과 출산의 고통도 끝이구나!' 생각하며 팔자 좋게 누워있었다. 당연히 나는 사이좋은 형제를 키우면서 꽃길만 걸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둘째가 누워있는 동안 육아는 할만했다. 아이 둘 다 수면 교육을 시켰고, 규칙적으로 수유했다. 우리 아이 둘 다 소위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그런 꿈의 신생아였다. 둘째였기에 딱히 수유 트러블도 없었고 아이들은 나의 바람대로 쑥쑥 커줬다. 특별하다면 80일 무렵 둘째 몸무게가 8킬로 정도로 상위 99프로의 듬직함을 지녔다는 것... 무거워서 뼈마디가 지끈거렸지만 그래도 건강한 아이들의 모습은 나를 뿌듯하게 했다. 둘 키우느라 힘들겠다 대단하다는 소리는 엄마로서 자존감도 쑥쑥 자라게 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로망은 둘째가 이동 방법(기기)을 시전 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어느 날 기저귀 속의 응아를 꺼내어 먹는 둘째를 본 순간, 나의 달콤한 육아 로망은 곧 깨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