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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코끼리 May 17. 2021

오늘도 넌 내게 위로를 건넨다(두 아들맘의 육아생활)

#02  식탐의 역사

사실 3.7kg 정도로 태어난 둘째는 아빠를 닮은 긴 다리와 긴 손발가락을 갖고 있어서 고슴도치 엄마 눈에는 황금 비율을 갖고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처음 둘째가 유난히 잘 먹는다고 느꼈던 건 모유의 양이 부족해서 분유와 혼합을 하는 때부터였다. 첫째를 모유로 키웠기 때문에 모유가 부족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고 유축을 해봐도 양이 충분했다. 하지만 수면 교육을 시작하면서, 모유로는 긴 밤잠의 허기를 채우기에 택도 없다는 것을 았다. 결국, 마지막 수유와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 때에는 분유를 먹였다.


둘째의 대단한 뱃고래를 알게 된 건 그쯤이었다. 젖병 최고 용량인 280ml를 풀로 먹여도 둘째의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엄마인 나는 어찌어찌 어르고 달래 재웠지만 남들한테 맡길 때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남편이나 시터 이모님은 아이 울음에 못 이겨 달라는대로 분유를 줬고 둘째는 어떤 때는 350ml, 어떤 때는 400ml씩 들이켰다. 그 많은 분유를 둘째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마냥 단숨에 꿀꺽꿀꺽 넘겼다. 정확히 재보지 않았지만 모유도 양껏? 흡수했으리라~


무섭게 자라던 둘째는 7개월 즈음 24m을 입었고 돌 즈음에는 36m을 입었다. 목은 보이지 않았고 사계절 내내 땀이 났다. 목에는 간찰진이라는 접촉성 피부염을 달고 다녔다. 땀 냄새도 어마어마해서 하루 두세 번씩 목욕도 기본이었다.(단언컨대 잘 먹고 토실하게 살이 오른 아이의 땀 냄새는 상상 그 이상이다.)

(백일 무렵 겨울인데도 늘 더웠던 아이)


영유아 검진 때 옷을 벗겨서 어떻게든 몸무게를 아 보려는 내게 간호사가 말했다. "어머니 옷 무게 빼도 어차피 99프로예요..." 그때까지도 난 첫째처럼, 당연히 이유식을 시작하고 분유를 끊으면 살이 빠지고 시간이 지나면 식탐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살은 좀 빠졌지만 예상과 달리 둘째는 이유식 역시 분유 못지않게 잘 먹었다. 늘 한 번에 먹여야 하는 양으로는 부족했고, 형아 밥상에 매달려 먹을 걸 달라고 소리를 질러대고는 했다. 그리고 종일 허기가 가시지 않던 둘째는 놀랍게도 몇 번이나 기저귀 속의 자기 응아를 꺼내 먹었다. 얌전한 첫째만 키워봤던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상상에 맡겨본다.


유난히 우량아였던 둘째 아이 때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어디 가나 시선 집중은 물론, 아이가 돌 즈음 놀러 간 남이섬에서 외국인들이 몹시 놀라아이사진을 찍기를 기도 했다. 언젠가 놀이터에서 만난 다른 아이 엄마들이 아직 통통한 둘째가 살이 많이 빠졌다고 이야기하안 믿는 눈치들이어서  예전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주변에서는 간식을 넉넉히 먹고도 밥 잘 먹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늘 식비가 오버돼서 걱정하는 나를 보며, 잘 먹는 아이들 덕에 외식 메뉴도 비교적 편하게 고르는 우리를 보며 다들 부러워한다. 그리고는 "어쩜 둘 다 그렇게 잘 먹어요?"라고 묻는다. 표본이 비록 두 아이뿐이지만 잘 먹고 잘 찌는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었다. 즉 어느 정도는 타고 난다.(물론 이것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어떤 과학적 근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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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이 먹덧이었다.


아동학과 시절 교수님이 말하긴 아이의 70%는 태아적에 완성된다고 하셨었다. 두 아이 임신을 겪어보니 나는 뱃속의 두 아이의 기질이 지금과 유사하다고 느낀다. 첫째는 체덧이 있었고, 초음파만 찍을라고 하면 얼굴을 돌려서 제대로 된 초음파 사진이 없다. 태몽도 자라, 거북이, 고추잠자리 이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밤마다 엄청난 강도로 발차기를 해댔었다. 지금도 첫째는 부끄럼이 많반면 강단이 있는 남자아이이다. 운동도 좋아하지만 감수성도 예민하다.


반면 둘째는 이른바 먹덧이었다. 하루 종일 조금씩 먹어주지 않으면 속이 메슥거려 참을 수가 없었고, 거진 두 시간마다 간식을 먹었다. 형처럼 파워풀한 발차기는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다만 하루 종일 꼼지락꼼지락거렸다. 초음파를 들이대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까꿍 하고 얼굴을 들이댔다. 태몽도 호랑이였다. 그때, 둘째 아이의 입덧이 먹덧이었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침을 많이 흘린다. 


어린 시절 둘째의 침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가 없을 때 녹여 먹는 뻥과자가 눈 녹듯 사라져서 나는 몇 번이나 아이가 흘린 줄 알고 찾으러 다니곤 했다. 뿐만 아니라 스와들업이 한 달이면 침으로 노래졌고,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쯤은 자주 바닥에 양이 많은 액체가 있어서 오줌인가 침인가 구분하기 위해 여러 번 냄새도 맡아봤다.(물론 그건 늘 침이었다) 째에게 엄청난 침은 잘 먹기 위한 장착 템 같은 것이 아 었을까?


-만 부르면 잘 잔다. 


항상 둘째를 보며 어른들이 "아기 잘 자지?"라고 물어보곤 했다. 내가 영문을 모르고 "네"하고 대답하면, "원래 잘 먹고 잘 자는 애들이 쑥 쑥 커."라고 하곤 하셨다. 나는 첫째와 둘째 모두 수면 교육을 시켰는데 잘 먹는 둘째가 재우기가 훨씬 수월했다. 첫째는 잠이 드는데 일정한 의식이나 안정이 필요했지만 둘째는 그냥 배부르면 통잠을 잤다. 재우는 시간도 짧으면 일분, 길어야 오분 정도 걸렸다. 다만 호기심 많은 둘째는 밖에 나가면 잘 안 잤고, 첫째는 밖에 나가도 본인이 잘 조건이 갖춰지면 잘 잤다. 아마도 잘 자는 것은 잘 먹는 것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잘 자는 아이

-응아의 양이 적다.


더럽지만? 우리 아이는 그랬다. 그렇게 먹어 치우는데도 응아의 양은 적고 심지어 질감도 되. 그 질감과 양은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다 흡수가? 되는 것일까? 사실 둘째를 키우면서 정말 편했던 부분이기도 했는데, 응아의 양도 적고 되니까 어디를 가던 응아 기저귀 갈 생각에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었다. 먹는 것에 비해 양이 많고 질었던 첫째는 밖에서 응아를 한번 싸면 온통 난리였고, 바지를 버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둘째는 깔끔한 점토 같은 그것을 스윽 버리고 엉덩이 한 두 번만 물티슈로 닦아주면 되니 세상 편했다.


-움직이기를 싫어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둘째가 아기였을 때는 움직이기를 정말 싫어했다. 7개월이 지나도 뒤집거나 되뒤집기를 잘 안 했다. 가끔씩 뒤집기를 하더라도 그때뿐, 그 후 며칠씩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엎드려 있는 자세를 무척 불편해했다. 주로 하는 놀이는 가만히 누워있기나 누워서 물건에 침 묻히기, 손빨기, 옹알이하기, 엄마 쳐다보며 웃기 등등이었고 움직일 수 있을 무렵에도 돌아다니기보다 가만히 앉아서 주로 물건을 부수는 사고를 많이 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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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둘째의 식탐 덕에 아이가 움직이기 전까지 나는 소위 꿀을 빨았다. 아이가 조금 무거워서 손목, 발목, 허리가 나가는 거 외에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그런 천사 같은 아이 었다. (알고 보니 호기심 천국에서 왔더라는) 그리고 그 식탐은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둘째는 편식은 좀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잘 먹는다. 맘에 드는 간식이나 반찬이 있으면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보통 성인 여자보다 더 먹는다. 6살짜리가 한 자리에서 소떡 소떡 두줄을 먹고, 과자 한 봉지를 해치운 다음 해맑게 말한다. "엄마 배고파요. 먹을 것 없어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렇게 간식을 먹고도 저녁밥도 한 그릇씩 먹고, 맘에 드는 반찬이 있으면 두 그릇씩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활동량도 그만큼 많아서 지금은 딱 보기 좋은 몸매라는 것이다.(엄마 눈에 is 뭔들)  


물론 단점도 있다. 나는 주말 외에는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안 먹고, 독박 육아로 정말 힘들거나 바쁠 때만 반찬 정도사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비가 어마어마하게 든다. 또 두 살 차이지만 몸무게가 같아서  윗옷과 신발은 물려받지 못한다. 그나마 물려줄 수 있는 건 바지뿐인데 남아들의 바지는 그 수명까지 본분을 다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주로 무릎이 터지거나 가랑이가 터지기 마련이라 나는 요즘 쌍둥이 키우는 기분으로 옷을 사곤 한다.


하지만 나는 잘 먹는 둘째에게 늘 감사한다. 둘째가 잘 먹는 덕에 잔병치레도 거의 없었고, 덩달아 큰 아이도 잘 먹는다. 엄마들에게 잘 먹는 아이를 기른다는 건 크나큰 축복임에는 틀림이 없다.


먹을 때 행복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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