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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코끼리 May 19. 2021

전업 주부로 살아남기

#01 치열하고 행복하게 전업주부로 살기


인플레이션, 양극화

자고 일어나면 벼락 거지가 되는...

맞벌이도 버티기 힘든 시대,


나는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아니 사실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전업 주부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라고 원대한 꿈이 없었을까?


중학교 방학을 시작으로 질리도록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대학 졸업 후부터 28살 결혼 전까지 이 직장 저 직장 전전하며 일을 했었다. 결혼 후 시댁과 결혼 생활에 대한 트러블이 있었고 폐결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병에 걸리면서 일을 그만두고 임신 준비를 했었다. 다행스레 금세 아이를 임신했고, 시어머니도 전업주부 셨기에 내가 집에서 아이를 기르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을 원하셨다.

(물론 아들이 뼈를 갈아서 월급으로 녹여내는 것을 아시기에 진심이 아니셨을 수도 있다. )  

   

나름 사회생활을 잘해왔기에 답답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나의 전업 주부 생활은 의외로 잘 맞았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직업이 없어도 사부작사부작 혼자 놀기에 바쁜 스타일이었다. 전업 주부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실 나는 심심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져서 좋았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였기에 문화센터나 각종 학원들을 전전하며 여러 가지 다양한 취미들을 익히고 자격증도 공부했다.


적어도 코로나라는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워 토끼보다는 미친? 비글에 가까운 아이 둘 방구석이라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이기 전까지는...


우연히 듣던 라디오 앱에서 브런치를 접하며 생각했다.

'아 유레카! 내 무료함과 나른함을 달래줄 무엇은 바로 너였구나!'


잠시 골똘히 생각해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1만 시간의 법칙처럼 내게도 무언가 그럴듯하게 줄줄 써 내려갈 1만 시간이 있었겠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난 9년, 시간으로 따지면 70만 시간이 넘는 동안이나 전업 주부였다. 게다가 잠도 없는 나는 부지런 × 부지런한 타입이라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1만 시간의 법칙 대로라면 나는 주부로서 아마도 성공했겠지?라고 생각해본다.     


'주부, 그중에서 발에 차일만큼이나 흔한 전업주부'

너무 흔해서 아무도 꺼내지 않는 나의 삶, 그리고 많은 어머니들의 삶의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나는 누군가 직업을 물어보면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나의 직업은 전업주부라고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고 전에는 환산할 수 없었던 빨래를 하고, 반찬을 하고, 청소를 하며, 아이를 돌보던 손길들이 이제 당당히 노동의 가치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사람들은 체감하고 있다. 전에는 당연하게 누려왔던 주부라는 어머니들의 희생과 사랑이 사실 꽤나 고가의 비용이 든다는 걸......


그들은 오랫동안 엄마였고, 요리사였고, 간호사였으며 가사 도우미였고, 선생님이었다. 당장 애만 보는 시터를 구하려면 200이 훌쩍 넘는다. 물론 가사는 별도 비용이 추가된다. 그렇다면 9년 차 전업주부인 나의 삶은 어떠한가?


나는 꽤 행복하다.


주 3~4회씩 회식을 하고 뼈를 갈고, 몸을 녹여 월급을 내며 주말마다 출근하던 일 중독자 남편은 본인의 바람에 따라 몇 번이나 부서 이동을 하더니, 결국 원하는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을 해서 자리를 잘 잡았다. 지금은 주 4~5회 회식을 하고 마지막 힘을 짜내며 휴가라는 말도 잊은 채 작은 회사의 임원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14년 16년 생인 아이들은 훌쩍 커서 요리 외에 웬만한 것들은 스스로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가끔은 남편보다 낫다) 서울 핵심지에 소위 고가 주택이라는 집 한 채가 있고, 그 외 다른 자산에도 부지런히 투자를 했다. 극심한 양극화 시대,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엄마로서 주부로서 긍심이 있다.


내 손으로 아이를 길렀다는 자부심,

내 힘으로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지금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나에 대한 확신,

이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준 배우자에 대한 믿음.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글을 쓸 여유도 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공짜로 얻지는 않았다. 이런 나를 보며 많은 여자들이 형편이 되면 살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형편 때문에 못하는 걸까?


전업 주부를 원하거나 혹은 현재 진행형인 사람들 그리고 그만두고 싶은 사람들(물론 남자도 포함이다)

이 글을 보며 공감하고 다르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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