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보선생님 Apr 11. 2023

화를 내지 마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날씨가 궂다.

궂은 날씨 덕에 아침부터 하늘이 짓누르는 듯 무겁다. 어제였는지 그제였는지 시작된 목 옆쪽의 근육통이 심해 계속 신경이 쓰인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 그런지, 늘 컨디션이 조금만 좋지 않으면 염려가 되어 마음이 불편하다. 건강염려증인가, 언제 한 번 진단을 받아봐야겠다 싶다.

무던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아이들의 말에도 무던하게, 학부모의 말에도 무던하게. 날을 세우는 사람들 앞에서 나마저 날을 세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날을 세워 다가오는 상대는 날을 부딪치길 바란다. 오히려 날을 피하고, 부드럽게 돌려주는 방법이 최선이다. (사실, 날을 돌려주는 것이 지금 내 위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학부모가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다고 해서 싸우자는 마음으로 달려들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저 부드럽게, 무던하게 넘기는 것이다.)

아이들은 늘 선을 넘나들며 장난을 친다. 선을 알려주는 것은 사실 부모의 역할이나, 부모가 볼 수 없는 곳에서는 아이들의 다른 자아가 발현되기 마련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적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이라고 다를 이유는 없다. 집에서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도, 친구들과 있으면 장난꾸러기가 되는 일쯤은 예사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알려주는 방식은 자유다.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하지 않는 선에서 지도한다면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선을 넘는다는 것의 엄중함을 알려주곤 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에서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넘었을 경우에 처하게 되는 무서움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고,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경계를 넘는다면 지금처럼 지도하는 것 만으로는 넘어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선을 넘지 않는다 한들, 사람들은 예의 바른 사람을 좋아하지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섞어 지도했다. 감정적으로 지도하게 되어 얻는 장점은 명확하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자신이 했던 말이나 행동을 엮어 기억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고리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단점도 매우 명확하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화를 낸다면 아이들에게도 상처를 주게 되고, 나에게도 상처가 돌아오게 된다.

아이들을 지도하고 나서 피로가 지속되었다. 피로감이 지속되니, 더 이상 아이들을 지도할 때 열의를 가지기 힘들었다. 열의를 느끼지 못하니 진심으로 지도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악순환이 이어지다 보니, 나도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는 내가 평생 이 일을 할 수 없다. (사실 지금도 분명하지 않다. 너무나 불명확한 미래의 이유들로 교사들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 일에서 사라지곤 한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감정이 개입되어 힘든 것이라면, 감정을 배제하면 될 일이다. 감정을 배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감정을 배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에게 가졌던 큰 기대를 버리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큰 기대를 가지곤 했다. 한 번 지도하면 알아듣겠지, 한 번 말했으니 이제 말할 필요 없겠지. 그러나 모든 교사들은 알 것이다. 그런 아이는 세상에 없다. 돌아보면 나도 그렇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이 다 그렇다. 모두가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신호를 위반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고속도로에서는 1차로로 주행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길거리는 늘 쓰레기로 더럽고, 교통신호에서는 꼬리물기로 말썽이다. 그리고 고속도로는 늘 막힌다. 알면서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안다고 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알면서도 하는 일이 일어난다.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지도해야 할 필요성을 찾았다. 그리고 현실을 인정했다. 아이들은 여느 인간들처럼 계속 지도해야 하는 존재이다. 매일 수업준비를 안 한다고 해서, 이 아이가 수업 시간을 모욕하거나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순간 잊었을 뿐이다. 그래, 그냥 잊었을 때마다 상기시키면 된다. 운동을 배울 때, 자꾸 잊는 것을 경구로 읊어주는 것처럼. 배에 힘줘, 고개 들어하는 것처럼. 책 꺼내, 자리에 앉아. 하면 된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내가 화를 내지 않아도 내 말을 잘 듣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존재이다. 나는 수업에 열의가 있고, 전문성이 있다. 아이들은 감히 나를 시험하려 들지 못한다. 그만큼 나의 권위는 이미 인정받았다. 화를 내지 않아도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는다.

화를 내지 않으니 나도 마음이 가볍다. 아이들도 웃음이 나온다. 지도할 때는 진지하게 말하지만, 그뿐이다. 금세 잊고 웃음을 짓는다. 그래, 이제 뭔가 되는구나. 일이 훨씬 쉬워졌다. 교실에는 웃음이 조금씩 생겨난다.

작가의 이전글 요즘의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