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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Apr 24. 2023

힘이 빠진다.

이 일을 계속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햇볕이 따뜻해 기분이 좋다.


주말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주 목요일에 시작된 한 학부모와의 갈등은 나를 주말 내내 괴로움으로 밀어 넣었다. 별것 아닌 일에서 시작된 일이, 점점 오해가 번져가며 나를 옥죄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동학대범이 되어있었고, 대화는 전혀 되지 않았다.

'약한 아이를 집어 괴롭혔다.'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교사이고, 교사이기 이전에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이런 말은, 그저 허위사실에 그칠 뿐 아니라 굉장한 모욕으로 다가왔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나는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는 저라는 사람에 대한 모욕입니다. 저는 꼭 사과를 받아야겠습니다.'

이 이상 이성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더 이상 메시지 주지 마세요. 할 말씀 있으시면 찾아오세요. 2시 반 이후로는 수업이 없습니다.'

아이의 학부모는 답이 없었다. 내 말을 이해한 것일까?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답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해한 것 같다. 짐작했다.

그 와중에, 주말의 괴로움을 씻어줄 작은 장난감을 마련했다. 평소에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언젠가 저스트 댄스라는 게임을 해보고 싶었는데, 괴로움을 핑계로 게임을 마련했다. 게임은 너무 재밌었다. 화면에 있는 사람을 따라 움직이고, 노래에 맞춰 다양한 동작을 이어간다. 춤을 추는 동안은 즐거워 숨이 차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게임을 끄자 다시 괴로운 생각이 솟구쳤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교사는 특수한 직업이다.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 이외에 다른 공부는 해본 적도 없으며, 다른 직업은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교사는 공무원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해고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해고가 너무 쉬워졌다. 아동학대는 너무 희미한 개념이다.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행위는 당연히 근절되어야 하나, 그 근거가 너무나 미약하고, 아무런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 학부모들은 빈정이 상하면 교사를 신고하곤 한다. 진짜 학대 행위를 막기 위해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기분을 풀 방법이 필요해 교사를 신고한다. 교사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아동학대범으로 몰린다. 아이에게 소리치는 언성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 진짜 학대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이 자리를 떠나야, 이 지독한 고리가 끊어질까? 나는 나 스스로 열심히 하는 교사, 훌륭한 교사라고 자부한다. 나의 여자친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직업을 알아보고 있다. 이 직업에서 내 생각과는 다르게 쫓겨났을 때, 먹고 살 방법을 찾고 있다. 이 상황이 말이 되는지, 씁쓸함이 가득하다. 유튜브에 교사 의원면직이라고 검색하면 영상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만만한 사람을 찾아 괴롭힌다. 그 결과는 본인이, 이 사회가 감당해야 하지만 뒷감당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민원인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교사를 괴롭히고, 교육감들은 선거로 당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사를 보호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다.

월요일이 되고, 출근했다. 학부모는 나를 찾아올까? 학교는 이미 내 편이 아니다. 교감선생님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서 느꼈다. 나는 혼자구나. 그래, 혼자라도 멋있게 마치겠다. 다짐하고 있는 찰나, 학부모가 저 멀리 복도에서 인사를 건넨다. 대화를 하자고 한다. 그래, 좋다.

별 이야기가 없었다. 오히려 호의적인 태도에 나는 깜짝 놀랐다. 메신저로는 나를 당장 신고하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사람이 앞에서는 오히려 호의적인 태도로 머리를 숙인다. 내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녀가 걱정되었을까. 어찌 되었든, 내가 진짜 아이를 학대한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않았었구나. 그냥 나를 압박하기 위해 던진 말이었구나. 씁쓸함이 더 번져온다.

대화가 끝났다. 별말은 없었다. 앞으로 오해 없이 잘 지내보자고 했다. 나도 굳이 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해, 알았다고, 앞으로는 신경 쓰겠노라 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보냈다.

신고를 하겠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학대 행위를 하였노라 암시하던 사람이, 이제는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진정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모습에 학부모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연민마저 사라졌다. 그저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화를 풀기 위해 나를 이용했구나. 감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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