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직후 소개팅으로 만난 여자친구와 사귀기 시작되었고, 2년의 연애 끝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이라는 단어는 달콤했지만, 동시에 현실적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군대에서 모은 돈과 직장생활 2년 동안 모은 돈을 합쳐 1억 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부모님의 도움과 생애 최초 주택자금 대출을 더해 총 3억 원. 그때의 나에게는 나름 큰돈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 우리의 첫 집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마포, 옥수, 왕십리 등등 강북의 유망직역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주말마다 부동산을 돌며 집을 보고, 평수를 비교하고, 시세를 계산했습니다. 그때의 나는 확고했습니다.
“전세는 남의 인생이고, 매매는 내 인생이다.”
작아도, 낡아도 내 집을 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포구 도화동의 우성아파트 29평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로 보던 24평대들 아파트보다는 조금 더 넓었고, 방 두 개가 큼직했습니다. 아이도 없었기에 굳이 방이 많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집은 오래되었지만, 부동산 중개사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이 아파트 곧 재건축 들어갑니다. 오래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마치 약속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재건축이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 그때의 나는 전혀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들 얘기처럼 금세 재건축이 되고 주택 가격이 금세 오를 줄만 알았습니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던 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나는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아내가 된 당시의 여자친구 역시 내 집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신혼의 시작을 알리며 마포 도화동 우성아파트에 입주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의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살아보니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했습니다. 아침마다 세면대를 틀면 녹물이 콸콸 나왔습니다. 처음 10분은 물을 흘려보내야만 맑은 물이 나왔습니다. 집보러 다닐 때 이정도도 확인 안하고 매매를 한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겨울이 오자 우풍이 심했습니다. 거실 한가운데서 파카를 입고 TV를 봐야 했습니다. 샤시가 낡아 틈새로 찬바람이 스며들었고, 벽에는 자연스럽게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손끝으로 벽지를 만지면 눅눅한 습기가 전해졌고, 마음도 함께 눅눅해졌습니다.
결혼 전엔 서로의 눈빛만 봐도 웃음이 나왔는데, 결혼 후엔 서로의 입김만 봐도 한기가 돌았습니다.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이 ‘생활’임을 배웠습니다.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기쁨과 함께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곰팡이와 찬바람, 녹물이 나오는 이 오래된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결국 부모님을 설득해서 본가 근처인 양재동으로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마포의 집은 새로운 신혼 부부에게 전세를 주고, 우리는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부동산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한 시절의 나를 담는 그릇을 고르는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마포를 지날 때면, 그 낡은 우성아파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그곳은 내 인생의 첫 출발선이자, 젊은 날의 순수한 도전이었습니다.